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렌스.
나를 걱정하는 그대에게
엄마, 이렇게요.
나처럼 이렇게
귀를 막고 있어 보세요.
그렇게 조금만 있어 봐요.
그리고 다시 귀를 열어요.
그러면 모든 소리들이
새롭게 들려요.
재미있어요.
다시 태어나는 것 같구요,
마치 아기로 돌아간 것 같아져요.
그러면 그냥 웃어버리게 되어요.
그랬더니 마음이 놓이고
다 괜찮아졌어요.
신기하죠?
그리고 저는 지금 너무 신나요.
왜냐면 엄마도 나랑 같이 웃었거든요.
웃어줘서 고마워요, 엄마.
엄마, 사랑해요.
이제는 시와 함께 삶의 여정을 걸어 나가는 것에 조금은 익숙해졌나보다. 제법 삶에 배어들고 있는 느낌이다. 햇살 좋던 날, 직장에 당당하게 ‘개인 사유’로 사유를 적고는 조퇴 달고 나와, 평소 좋아하던 서점을 갔다 왔기 때문이다. 시집을 한 권 사고, 서점 근처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 가서 그 책을 한 장 한 장 읽다가 아이가 집에 돌아올 즈음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던, 그런 날이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손에 들려 있는 시집을 물끄러미 보는데 문득, 작년 이맘때 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던 때 있었던 일이 하나 스쳐 갔다. 내겐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서 오늘은 잠시 그때로 돌아가 그 일을 시로 남겨 보았다.
아이가 9살 때였다.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는데 자꾸만 베이비 파워가 떨어졌다는 둥, 엄마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둥, 아기 때는 매일매일 뭘 해도 다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많이 커서 그런지 뭘 해도 재미가 없다는 둥, 다시 아기가 되고 싶다는 둥 염려되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던 때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베이비베이비 파워~~~!”하고 소리치면서 나를 꼭 안은 채 붙어 있다가 떨어지곤 했더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가 그토록 외쳐대는 베이비파워가 다시 채워지도록 그저 꼬옥 안아주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때 당시 아이는 아침 일찍 만원버스를 타고 엄마와 함께 등교하고, 학교 끝나서는 학원을 여러 군데 돌고 나서야 늦게 집에 오곤 했고, 아마도 그런 하루하루가 아이에게 많이 버겁고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안쓰럽고 안타까웠지만 딱히 어떻게 할 방도가 없는 그런 시기였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이가 아침 만원버스 안에서 양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고 앉아있기 시작했다. 온몸을 웅크린 채, 고개는 푹 숙이고,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누가 봐도 뭔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고, 왜 그러느냐고 달래기도 하고 훈계하기도 하는 등 지혜롭지 못하게 대처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런 것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꾸만 흘끔흘끔 나와 아이를 보는데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나쁜 엄마이기라도 한 것 같이 느껴지고, 내 눈에는 한없이 사랑스럽기만한 아이를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아이로 보고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일이 몇 번 계속되었고, 끝내 참지 못해, 버스에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귀 막고 있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하지 말라고! 정말 왜 그러는 건데!”
