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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안 Jan 12. 2021

내가 원하는 집과 남편이 원하는 집이 다를 때

첫 하우스 구매 후기




집에 들어온 첫날, 남편은 로컬 마켓에서 디자이너를 찾아가 가장 알록달록한 그림을 집더니 현관문을 열고 바로 보이는 중문에 닭그림을 걸어 두었다. 남편은 분명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도 존중해달라며 못질을 했다.


탕탕탕


못 박는 소리가 마치 내 가슴도 못이 박히듯 마음이 아팠다.


[오 나의 그림 같은 첫 집이여..

  나의 깨끗한 문에 감히 알록달록 그림이라니..]





결혼하고 첫 발령을 받게 되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낯선 시골에 발령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적지 않게 실망했다. 그러나 첫 발령과 함께 얼마 있지 않으면 곧 태어날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생각에 하우스 헌팅을 가는 비행기에서 우리는 엄청 들떠 있었다.


우리가 발령받은 곳은 동부의 끝쪽에 위치한 미국 국경 앞에 있는 작은 시골이다.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캐나다의 서부 끝 빅토리아에서 약 50시간 동안 운전을 하고 가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비행기를 탈 수 있었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로드트립을 해보겠나 싶어서 임신 중이었지만 장거리 운전을 택했다.


캐나다의 군대는 한국 군대처럼 장교 관사나 군인 아파트를 주는 혜택이 전혀 없기에 대부분 그냥 월세에 사는 사람들도 많고 집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혹은 잦은 발령 때문에 쉽게 집을 구할 수 없을 때는 한 달에 약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의 월세를 내고 군대에서 관리하는 집에 살 수도 있다. 우리가 발령받은 곳은 캐나다에서도 인구가 적은 시골이라 군대에서 관리하는 집이 없었지만, 비싼 빅토리아의 물값에 맞춰 저축을 해왔기에 시골에서는 비교적 여유롭게 집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호텔에 묵으며 여러 집들을 둘러보았지만 집을 보면 볼수록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뭐 하나가 맞으면 하나가 안 맞고.. 왜 이렇게 완벽한 집이 없는 거야."



우리가 원하는 가장 큰 조건은 이러했다.


1. 방 3개 이상

2. 화장실 2개 이상

3. 콘도보다는 주택

4. 대로변보다는 조용한 주택가

5. detached (캐나다의 주택은 Detached, semi, town house 등으로 종류가 나눠져있다)

6. 차고


모든 조건을 갖춘 집들만 돌아다녔지만 집의 크기가 좋으면 채광이 별로였고, 채광이 좋으면 크기가 작았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면 바닥이 카펫이거나 촌스러웠고 바닥이 괜찮으면 다른 것들이 부실했다. 집을 보는 내내 우리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자 중개인은 푸르른 세인트로렌스 강이 정면으로 펼쳐진 집을 보여주었다. 풍경도 좋고 집 앞에는 개인 데크와 피크닉 테이블도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지만 방의 개수는 2개였고 아이와 살기에는 계단이 몹시 가팔랐다.




좋은 집이 없던 이유 중 하나는 시기가 별로였다. 캐나다에서는 대부분 4월 5월에 집 매물이 가장 많이 나오고 많이 팔리는 시기이기에 우리가 하우스 헌팅을 간 6월 중순에는 벌써 좋은 집들은 팔리고 이사를 하는 시즌이었다. 이사를 하는 시즌에 우리는 매물을 보러 갔으니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아직 신혼이고 첫 집인데, 멋진 집을 위해 크게 무리해서는 집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마지막 날 간 집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집을 만났다. 방의 개수는 5개, 화장실의 개수 3개, 2층 구조에 베이스먼트도 공사가 되어 있어 작업실로 쓰기에 딱 좋았다. 집 구조가 지어진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근에 리노베이트 한 집이었기에 화장실들도 세련되었고 모든 것이 보통 여성들이 선호할만한 멋진 집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발견한 3가지의 단점은


1. 지나치게 방이 많다.

2. 양 옆에 사는 이웃들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3. 앞에도 뒤에도 마당이 없다.


나는 너무 마음에 드는데 반면에 남편의 표정이 좋지 않자 나의 신경도 예민해졌다.


