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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Aug 14. 2023

나무의 지혜

- 시와 함께 감정을 수용하고, 감정의 파도를 타기.


나무의 지혜



어떤 이, 말한다.

내려놓으라고, 그저 비우라고.


그이의 말 뒤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그 나무의 가지에 달린,

반짝이는 초록빛 이파리들

그 이파리들 끝에 달린

셀 수 없이 많고 작은 열매들

그 무게감을 견뎌내며

빛을 향해 굽은 유연한 나뭇가지들

나무는 무겁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워내지 않는다.

생명이기에, 빛이기에, 찬란한 생이기에.

태양빛 가득 쬐고 나면

시린 비바람 한껏 맞고 나면

저들 스스로 비워질 것이다, 내려놓게 될 것이다.


다시 또 들린다.

내려놓으라고, 그저 비우라고.

그 안에 담긴 체념과 두려움의 떨림들

지나는 바람 한 자락에 날려 보낸다. 그리고,

당찬 마음으로 저 고아한 나무 앞에 서서

공경을 담아 허리 숙여 깊은 절을 올린다.


오늘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한 주는 버거웠던 것 같다. 올 해 학교에서 맡은 업무는 학교폭력예방 및 처리다. 반 아이들은 잘 적응했는지 4월 말이 되니 이제는 거리낌없이 제모습을 한껏 뽐내고 있고, 학교폭력 관련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들쑥날쑥 나타나기 시작한데다, 이제 막 열 살이 된 아들은 학교가 너무 재미없다고 놀고 싶다며 매일밤 잠들기 전 눈물을 뚝뚝 흘려대고, 그 와중에 감기까지 걸려서는 문득 숨쉬는 것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버거운 한 주였더랬다. 24명 아이들의 하루를 책임지는 담임교사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고, 학교에서 벌어지는 온갖 갈등의 한가운데에서 업무처리를 해야 하는 공무원이기도 한 여러 역할들을 겨우겨우 해내며 몸도 마음도 자꾸만 부서져가는 그런 한 주였던거 같다. 그런 나를 보며 주변의 어떤 분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다 부질없어, 열심히 할 필요 없어, 그냥 다 내려 놔. 열심히 하지 마.”라고... . 그분께서 그런 염려의 말씀을 해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인지 입안도 다 헐어서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는데 그 와중에 나는 이번 한 달 기특하게도 참 잘 살아낸 반 아이들과 함께 하려고 4월 마지막 날 학급파티 준비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달 마지막 날에 반 아이들과 학급파티를 꼭 한다. 그 달에 생일이 있는 아이들의 생일파티를 해주고, 한 달 동안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어서 남기고, 교실자리도 바꾸고 등등 학급자치활동을 한 번에 몰아서 하고는 한다. 이런 학급활동이 어떤 분들께는 안 해도 되는 일을 굳이 귀찮게 만들어서 하는 것처럼 보이실 수 있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니까. 심지어 이런 학급활동들을 하고 나서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들에서 민원을 받아 도리어 안하느니만 못했을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그러다보니 매번 “하지마. 다 부질없어. 그냥 다 내려 놔. 비워”라는 걱정어린 조언과 애정어린 마음을 받고는 한다. 이에 나도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되는 게 사실이고 우리의 현실이다. 십여 년 전 교사 생활과 지금을 동시에 떠올리면 그때는 이러이러하게 했을 여러 많은 학급 및 수업활동들을 지금은 하지 않는 것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다. 대부분의 하루가 그저 오늘 하루 무탈했으면 그것만으로도 잘 살아낸 것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한 달 학급살이 파티만큼은 꼭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게는 무탈히 한 달을 잘 살아낸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매듭을 짓고, 새롭게 또 한 달을 살아낼 힘을 얻을 시간이 필요해서였던 것 같다. 일 년이 아니고, 한 학기도 아니고, 한 달 말이다... . 그래서 이 학급활동 하나만은 민원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지금까지도 꼭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매년, 매번 주변분들로부터 같은 말을 들어왔다. 다 부질없다는, 내려놓으라는, 하지 말라는 그런 조언들...... . 그런 말씀들을 들을 때마다 불편감을 느낀다. 내가 혹시 주변의 다른 동료분들께 불편감을 드렸을까 싶고, 정말로 어떤 해에는 평범치 않은 민원들에 시달렸던 때도 분명 있었고, 그로 인해 나또한 이런 일들이 다 부질없고 힘들기만 하고 잘못하면 도리어 더 힘든 일만 만들 뿐이라는 부담감을 한 켠에 가지고 있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교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올해는 내 반응이 달랐다. 불편감을 있는 그대로 경험해냈달까.'다 쓸데 없어, 하지마'라는 말에 마음이 어두워지고 지치려 함을 인지하고는 시치료 수업에서 배운대로 그 바쁜 와중에 굳이 시간을 내어 모든 걸 멈추고 잠시 앉아 시를 한 편 썼다. 그러고는 자꾸만 들려오는 그분들의 말씀에 그저 가벼이 웃으면서 “에휴, 그러게요. 어떤 맘으로 이런 걸 하는지 조금이라도 알라나 모르겠어요. 그래도 뭐, 저 좋고 애들 좋으면 됐죠, 뭐.” 하고 가벼이 답하고 넘어갔더랬다. 그렇게 적당히 무심하게 학급살이 파티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쓰게 된 시가 위의 <나무의 지혜>이다.


