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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30. 2022

하고 싶은데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의 안녕을 바랍니다 05

    재밌는 걸 하다 보면, 혹은 무언가에 열중하다 보면 자고 싶은데, 자야 하는데 자기 싫은 순간들이 종종 있고는 했습니다. 밥이 먹고 싶은데 먹기 싫을 때도 있었고요, 뜨개질이 하고 싶은데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고, 뮤지컬을 보고 싶은데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참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뭘까요. 양가감정을 느끼는 일들이 부쩍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저는 참 특이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둘째를 비롯한 저의 주변 아이들은 어른이 되고 싶고, 엄마가 되고 싶어 하던 그 시점에 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던 아이였습니다. 학생이 좋다고. 왜냐고 묻는 질문에는 '어른이 되면 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잖아요, 그게 싫어요'라고 대답하던 아이였습니다. 어른들은 어른스럽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참 별난 구석이 있구나 싶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성인이 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여전히 어른이 되고 싶지 않지만 또 어른이 되고는 싶습니다. 저만 자꾸 제 자리에 멈춰있는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이제는 문득 발자국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들이 왔습니다. 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저에게 보험을 권하는 이야기를 했을 때, 이제 더 이상 친척이 아닌 제 친구들이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청첩장을 줄 때라던지, 혹은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돈을 모아서 어떤 삶을 꾸려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아, 내가 지금 어른이 되어는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는 했습니다. 이번에 막내 장례를 치르면서 가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 그리고 막내를 마주한 적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된 거니까, 어른이라면 다 그렇지'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말이 참 위로가 되면서도 생경한 기분이었습니다. 


    여전히 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고도 싶어요. 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감정들을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까요. 발자국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제는 제법 잦아졌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친구들을 만나서 깔깔거리고 하루에 3만 원으로 끝내주는 하루를 보내고 학교에 가고 했었던 순간들이 이제는 어느새 조금은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를 보며 마냥 반가운 것이 아닌 아주 작은 순간만큼은 '왜?'라는 의문을 품는 순간이 찾아오고만 것입니다. 그게 참 아쉽습니다. 아직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데 던져졌고, 그렇기에 이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어른이 되고 싶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로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이 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하고 싶은데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야 할 겁니다. 

그러니 오늘은 아이스크림이나 먹고 자겠습니다. 어른은 내일 되어도 괜찮겠죠?


22.09.29 아이스크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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