이상하지?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냄새가 폴폴 시작되면 난 날짜와 상관없이 당신을 더 많이 일상에서 느껴.
당신의 생일이 9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가을과 함께 시작되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가을이 좋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해.
난 참 가을이 좋기만 했었는걸.
누구나 다 가을을 좋아할 법한 이유들로 나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라 말하곤 했었는데, 이젠 아니야.
나에게 가을은 떠난 사람을 생각하게 해. 만남과 이별이 있으면 또 다음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왜 계속 이별에 멈춰있는 걸까, 생각하면 쓸쓸해.
요즈음 항암제 부작용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전에 없던 관절염, 근육통들로 내 몸이 점점 할머니가 되어 가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워. 어제는 어깨가 아파서 파스를 붙여야 하는데, 파스를 제대로 붙여줄 누군가가 없다는 게 참 기분이 이상했어.
바로 이런 게 늙어가는 것.
노화하는 두 사람이 서로의 어깨에 파스를 붙여주며 옷을 입혀주며 그러다 나중엔 화장실 변기까지 동행해 주는 것. 그게 부부였겠지?
우린 아쉽게도 서로에게 끝까지 가려운 곳을 긁여주는 효자손이 되어 주지 못하고 끝나버렸네.
별로, 이쁜 구석은 없어서 생일상은 못 차렸지만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에 초도 불었는데. 잘 들었지?
씩씩하게 노래 부르는 녀석들을 보니, 아이들도 당신의 부재에 이제 익숙한 것 같아.
당신은 계속 서른아홉이고
나는 이제 마흔다섯이니
좀 뭔가 억울하다, 나만 늙어가는 것 같아서.
폭삭 늙어버린 안면을 볼 때면 저게 누구이고, 나는 누구이고, 언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생각해.
당신이 택한 죽음보다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죽음으로 만날 거야.
난 적어도 도망치진 않을 거니까.
도망자로 죽음을 맞이한 그곳은 너무 행복하진 않겠지?
많이 후회도 하고, 아프겠지?
그래도 종종 웃으며 숨 쉬길 바라.
근데 난 말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우리 아이들이 커서 당신의 도망감을 알게 되어 받을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감싸줘야 할지...
암튼 생일축하해.
영원히 서른아홉의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