" 예민하게 왜 그래. 딱 봐도 좋잖아"


"아이가 태어나면 옆집에서 저렇게 목줄도 안 묶은 큰 개들을 풀어놓고 있는데 자기 혼자 애랑 같이 산책이나 할 수 있겠어? 마당도 없잖아. 그럼 굳이 주택을 구매할 이유가 없기도 하고”


아.. 나를 걱정해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그 순간에는 산책 안 하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그냥 그 집이 너무 좋았다. 초콜릿이 바로 눈 앞에 있는데 조금 더 기다리라는 실험을 하는 것만 같이 발을 동동 구르며 다음 집을 보러 가자는 남편이 미웠다.


그래서 최종의 후보에 오른 두 집은 이러했다.



두 집 모두 완벽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반드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최선을 골라야 했다. 거기에서도 남편과 나의 의견을 갈렸다. 나는 세련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던 2번 집이 좋았지만 남편은 촌스러운 1번 집을 좋아했다.


"거기는 할머니가 오래 살았어서 그런지 느낌이 할머니  같이  촌스러워"


남편은 나의 말을 마치 사탕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들으면서도 계속 나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아무리 말해도 나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나서 최종선택을 해야 하는 저녁에는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밥을 먹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중개인에게 1번으로 결정하겠다고 연락했다.




내가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는 남편이 집을 고르는 조건이 나와 달랐기 때문이다. 나의 조건들은 첫 번째도 인테리어 두 번째도 인테리어, 모두 나의 만족도를 위한 것들 뿐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집을 고르는 조건은 이러했다.


1. 앞으로 태어날 아기가 기어 다니고, 걷고 뛰고 할 충분한 여유공간이 있는 곳

2. 마당이 있는 곳

3. 근처에 아이와 함께 갈 놀이터가 있는 곳

4. 자신이 출장을 가도 위험하지 않을 분위기가 좋은 동네

5. 2,3년 뒤 다시 재발령을 받을 때 다시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잘 팔릴 수 있는 곳


하우스 헌팅의 마지막 날, 남편은 1번 집을 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2번 집은 잡지책에 나오는 것처럼 예쁘지만 신혼들에게는 어울릴지 몰라도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위한 공간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2번 집은 놀이터를 가려면 20분이 걸리고 자신이 없을 때 혼자 나오려고 하면 버스를 타는 정류소 또한 멀었다.


"그런데 1 집은 촌스러운 집이지만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면 1 집이 훨씬 안전하고 아이에게도 편할 거야. 우리 지금만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태어난 뒤를 생각하자."


또한 이 곳은 노인들이 많기에 오르락내리락 번거로운 2층 3층 집보다는 Bungalow(1층)으로 된 주택이 다시 팔기에 좋을 테니 1번 집은 아기에게도 좋고 되팔기에도 좋은 얼마 있지 않아 이사 갈 우리를 위한 집으로는 딱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남편 앞에서 절대 2번은 고를 수 없었다. 이기적이었던 나의 마음을 반성하고 남편의 말대로 우리는 1번 집을 고르게 되었다. 빅토리아로 돌아가기 전 1번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다시 집을 찾았다. 그리고 이웃분들의 모습이 보였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만 들어오는 길이라 아이들이 집 앞에서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집에서 2분이면 동네 아이들이 사용하는 놀이터가 따로 있었고 반려동물을 키우시는 많은 이웃분들은 타인을 배려하고 산책하시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 안정감이 들었다.



우리가 아무리 따지고 신중하게 구매했더라도 처음으로 구매한 집인  만큼 살면서 알게 되는 아쉬운 점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아쉬운 점들 또한 금방 잊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이웃분들이다. 사실 이웃이라는 게 이사 가면 그만이기에 내 집을 구매하는데 이웃이 무슨 상관일까 생각했지만 동네 분위기와 이웃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힘은 컸다.


옆집에  살고 계시던 친절한 부부가 이사를 가고 또 다른 가족이 이사 왔는데, 모두 가끔씩 너무 덥고 너무 추운 날이면 우리가 가진 작은 기계만으로는 힘들 거라며 잔디도 대신 깎아주시고 눈도 치워주신다. 동네를 산책할 때마다 조조의 이름을 부르며 연예인을 보듯 소리 질러주시는 할머니들도, 조조를 예뻐해 주는 동네 언니 오빠들도, 이웃 모든 분들의 모습만으로 이 집을 골랐다는 것에 전혀 후회가 없다.


세련된 집이 아니라 마음이 편안한 이 집을 골라준 남편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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