그렇게 크게 소리 지르자 아이는 그만 또 귀를 막아 버렸다. 잠시 그렇게 있다가 아이가 스스로 양손을 내리고 귀를 열었다. 그리고는 푹 숙였던 고개를 들어 보이는데....... . 아이의 표정은 너무나 산뜻하고 천진난만하게 방긋거리고 있었다. 엄마 속은 어떤지도 모르고... . 그리고는 옷깃을 살포시 잡아당겨 나를 끌고 와서는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엄마도 해봐요. 귀를 꽉 닫고 있다가 갑자기 열면 모든 소리가 다 재미있어져요. 엄마도 지금 해 봐요. 응? 해봐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멍...... .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아이의 그 말과, 너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아이의 표정과, 아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숨막히는 만원버스 분위기와 그 모든 것들이 순간 일시정지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면서 알 수 없는 꽉찬 울컥함 같은 것이 가슴 가득 차올라 왔다. 형언하기 힘든, 정말 특별한 무언가였다. 그때 그 경험을 정말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엄마도 자기처럼 귀를 막아보라고 자꾸 보채는 아이 덕에 정신을 차리고는 아이를 보며 허탈하게 웃어버렸더랬다. 소리 내어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나도 아이처럼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가 떼었다가 했다. 혹시 ‘검정고무신’이라는 만화를 아시는지. 그 만화에 보면 기찻길 옆에 사는 아이들이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기찻길 가로 쪼르르 나와서 귀를 막았다가 떼었다가 하면서 와웅와웅거리는 소리를 재미있어하면서 장난치는 장면이 있는데 나와 아이가 그날 버스 안에서 둘이 그런 장난을 치는 장면을 만들어 내었더랬다. 버스 안이라 큰 소리는 내지 못하고 나도 쿡쿡, 아이도 쿡쿡 웃었더랬다. 기분 좋게 버스에서 내려 학교까지 걸어가는 길에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웃어서 너무 좋다고... . 자기는 귀를 막고 있다가 소리를 다시 듣는게 너무 재미있고, 그렇게 하면 다시 웃게 되고, 다시 아기가 된 것 같아서 좋고 신난다고 하면서 엄마가 더 많이 웃었으면 좋겠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아이의 ‘양손 귀막음’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일이 있은 후, 가끔 아무도 없이 혼자 있을 때 양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가 떼어보고는 한다. 온 세상 소리가 다시 새로워지도록, 그렇게 내 마음도 새로워지도록 말이다. 이 이야기를 떠올린 데에는 이번 주 시치료 공부에서 ‘트렌스’라는 용어를 배웠기 때문인 것 같다. 이는 ‘자신의 내부에 확고하면서도 일정한 주의집중을 만들어냄으로써 변형된 의식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 숨 막히고 피곤하기만 한 버스 안에서 9살밖에 되지 않은 그 어린 아이가 반짝이는 한 편의 시같은 말을 할 수 있었던 건 ‘양손 귀 막음’이 일종의 트렌스 현상이 일어나도록 도와주었던, 힘겨움의 의식을 다른 아름다운 의식으로 변형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 아니었을른지... . 그때 당시 아직은 많이 어렸던 아이에게는 그런 내재적 지혜가 잘 발동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언가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면 그저 그것에서 자신을 잠시 떨어뜨려 놓아 쉬게 해 주기...... . 그 단순한 삶의 지혜를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만 잊어버리고 지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물론 나는 어른이니 아이처럼 그 자리에서 바로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려버릴 수는 없을거다. 대신 아주 가끔이라도 이렇게 서점으로 발길을 돌리고, 정갈한 시집을 읽으며 부끄럽지만 나만의 시도 끄적거려보면서 다시금 그러한 지혜들에 닿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렇게 조금씩 더 마알간, 그러면서도 온화하고 부드러운 삶의 결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혹시 후일에 아이가 다 큰 어른이 되어 문득 세상살이로 인해 힘겨워하는 때가 생기면 오늘 쓴 이 시와 글을 손으로 정성껏 옮겨 적어 선물해 주어야겠다는 상상도 한 번 해본다. 그간 시치료 수업을 들으며 적어 내려간 시와 글들을 떠올리며 오늘 처음으로 나도 드디어 뭔가 제법 밝으면서도 가볍고 포송포송한 글을 써낸 것 같다. 1월부터 시작한 공부가 이젠 4월 중순이 되었으니 약 3개월을 조금 넘어간다. 100일 정도 되었을까... . 아직 여전히 길고도 먼,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이지만 그래도 분명 뭔가 내 글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에, 그리고 아마도 그만큼 오늘의 나는 달랐을 것이라는 사실에 눈앞에 연둣빛 무지개가 떠오르는 것만 같다. 무지개가 떠오른 걸 보니 이 시와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촉촉한 비가 보슬보슬 부드럽게 내렸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마법같다. 시의 마법... . 시의 결을 따라 흘러가다보면 도착해 있는 치유와 회복의 마법...... . 오늘도 이렇게 언제나 그렇듯 너무도 감사한 배움이었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