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다른 나라에서 살면, 인생이 달라질까?

[북리뷰]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행복의 지도>

by 김글리

쾌락난민들이 있다.

정치적인 이유나 경제적인 이유로 망명을 떠나는 일반 난민들과 달리, 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 그들은 더 행복하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쾌락난민으로 불린다. 쾌락의 난민은 대개 이런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한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분명하게 깨닫는 순간을.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어디론가 옮겨가는 것을 내 영혼은 언제나 환영해 마지 않는다.
- 보들레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겠다고 기상천외한 여행을 나선 사람이 있다. 바로 <행복의 지도 The Geography of Bliss>의 저자 에릭 와이너다. 그는 '스마일 상징' 이 등장한 1963년에 태어났으나 우울하고 심술 많은 기질은 버리지 못한탓에 기자가 된다. <뉴욕 타임즈> 기자로 시작해, 이후 세계적 언론사이자 미국공영방송 NPR의 해외특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불행한 나라의 전쟁, 질병 같은 소식만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아무도 전한적없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정체를 밝혀보기로 한다. 돈이 넘쳐나서 세금도 안 걷는 나라에서 산다면? 창문만 열면 파라다이스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산다면? 실패해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곳이라면? 돈, 즐거움, 자유, 가족 등의 조건을 갖춘 유토피아같은 나라는 어디일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을 어떻게 느낄까? 이 물음의 답을 찾아 1년동안 4대륙을 돌아다닌다.


"진정한 행복은 당신 내면에 있습니다."

"그딴 건 알고 싶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면 행복해지는지 알려달라니까요."


그가 행복의 비결을 밝히겠다고 찾아다닌 나라는 네덜란드, 스위스,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 몰도바, 태국, 영국, 인도, 미국이다.


이 책을 한 8번 정도 읽은 것 같다. 그 중에 정독을 한 건 3번 정도이고, 나머지는 발췌독으로 중간 중간 읽었다. 한 가지 인정해줘야 할 것 기자출신 답게 문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흡인력이 엄청나다. 저자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그가 찾아다닌 행복이 이리 비틀리고 저리 비틀린다. 두껍지만, 가볍게 낄낄 거리면서 볼 수 있고, 그러면서도 생각해볼 거리가 많다. 번역도 훌륭해서 매우 잘 읽힌다. 여행기와 철학서의 중간쯤 어딘가.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행복연구를 미리 해준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불가하고, 행복도가 낮아지는 때에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인상적인 문구들.




스위스편


어쩌면 행복은 이런 건지도 모른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지금과는 다른 일을 하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 어쩌면 스위스의 지금 상황은... 그저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기 쉽게 해주는 것이라서 '행복해지기'도 더 쉬운 것 같다." -69



부탄편


부탄 사람들은 국민행복지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의미는 미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거품이 톡톡 터지는 스마일 상징 같은 행복과는 많이 다르다. 부탄 사람들에게 행복은 집단적인 노력을 뜻한다.


'개인적인 행복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카르마 우라(부탄에서 가장 중요한 싱크탱크를 운영) 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의 행복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행복은 관계 속에 있어요." -115


재산이 사람을 해방시켜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돈이 있으면 우리는 육체노동에서 자유로워진다. 한낮의 무자비한 햇빛을 받으며 밭에서 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요즘은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굽는 일이 그런 노동에 해당한다. 하지만 돈은 인간의 영혼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슈마허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가 부유해질수록 즉각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부유한 산업국가에서 사람들은 레저에 많은 시간을 쏟으며 즐길 수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런 사회에서는 생산적이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 장려되지 않는다. 잠깐 동안이어도 안 되고, 즉각적인 쾌락을 얻기 위해 그런 일을 해도 안된다. 반면 부탄 사람들은 다트 게임에 기꺼이 하루를 쏟을 수 있다. 하루 종일 그냥 빈둥거리릴 수도 있다. 샹그릴라와 부탄을 한번 더 비교하기 위해, 소설 속에서 영국인 선교사인 미스 브링클로와 속을 알 수 없는 샹그릴라 사람 창이 나누는 다음의 대화를 살펴보자.


"라마승들은 무슨 일을 하나요?" 그녀가 묻는다.

