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깨어지고 상처입은 내면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가족조각 드러내기.
조각
아무데나 무심히 버려진
나름의 쓸모를 다한 물건들
밤이고 낮이고 끊임없이 주절대는
수많은 소리들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마음 담았던 쪽지들
맨바닥 여기저기에서 찢기고 밟혀진
사랑과 열정을 담았던 종이들
― 항상 그렇지 뭐. 또 쓸데 없는 짓 했네. 내 그럴줄 알았어. 거봐, 소용없잖아. 니가 하는 게 그렇지. ...
아프다.
떨린다.
잠시 눈을 감아 본다.
― 날카로운, 무너진, 거친, 낯선, 사무친, 도려낸, 부서진, ...
내 맘 어딘가 잠시 반짝거린다.
눈물일까.
가만히 다가가
허리 굽혀 찬찬히 들여다본다.
조각들이었다.
내가 주운 이 조각들은 무얼까
베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모아 서로 맞추어 본다.
다 모여진 조각을 들여다보니
글자가 하나, 새겨져 있었다.
............... '사랑'
숭숭거리며 온갖 바람 드나들던 어떤 가슴구멍에
그 조각모음이 꼭 맞는다.
그제서야 그곳에서 들리던 짐승같던 울음이 사라졌다.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서
시리디 시린 울음이 들려온다.
오늘은
잃어버린 조각을 찾으러
떠나야겠다.
오늘 시치료지도사 수업에서 건져올린 나만의 시어가 있다면 그것은 ‘조각’인 듯 싶다. ‘가족조각’이라는 용어였던 것 같다. 일상 중에 인지한 작은 욕구나 감정들이 더 큰 전체적인 어떤 큰 장면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조각을 가족조각이라 한다고 하셨다. 제대로 이해한건지는 모르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게도 가족조각들이 참 많을 것이다. 그중에 떠오른 하나의 조각, 참치김치찌개. 나는 참치캔 한 통을 다 넣어 끓인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어린 시절, 딱 한 번 친정엄마에게 참치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더랬다. 그날 저녁, 식탁에는 오빠가 좋아하는 삼겹살이 잔뜩 구워져 있었고, 참치김치찌개는 없었다. 엄마라는 존재에게 뭔가 먹고 싶다고 말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
결혼하고 어느 날, 신랑이 밤 늦게 집에 온 나를 위해 참치김치찌개를 끓여 준 적이 있다. 기뻐하는 나를 보며 신랑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껏 술에 취한 날, 김치찌개 이야기를 했다고... . 그래서 없는 솜씨지만 김치찌개를 끓여 보았다며 맘껏 먹으라고 했다. 그날의 참치김치찌개는 얼마나 맛있던지... . 그렇게 어미와 아비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컸다며 징징거리던 내 안의 작은 아이는, 자유를 찾았다. '참치김치찌개'라는 아주 작은 한 조각을 내 안에 채워 넣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그 조각 하나로 인해 그동안 서럽게 꽁꽁 싸멘 채 묵혀 두었던 줄줄이 비엔나같은 수많은 뭉침들이 단번에 해결되어 버렸다. 내가 그날 깨달은 건 이거였다. 한 그릇의 뜨끈한 참치김치찌개를 이제는 굳이 부모가 끓여주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내가 되었건만, 어찌 그동안 그리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은 참치김치찌개를 한 번 끓어 먹지 않았단 말인가. 게다가 이제는 그 음식을 나를 위해 끓여줄 수 있는 번듯한 나만의 가족이 이렇게 있지 않은가. 신랑은 내게 그것을 깨닫게 해주었더랬다. 선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말이다. 이제 내 안에는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이렇게 사는 거라며 징징대는 아이는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내가 선택해, 내가 꾸려온, 나만의 가족조각들을 소박하면서도 예쁘게, 소중히 여기며 정성껏 돌보려 노력하는 어른이 자리하고 있다.
내게 서러움이었던 참치김치찌개가 따스함으로 바뀔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 조각에 사랑을 담아 새롭게 돌려준 신랑이 있었기 때문일 거다. 어디 김치찌개 뿐일까... . 원래는 사랑이었어야 할, 이해받지 못하고 거부당하고 내던져진 삶의 조각들이 우리 생에 얼마나 수없이 많을는지... . 그로 인해 숭숭 뚫려버린, 시리디 시린 가슴을 어찌 메꾸어야 할른지... .
다행히도 그런 신랑이 없어도 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시 읽기이다. 오늘 배움의 시간에 함께한 시는 하상욱 시인의 <시밤>에 나오는 시들과 용혜원 시인의 시들이었다. 그 시들을 읽으며 내 안에 날카롭게 서려 있어 건드리지 못했던, 버려 놓았던, 그래서 잃어버렸던 여러 조각들을 용기있게 드러내 건드려 보았더랬다. 특히, 용혜원 시인의 <생각>이라는 시의 몇몇 구절은 더더욱 쿡, 건드려졌다.
‘그대 사랑 없이 내뱉는 말’...
‘바람이 수없이 불어왔다가 가도 / 아무도 감싸주지 못하는 것처럼 / 그대 또한 나에게 그렇습니다’... .
내겐 친정어머니가 그런 존재였다. 그래, 안다. 알고말구. 그녀의 삶 또한 너무나 고달프고 힘겨웠기에, 부서지고 깨어지고 잃어버린 조각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런 것임을. 그렇기에 그녀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치료지도사 수업을 들으며 시를 읽고 암송하는 나는 그녀와 다르다. 그녀를 닮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처럼 살지는 않을거다. 나는 사랑을 담은 말을 세상에 내어놓으며 살고 싶다. 언제든 기꺼이 불어와 포근히 감싸안아주고 짐없이, 빚없이 가벼이 불어가 사라지는 따스한 온기 가득한 바람처럼 살고 싶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시들을 읽으며 나의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 내 안의 찢기고 깨어진 어딘가를 곱게 다시 기워낸 오늘의 배움에 지극히 깊은 감사를 느낀다. 자신 안에 버려둔, 잃어버린, 혹은 깨어진 조각들을 그저 어딘가에 품고만 있을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 .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러한 사람이라면 부디 시 한 편 찬찬히 읽으며 사랑을 잃은 당신의 조각들을 찾아내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가지시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