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가지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렇게 다듬어진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대화의 대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나를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가 있다. 그것들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조용한 대화는 따분하다거나 궁금해하지 않는 등 부정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편하다는 것을 뜻한다. 만나서 굳이 이야기를 나누지 않더라도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안다.
별일 없어도 자주 메신저를 주고 받고 대충 뭐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만나면 소소한 주제로 히죽거리는 대화들이 된다.
대화가 끊길까봐 초조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 사람이 나를 저렇게 볼까 노심초사할 일도 거의 없다. 긴장이 되지 않는다.
아무 의미 없는 우스꽝스러운 말도 대화주제가 되어 진지한 대화가 되는 신기한 사이.
말하다가 입이 아프거나 더 이상 이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을 때 언제든 내 기분을 내비칠 수 있을 정도의 사이.
집 가는 길이 겹치는 언니와 같이 집에 가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그래서 걔가 그랬대잖아~"
"어머 근데 그게 뭔데?"
"아 그게 뭐였더라 잠시만.."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온 대답이 황당했다.
"야 귀찮아서 못찾겠다 그만 말하자"
하! 정말 어이 없기도 하면서 웃겼고, 화는 오히려 나지 않았고 편안했다. 그렇게 그냥 집에 말 없이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짧은 인사를 건네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 곱씹어보면 나도 말하다가 갑자기 말하기 싫어질 때가 있는데 그래도 이어갔던 기억이 있다.
그냥 이렇게 나 말하기 싫어졌다고 말해볼 생각은 못했다.
이딴식으로 말해도 이 사람은 내 옆에 있을 사람인데.
반면 사회생활을 하면서 죽이 잘 맞아 나를 잘 알게 되어가는 사람이 있다.
어느덧 30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10대 때 만난 친구들보다 20대가 되고 나서 만난 친구들이 어느새 많아졌다.
단골 바에서 술 한 잔 기울이는 것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 잔이 두 잔이되고 한 병이 된다.
잔들이 모여 병이 되고 내가 알싸하게 취하게 되는 과정 속에는 늘 대화가 깃들어 있다.
이전 글에서 여러차례 소개했듯이 우리 동네는 혼술하는 사람이 많다. 혼술을 하면서 바 자리에 앉아 사장님이 쉐이커를 흔드는 모습을 멍때리고 보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옆 자리에 앉은 누군가와 입을 트게 된다. (물론 상대방도 이 대화에 호의적일 때)
보통 대화의 시작은 아래 세가지 문장으로 시작된다.
1.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내가 이 가게의 단골이기 때문에 간혹 궁금해질 때가 있다)
2. 어떤 일 하세요? (실례가 안된다면을 꼭 앞에 붙이는 편이다)
3. 어디 사세요? (술 먹고 막차를 타고 집에 가야하는지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하는지 묻기 위함이다)
이런 정말 간단하고 기초적인 질문들로 시작하면 말들이 가지치기를 하기 시작한다.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다. 그들의 번호를 물어보고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다. 그렇게 서로를 알아간다.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하면 왜인지 창피함이 없다. 한 번 보고 말 사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내 치부도 가벼워보이고 부끄러워했던 일들도 서스럼 없이 공개하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헉, 이건 가족이나 내 친구한테는 말 못하는건데 언제봤다고 이 사람한테 주절주절 떠들고 있는거지?
그리고 나와는 다른 모양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해 평범하게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나와는 다르게 자라고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가치관이 나와 다른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들을 만나며 나는 조금 더 넓은 사람이 된다.
누군가가 그랬다. 젊은 남자 아이였다.
"때로는 물건이 대신 당해주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렸거나 내가 가진 무언가가 고장이 났을 때 나 대신 다쳐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 고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최근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언니에게 선물 받은 책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발견했다.
삶의 무궁무진한 희로애락을 온몸으로 껴안아 버렸다.
-송하영의 그런 눈으로 바라봐주면
내가 살고 있는 모양 같아서 꽤나 인상깊은 문장이었다.
이 글을 쓰다 생각해보니 난 참 인복이 깊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 깊은 인복을 마음 속에 항상 깊이 담아두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