"라마승들은 묵상과 지혜를 추구하는 일에 자신을 바칩니다, 부인."

"그건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렇다면 아무것도 안하는 거겠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문제를 만들어낸 의식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서는 결코 그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 -118



아이슬란드편


모두들 라루스를 안다. 그는 자그마한 음반가게와 음반사를 소유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를 휩쓸고 있는 창의력을 이해하고 싶다면라루스를 만나보라고 다들 말해주었다. -236


라루스는 예전에 프로 체스 선수였다고 한다. (...)40여 년을 살아오면서 라루스는 체스 선수뿐 아니라 기자, 건설회사 중역, 신학자 등의 직업을 거쳤으며, 지금은 음반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나도 압니다." 내가 자기 말을 잘 믿지 못한는 걸 깨닫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아이슬른다에서는 그게 아주 정상적인 삶이에요."


그는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는 것(다중인격과는 다르다)이 행복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서구 국가들에 만연한 믿음과는 반대다. 서구 국가들은 전문화를 최고로 친다. 학자, 의사 등 전문 직업인들은 점점 한기지 주제에만 초점을맞춰 그것에 대해서만 더 많은 것을 알아내는 데 평생을 보낸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점점 더 광범위한 것들에 관해 점점 더 많이 배우려 한다.


나는 라루스에게 링캬비크에 창의력이 흘러넘치는 현상에 대해 묻는다. 창의력의 원천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나도 창의력을 얻을 수 있나?

그는 안경을 코에 꾹 누르면서 말한다.

"시기심이죠."

"시기심이라뇨?"

"아이슬란드에는 시기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가 말하는 시기심 부족은 스위스의 경우와 조금 다르다. 스위스 사람들은 시기심을 억누르기 위해 물건을 숨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시기심을 억누르기 위해 물건을 함께 나눈다. 아이슬란드 음악가들은 서로를 돕는다는 것이 라루스의 설명이다. 한 밴드에 앰프나 리드 기타라스트가 필요하다면, 다른 밴드가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준다. 아이디어도 시기심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흘러 다닌다. 시기심은 일곱 가지 죄악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죄다. 조지프 엡스타인은 시기심에 관한 글에서 일단 시기심이 풀려나면 "그것에 사로잡힌 사람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경향이 있다"라고 썼다. -237, 238



영국편


요즘은 영국 도처에서 행복에 관한 이야기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 토니블레어는 행복학이라는 신흥 학문에 커다란 흥미를 느껴서 행복학 이론을 정책에 반영할 생각을 했다. 2002년 그의 전략 팀은 '인생 만족 ' 세미나를 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전략팀을 '행복부'라고 부르기도 했다.

전략팀은 논문을 발표했다. 정부가 국민의 행복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 글이었다. 그들이 제안한 방법 중 일부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부탄의 국민행복지수와 비슷한 행복지수, 학교에서 '행복해지는 기술' 가르치기, '좀 더 여유있게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생활' 장려, 부자에게 더 높은 세금 물리기.


여러분도 짐작하시겠지만, 가장 많은 관심을 끈 것은 역시 마지막 방안이었다. 높은 세금이 행복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내놓은 사람은 영국의 리처드 레이어드였다. 그는 부자들이 남의 시기심을 자극해서 일종의 '사회적 공해'를 분출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공해를 유발하는 기업주에게 벌금을 물리듯이, 남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부자들에게도 벌금을 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367, 368



인도편


나는 순다르 사루카이라는 교수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가 행복에 관해 쓴 글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447


나는 야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들떠있다. 이 야심이라는 단어는 지금까지 나의 행복 탐색에 가장 커다란 방해가 되었다 .야심은 내 성공의 근원이자 불행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런 모순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인도인밖에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야심은 있죠. 그건 인간의 본성입니다. 문제는 그 야심을 위해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점이에요. 단순히 경제적인 대가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대가도 말하는 겁니다."그는 일반적으로 미국인이 인도인보다 기꺼이 더 높은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도인들도 성공을 원하지 않나요?"

"그거야 물론이죠. 하지만 우리는 실망했을 때 대처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좋아,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우주에게 결정을 맡기자.' 이게 우리의 사고방식이에요."

"그게 무슨 뜻이죠?"

