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리리안 Dec 23. 2020

어머님과 남편의 말다툼

위기가 기회가 되는 순간

   

  그날 뒤 우리는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어색한 남편과 최대한 멀리 지내고 싶어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 조조를 데리고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조조를 데리고 갈 곳이 없어 아이를 두껍게 입히고 유모차 겨울 커버를 씌운 후 추운 거리를 한 없이 걸었다. 아이는 유모차 안에서 금방 잠이 들었고, 혹시라도 춥진 않을까 싶어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 유모차를 덮었다. 갑자기 내리는 눈에 몸이 시렸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만 따뜻하다면 추위는 버틸만했다. 그렇게 오기를 부리며 한참을 걷다 보면 나쁜 마음도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와 남편의 어색한 침묵을 느낀 어머님 역시 어떤 질문도 하지 않으시고 어머님의 하루 루틴을 이어가셨다. 어머님의 하루 루틴은 매일 같다. 낮에는 거실 식탁에서 필사를 하시고 밤에는 홀로 방에 들어가셔서 한국 티비를 보신다. 요즘은 식사가 다 되었음을 아셨을 텐데도 식탁 위에서 필사를 멈추지 않으시고 필사에 집중하신다. 어머님의 필사하시는 모습이 불편해졌다는 것은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게 불편한 감정들을 가지고 이틀이 지나고, 남편이 퇴근을 했는데 남편의 양말이 짝짝이였다. 어머님은 기분이 좋지 않으신지 남편의 짝짝이 양말을 보며  한소리를 하셨다.

  "누가 보면 홀아비인 줄 알겠네"  

  어머님이 그 말씀을 하셨을 때 지으신 표정은 종종 볼 수 있었다. 어머님이 스스로 생각하셨을 때 며느리가 이 정도까지는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며느리는 그 선까지 오지 않고 마치 타인처럼 멀리서 아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종종 그런 표정이 나오신다.


  남편이 짝짝이 양말을 신은 것은 남편의 선택이었다. 내가 빨래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빨래를 해서 양말을 개어 양말 통에 넣었으면 신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나는 전업주부이지만 남편의 엄마가 아니기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집 청소와 변기 청소는 매일 해도 남편의 오피스 방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먼지가 새하얗게 쌓인 남편의 컴퓨터 키보드를 보아도 당사자가 관리해야 할 방을 건들지 않는다. 특히 남편이 출장을 가게 되면 남편의 짐을 싸는 것 역시 남편 스스로가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터치도 하지 않으며 남편의 군복 역시 빨래를 하고 주름이 덜 가게 잘 말려서 걸어 놓는 정도까지가 나의 최선이다. 그렇게 해야 나의 본업인 전업주부의 할일을 최대한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고 남편 본인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무리 함께 살아도 자신의 할일은 자신이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나의 태도가 불편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가끔 아플 때도 내가 유난스럽게 굴지 않기에 어머님은 더 크게 걱정하신다.

  "너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니, 문제가 있는 거야 그거"

  어머님의 걱정을 유난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두통은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에 어머님의 걱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나의 식사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조조는 일찍 저녁을 먹이고 남편과 어머님의 식사를 따로 차려드렸다.

  "너는 또 안 먹니?"

  남편과 ‘또’라는 말로 다투었기에 어머님의 그 또라는 말이 상당히 거슬렸지만, 최대한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조조 먹을 때 남은 거 먹었더니 배불러서 괜찮아요. 어머님 드세요"

  어머님은 식탁에 앉으시더니 한 숟갈도 드시지 않으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방에서 다시 나와 밥그릇만 치우고 다시 들어가시길래 나는 말없이 식탁을 정리하고 조조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조조에게 어색한 분위기 사이에 조조를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방으로 들어와 우리는 예쁜 내용의 동화를 읽고 침대 위에서 조조가 좋아하는 종이접기를 하고 놀았다. 그런데 거실에서 어머님과 남편이 크게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싸움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상하게 그들의 싸움에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왜 저렇게 시끄럽게 싸울까.. 잘 풀렸으면 좋겠네]

  거실에서 어머님은 울고 있고, 남편은 소리를 지르고 우리는 방에서 신나는 음악에 춤을 추었다. 한동안 시끄럽던 소리가 조용해지더니 남편이 방으로 들어와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자기가 엄마랑 이야기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엄마 울어 엄마가 집을 나가겠데."

