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기적 같은 나날들 Ep.3
지금껏 나를 지탱했던 '어떻게든 되겠지' 긍정 회로 프로그램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다. 시점은 내가 엄마가 된 이후로부터.
포도 역시 ‘어떻게든 되겠지’ 프로그래밍에 맞아떨어진 세상에서 가장 값진 소산이다. 연애 7년을 거쳐 신혼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이쯤이면 아가가 생겨도 괜찮겠다는 생각과 우리 나이를 고려하면 젊은 엄마 아빠 범주에 안착하는 시기였기에 철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더욱이 요즘은 자연 임신도 쉽지 않다는데 일단 생기기만 하면 그다음 문제는 행복한 고민이겠다 싶었다. 물론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고 우리에게 포도가 찾아와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보고 있자면 ENFP의 공상은 점점 현실적인 고민에 가까워진다.
하루하루 몸은 무거워지고 무방비 상태로 포도를 맞이했다가 허둥지둥할 것이 뻔하기에 유튜브, 인스타그램, 블로그, 카페를 뒤적거리며 기본적인 육아법과 출산 용품 리스트를 찾아보는데 조회수가 높은 콘텐츠는 하나같이 ‘육아는 템빨’을 명제로 삼고 있다. 제때 분유만 잘 타 주고 기저귀만 깨끗하게 갈아주면 육아의 반은 해결될 줄 알았건만 수유 용품만 치더라도 서너 가지가 넘고 자동으로 온도와 양을 조절해서 분유를 타 준다는 머신에 아기 전용 비데까지. 심지어 웬만한 육아 용품 앞에 ‘국민’ 자가 붙어버리니까 직감적으로 필수 용품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곧 대한민국 국민이 될 포도를 생각해 괜히 하나씩 끼워 넣게 된다. 그러다 불쑥 드는 생각 하나.
'이게 전부. 다. 꼭. 필요할까?'
비단 돈이 아까운 게 아니다. 부모로서 대단한 신념은 없지만 적어도 유난스럽지 않게, 자유롭게, 신나게 키우자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왔던 어린이 해방군 방구뽕 씨 주장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 국민 육아템이 자꾸 ‘유난스럽지 않게’라는 항목에 브레이크를 건다. MZ 세대라고 자부하는 나도 요즘 육아템 없이도 잘 큰 것 같은데, (그보다 한참 윗세대인 우리 엄마 아빠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와 아이템 사이에서 특별한 것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대에 구색 맞추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그렇다고 포도에게 ‘정녕 아기 비데까지 필요한 거니?’라고 물어보지도 못할뿐더러 이다음에 포도가 커서 ‘내 친구들은 다 써봤다는데 나는 왜 아기 비데가 없었어?’라는 원망 섞인 투정을 들을까 걱정도 된다.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포도에게 남부럽지 않게 해 줄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포도가 사랑이 넘치는 아이로 자랄 수 있도록 매 순간 진심을 다하는 것이다. 국민 육아템이 조금 모자를 지언정 진심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이 정도에서 타협하며 ‘육아는 템빨’이 아닌 ‘마음빨’이라고 패기 있게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