"어떤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부르는 걸 우리는 신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예측 불가능성이라고 부르기로 하죠. 똑같은 일을 열번이나 했는데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가, 열한 번째에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 우주 전체가 우연과 확률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모든 걸 받아들입니다."


또다. 삶의 모든 것이 마야. 즉 환상이라는 힌두교의 믿음. 일단 삶을 게임으로 보기 시작하면, 그러나까 그저 체스 게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면, 세상이 훨씬 더 가볍고 행복하게 보인다. 개인적인 실패는 "극단의 여름 공연에서 실패자 역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이 된다. 휴스턴 스미스가 <세계의 종교>에서 쓴 말이다. 만약 모든 것이 연극과 같다면, 우리가 맡은 역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그저 자신이 연기할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가 인식하기만 한다면. 앨런 워츠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인간은 자신이 한바탕 연극이며 아주 기운차게 그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 448, 449




미국 편


"미국인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사다. 사실 미국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기질을 바탕으로 설립된 나라다. 애당초 미국으로 넘어온 순례자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 했던 쾌락난민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그토록 떠받드는 '개척 정신'이란 더 행복한 곳을 찾으려는 갈망이 아닌가? "미국에서 출세한다는 말은 이미 알고 잇는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의미다." 편집자이자 교사였던 세지윅이 자서전 <행복한 직업>에서 쓴 말이다.


세지윅이 이 말을 쓴 것은 1946년이었다. 그후로 미국인들의 이동성은 더욱더 높아졌다. 매년 4000만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이사를 한다. 개중에는 직장 때문에 이사하는 사람도 있고, 병든 친척을 가까이서 돌보려고 이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단순히 어딘가 다른 곳에 가면 더 행복해질 것 같아서 이사하는 사람도 많다. -460


인류 역사에서 사람이 자기가 살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수백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뿌리가 박힌 식물처럼 태어난 곳에서 자랐다. 그러다가 홍수와 기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나거나, 약탈을 일삼는 몽골인들이 동네에 나타났을 때에야 비로소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솔직히 말해서 언제나 약간 불안정한 상태인, 아주 돈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짜릿한 재미를 맛보려고 이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좋은 의미의 모험은 현대적인 개념이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도저히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모험을 겪었지, 적극적으로 모험을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하물며 돈을 써가며 모험을 하려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옛날에 중국인들이 하던 말, "흥미로운 시대에 살게 되기를"은 사실상 저주의 말이었다. - 460, 461



행복은 미꾸라지 같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을 많이 만났다. 스위스인들은 틀에 박힌 삶을 사는데도 행복하다. 태국인들은 느긋한 성격이며 행복하다. 아이슬란드인들은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데서 기쁨을 찾고, 몰도바인들은 오로지 불행밖에 보지 못한다. 혹시 인도인이라면 앞뒤가 안 맞는 이 모든 현실을 다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머리로는 어림도 없다 .나는 속이 상해서 유명한 행복학자 중 하나인 존 헬리웰에게 전화를 건다. 어쩌면 그는 답을 조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간단합니다." 그가 말한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에요."

물론 그렇겠지.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톨스토이의 말은 거꾸로다. 불행한 나라들은 모두 똑같지만, 행복한 나라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하다. -473



"불행도 나름대로 역할이 있다."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이렇게 말한다 .옳은 말이다. 불행은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상상력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불행이다. 아이슬란드가 증명하듯이, 불행도 나름대로 멋진 매력을 갖고 있다.


일전에 BBC웹사이트의 헤드라인 하나가 내 시선을 붙들었다. '흙에 노출되면 행복 증가.' 영국 브리스틀 대학의 학자들이 폐암 환자들에게 흙 속의 '좋은' 세균들을 접하게 했더니 환자들의 행복도와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연구 결과만 가지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이 연구가 중요한 진리를 가리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가 지저분함 속에서 번성한다는 진리. "좋은 삶이란.... 결코 즐거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거친 모래와 진실이 어느 정도 들어있어야 한다." 지리학자 투안이푸의 말이다. -475


'유토피아'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좋은 곳'이라는 뜻과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
그럴 수 밖에 없다.
- 위의 책 475쪽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면 할수록 쉬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