이번 주 배운 시치료 내용에는 이런 것이 있다. 류시화의 시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을 매개로 수련해본 것으로, 감정에 맞서지 말고 수용하면서 파도타듯이 감정을 타라는 내용이다. 워낙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 시대라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별로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오늘 나 자신에게 직접 적용해보니 이제서야 조금은 이해하게 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 부질없어, 하지마, 내려놓아, 비워”라는 말 속에 담긴 감정은 아마 열심히 마음을 담아 어떤 교육적 활동을 했건만 도리어 부정적 경험을 했던 기억들로부터 온 교직생활에 대한 회의감, 체념, 슬픔, 모멸감, 분노 이런 것들이었을 거다. 그에 더해 또 그런 일이 발생할 거라는 불안감, 두려움 같은 것들이었을 거다. 나또한 너무도 평범한 사람이고 너무나 부족한 교사이기에 그러한 감정들이 내면에 정말 무척 많이 쌓여 있다. 그것들에 맞서지 않고 그저 수용한다는 건 생각보다 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알아채고 류시화의 시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그것들을 수용하겠다는 의도를 가진 순간, 그저 그런 의도를 가진게 전부였을 뿐인데, 놀랍게도 내 안에 저기 저 교실 창 밖, 봄을 맞아 한껏 푸르러가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가슴 가득 들어왔고, 잠시 그렇게 앉아 있으면서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한 지혜로운 답을 얻은 듯한, 맑고 투명한 어떤 순간들을 경험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경험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시 한 편을 적어냄로써 명료해졌던 것 같다. 만약 시로 써내지 않았다면 경험하고 깨달은 것이 품고 있는 지혜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인지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류시화의 시,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에는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 눈을 감고 / 내 안에 앉아 / 빈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거리는 걸 / 바라봐야 할 시간’ 이라는 글귀가 있다. 내 마음을 보게 하고, 수용하게 해주고, 이 글을 쓰게 해 준 이 시와 이 글귀를 다시 한 번 소리내어 읊어본다. 내게 있어서 그리움은 교사로서의 첫마음, 포부, 열정, 사랑과 같은 감정들이었던 것 같다. 덧문은 그런 것을 담아보려 했던 시도와는 다르게 겪어야만 했던, 부정적 감정들이 쌓이게 만들었던 과거의 수많은 기억들이 가득 담겨 있는 어떤 장소를 열고 닫는 무언가인 것 같다. 그것이 샐쭉이 살짝 열려 있어서 내 안의 또다른, 빈자리로서 반짝이는 출렁거림을 보면서도 머뭇머뭇거렸던 것 같다. 내게 있어서 매달 말 경험하는 반짝이는 출렁거림은 이거다. '그렇게 온갖 문젯거리, 할 일들을 다 가득 안고 살면서도 우리는 기어이 잘 살아냈구나' 라는 감사와 기쁨. 그래, 기어이 살아내야 할 것들이었다. 내버리고 비울 것들이 아니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내려놓기와 비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다른 것에 눈멀어 우리는 그것 자체를 억지스러운 힘까지 들여가며 해내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려놓음과 비움 그조차도 자연스럽게 영글어 때가 되어 이루어지도록 두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실을 보여주는 그 빈자리의 반짝이는 물 출렁거림을 억지로 강압적으로 외면하며, 닫혀 있어야 할 덧문을 도리어 열어 버린 채 그것만을 마주하며 주저 앉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놀랍다. 놀랍고 또 놀랍다. 오늘도 또 이렇게 소박한 시 한 편, 지혜롭고 아름다운 시구 한 줄에 기대어 나만의 그리움을 있는 그대로 맞이하며 어둡고 무거운 덧문을 걸어 닫은 채 잠시 고요한 쉼을 가졌고, 다시 이렇게 오늘을 살아낼 힘을 길어올렸다. 오늘도 이렇게 한결같고 변함없는 시 한 편이 있어서, 시와 함께 내 안에 들어앉아 반짝이고 찰랑거리는 푸르른 나무 한 그루, 그 잎새들, 시원한 바람 한자락 느끼며 회복되고 살아났다. 오늘도 시의 치유마법은 포로롱, 반짝이며 나타나 제 할 일을 다해 주었다. 한없이 부족한 교사 한 명을, 놀기 좋아하는 밝고 명랑한 어떤 남자아이의 엄마를, 첨예한 갈등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돕고 있는 공무원 한 명을 살려내 주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잠시 생각해본다. 내가 내려놓고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체념, 두려움, 불안, 공포, 혹은 욕심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 그것들을 내려놓고 비워내 온전한 생을, 빛을, 반짝임을 담고, 혹은 품어 안거나 손에 들고, 등에 지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 그리고 그러한 것들로 삶이 채워졌을 때 경험하는 것은 무거움, 버거움, 견딤이 아니라 맑음, 가벼움, 자유로움, 기쁨, 아름다움과 같은 것들이 아닐까... . 시와 함께하는 배움이 계속되는 새로운 한 주의 여정을 기다리며 오늘도 이렇게 다시금 감사한 치유와 회복, 배움들을 일궈내본다. 오늘도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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