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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적인 하루 Jan 08. 2020

01. 면접

서울로 가는 길

01. 면접






포트폴리오를 넣었던 회사 중 한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곧장 서울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자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단발머리. 어색해서 머리 끝자락을 계속해서 만졌다.

한동안 하지 않던 화장을 공들여서 했다. 오랜만의 화장이라 한때 코덕(코스메틱 덕후) 이였던 나였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급히 유튜브에 단정한 화장, 면접 화장을 검색했다. 익숙한 이름의 유튜버들이 쭉 나온다. 그중 조회 수가 제일 높은 영상을 클릭했다. 잠시 보니 묵혀뒀던 화장 스킬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유튜버가 말하는 데로 얇은 베이스에 진하지 않은 톤 다운된 아이섀돌 덧발랐다.


화장을 끝내곤 장롱문을 열었다.


워낙 다채로운 취향 덕에 단정한, 그러니까 면접용 옷이 없는 나는 아빠의 스트라이프 셔츠와, 아끼는 코스 네이비 재킷, 와이드 팬츠지만 허리는 와이드 하지 않는 불편한 네이비 바지를 입었다. 배가 편하지 않아서 조금 더 긴장감을 주었다. 칼바람 부는 서울 날씨를 떠올리며 검정 내복도 받쳐 입고, 경량 패딩도 껴 입었다. 춥진 않겠군. 그 위에 블랙 울코트를 입고 뉴발란스 어글리 슈즈를 신었다. 구두에 발을 넣었다가 다시 옮긴 것이었다. 나에겐 구두라곤 화려한 버클이 여러 개 달린 뾰족구두뿐이었다. 어글리하지 않지만 어글리 슈즈가 차선책이었다. 전형적인 면접 복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정해 보였다.


재미 삼아 봤다가 떨어졌던 인턴직을 떠올리며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 pdf 파일을 휴대폰에 넣어 달달 외웠다. 거울을 보며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어봤다. 심장이 간질간질하고 등이 뜨뜻해졌다. '나 긴장하고 있어!'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주 솔직히 그 회사(지금은 이 회사 )는 조금 망설여지는 회사였다. 포트폴리오는 좋은데 잡플래닛 (회사 리뷰사이트) 평점이 2점대였고, 회사 규모가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다 경험이다, 하는 생각으로 정한 서울행이었다. 주소를 따라 도착한 나는 숨을 한 번 더 크게 마셨다. 건물이 예상외로 너무 컸다. 잘못 온 것일까.


'회사가 지하라 너무 별로, 대표도 별로'라던 잡플래닛 리뷰가 떠올랐다. 주소를 다시 한번 더 확인했지만 잘못 온 것이 아녔다.


14층 사무실에 들어서서, 면접을 보고서야 회사가 인수 합병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 대대적인 물갈이를 하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수 없는 회사는 절대 가지 마세요' 익명의 누군가의 조언을 떠올리며 상사가 있는 질 물었고 당연히 있다고했다.


첫 면접이었는데도 알 수 있었다. 나는 합격일 거라고. 면접 분위기가 좋아도 떨어졌다는 익명의 일화를 수도 없이 들었지만 내심 합격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럴 때만 믿게 되는 부정의 미신. 괜히 여기저기 말했다가 부정만 탈까 봐 기분 좋은 예감은 혀 밑에 넣어두었다. 말 많은 사람에게 말을 참는 것만큼 힘든 일이 어디 있는가. 그렇지만 꾹 참았다. 회사에서 조금 더 걸어 을지로역 투썸플레이스에 앉아, 흥분과 긴장으로 내내 두근거렸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오늘 오후 중에는 답이 갈 겁니다.' 면접관의 말이 생각나서

서울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서울에 이미 상경한 친구들, 대학을 서울로 온 친구들이 많아서 이럴 때 참 좋군 생각했다. 친구에게 전활 걸어 약속을 잡았다. 누군가와 함께해야 조마조마한 기다림을 견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합격 전화는 청계천의 등불 축제를 걷다가 받았다. 사실상 인사치레 같은 2차 면접이 잡혔다. 면접관과 통화를 할 때 어색하게 흉내 낸 내 서울 말씨를 친구는 녹화까지 해서 두고두고 놀렸다.


한동안 나는 취업난 속에서도 원샷원킬로 취업한걸 자랑스러워하고 내 입으로도 그렇게 말했다. 엄마 봐봐 나는 내가 말한 대로 다 하는 사람이야. 서울에 취업한다고 얼마 되지 않아 바로. 뿌듯하고 우쭐한 마음에 한동안 나는 무척 들떠있었다. 무엇보다 '서울'에 취업했단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그땐 연봉이니 생활비니,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문제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렴, 서울인걸.


미리 잡혀있던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첫 출근을 하고 몇 번의 철야와 야근을 하면서도 늘 꿈꿔왔던 '서울의 커리어 우먼'이 된 거 같아, 속으로 주문을 걸며 일했다. 내 노동이 부당하게 쓰여도 동료들과 뒤에서 '이게 말이 돼요? '하고 함께 욕하며 눈감았다. 부당함은 동료애 뒤로 숨겨뒀다. 단순한 동질감으로 만들어진 동료애가 그렇게 쉽게 깨질 줄 모르고 말이다. 동료애가 깨지면, 아 , 그 뒤에 숨겨뒀던 불씨가 드러날 것인데. 그래도 나는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자기 위안을 해야 했다. 오랫동안 꿈꿔 왔던 곳, 서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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