  "내가 왜? 내가 싸운 것은 자기지 어머님이 아니잖아. 우리 모습 때문에 불편하신 거면 설명하고 풀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자기야."

   남편은 한숨을 쉬고 다시 나가 어머님과 대화를 하는지 큰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 신나는 노래를 틀어 조조와 춤을 추었다.

  그날 밤, 불편한 남편의 마음을 계속 불편하게 두고 싶었지만 아들에게 엄마의 눈물은 큰 의미가 되었을 것 같아 조조가 잠들고 먼저 남편에게 다가가 물었다. 남편의 불편한 마음도 신경이 쓰였고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등장했을지 궁금했다.

  "엄마가 자기 눈치가 보인데. 자기는 기분이 나쁘면 말도 잘 안 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유도 안 알려주니까 엄마는 그게 답답했나 봐. 자기가 밥 잘 안 먹는 것도 엄마 때문에 안 먹는 것 같고, 자기가 말 잘 안 하는 것도 엄마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나는 그래서 엄마한테 이야기했지. 리안이는 원래 밥 잘 안 먹는다고. 그리고 리안이가 이야기 안 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매번 리안이 이야기할 때마다 아니라고 하고, 반대하고 따지는데 누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냐고..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내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 했어.

  엄마는 엄마 때문에 우리가 싸우는 거면 나가 살겠데. 난 그냥 너무 답답해. 엄마는 자기 눈치 본다고 하는데 나는 자기랑 엄마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고.."

  남편은 그 긴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들 중 10퍼센트만 말해주었지만 나머지 90프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화가 났다.

  "내가 말 안 했다고? 내가 얼마나 이야기했어. 가족들끼리 모이면 대화가 답이라고 매번 불편한 감정들 있어도 풀려고 노력했지 피하지 않았어. 그런데 막상 내가 이야기하려면 피했던 사람은 누구야. 자기고 어머님이야. 자기네 가족은 원래 이야기를 안 했던 가족이라면서 내가 서로 불편한 거 이야기하자고 몇 번이나 부탁했는데도 피했잖아. 나는 자기와 어머님 스타일을 충분히 존중해 주고 있는 거고, 자기랑 싸우면 어머님한테 자기 흉보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던 거야....

  그런데 내가 가장 화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정말 열심히 어머님을 모셔도 나중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자기 가슴에 남는 것은 웃은 기억들보다 어머님이 나 때문에 흘린 이 눈물일 거라는 거야. 나라도 그럴 것 같아. 자기 때문에 우리 엄마가 힘들고 울었다면 나는 자기가 잘한 것보다 우리 엄마 울린 것만 더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아.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속상해. 힘이 안 나. 어머님은 나랑 너무 다르고 불편한 기억들이 자기 마음에 계속 쌓이는 게 억울해. 나는 자기랑 마음에 앙금 같은 거 품지 않고 늙어서도 서로 사랑하면서 지내고 싶은데, 지금 이 상태로는 그게 불가능할 것 같아.”

  “....”

  “그래도 미안해. 나 때문에 어머님 우시는 거 봐서 자기 마음이 안 좋았겠다.”
  

  나로 인해 생긴 남편과 어머님의 말다툼은 유감이지만 아내의 속마음을 너무 잘 알면서도 엄마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나와 어머니의 사이에서 눈치만 봐야 했던 남편의 마음을 보았다. 그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지 느껴졌다. 그래서 머릿속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도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내가 힘든만큼 남편의 마음도 힘들었을테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에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혼자 앓았을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뒤, 나는 어머님과 그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머님도 남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실 시간이 필요하셨는지 며칠은 서먹했지만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어머님과 내가 문제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디만 이미 남편에게서 충분히 의미가 전달된 것 같아서 더 이상 그 다툼을 연장하고 싶지도, 더 잘 풀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어머님과 남편에게 어떤 선물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번 박싱데이에는 정말 좋은 로봇 청소기를 사고 싶어 열심히 푼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로봇 청소기 대신 가족 여행에 몽땅 썼다.

  

  어머님과 남편이 다투었던 그날 밤, 밤을 꼴딱 새워서 집 근처에 괜찮은 숙소를 알아보았다. 집을 떠나서, 잠시라도 서로가 숨이 트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어머님,
우리
다 같이 바람쐬고 와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왜 이혼이란 단어를 자주 생각하게 될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