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 화려한 절정과 몰락
호텔 연회장은 플래시로 눈부셨다. 카펫 위로 굴러다니는 빛과 박수 소리가 웅성처럼 겹쳐졌다.
사회자: “올해의 언론인상, 사회부문 수상자는… 미라뉘주 기자입니다!”
천장 조명이 터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 몸에 모였다. 그는 천천히 무대로 올라갔다. 심장 박동은 빠르게 뛰었지만 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트로피를 건네받는 순간, 그는 마이크 앞에서 짧게 숨을 골랐다.
미라뉘주: “언론의 역할은 권력을 감시하고, 진실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그 일을 하겠습니다.”
환호. 누군가 그의 이름을 외쳤다.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 플래시의 세례.
그러나 축하가 무르익을수록, 귓바퀴를 스치는 낯선 감각이 있었다. 어딘가에서 아주 가느다란 금이, 유리컵 속에 번져 가듯 마음 한쪽을 긁어내렸다.
늦은 밤, 행사가 끝나고 빈 복도를 걸을 때 그는 트로피의 무게를 두 손으로 옮겨 잡았다.
미라뉘주(속으로): 이 무게가 내 편이 되어줄까, 아니면 내 목을 당길까.
며칠 뒤, 편집국 사무실. 낡은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박였다.
간부: “미라뉘주, 요즘 기사 수위가 너무 세. 정치권, 재단, 대기업… 이건 서로 못 볼 꼴 만드는 거야.”
미라뉘주: “진실이면 싣겠습니다. 우린 뉴스 만드는 곳이죠, 광고 전단지 만드는 곳이 아니라.”
간부: “우린 언론사이기도 하지만 ‘회사’야. 눈치도 봐야지.”
그는 대답 대신 새 기사 파일을 열었다. 몇 달을 파고든 개발 특혜 의혹, 피해자들의 진술, 계약서 원본. 출고 버튼을 눌렀다.
다음 날 아침, 지면과 홈페이지 어디에도 그의 기사는 없었다. 서버에서 아예 흔적이 사라져 있었다.
미라뉘주: “편집부에 확인해보겠습니다.”
IT담당: “로그가… 비어 있어요. 마치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회의실 문이 닫히자, 누군가는 시선을 피했고 누군가는 아예 눈을 맞추지 않았다.
동료: “너… 이건 손대지 말랬잖아.”
미라뉘주: “진실을 손대지 말라니, 그게 기자 입에서 나올 말이야?”
동료: “네가 옳아도, 우리가 무너질 수 있어.”
그날 오후, 협박 전화가 왔다.
익명: “가족은 조용히 지내나? 더럽혀진 이름 치울 방법, 우리가 잘 알지.”
또 다른 전화가 이어졌다.
변호사: “귀하의 기사에 허위 사실 유포 혐의가 있습니다. 정정보도와 사과를 요구합니다.”
사흘 뒤, 그의 책상엔 박스가 놓였다.
인사담당: “회사 결정이 내려졌네.”
미라뉘주: “해고입니까.”
인사담당: “자네도 알잖아. 더 큰일 나기 전에…”
박스에 쑤셔 넣은 컵, 사진, 구겨진 취재 메모.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동안 그는 모니터에 비친 빈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 자리 위에, 아직 마르지 않은 커피 링이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비가 내리던 밤, 골목 끝 네온 간판이 끊어진 빛을 깜박였다. 술집 문을 밀고 나온 그는 우산 없이 걷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어깨를 두드렸다.
낯선 목소리가 빗소리를 가르고 들어왔다.
낯선 남자: “미라뉘주.”
그가 고개를 들자, 검은 외투의 사내가 가로등 아래 서 있었다. 눈빛은 잔잔했지만 묘하게 선명했다.
미라뉘주: “기자 이름을 부르는 건, 좋은 예고가 아니죠.”
낯선 남자: “세상은 네 이름을 지우려 했다. 하지만 어떤 이름은, 지워지지 않아.”
미라뉘주: “누굽니까.”
낯선 남자: “스트라이프. 뤼미에르 유니옹의… 일원.”
그는 주머니에서 얇은 원반을 꺼내 건넸다. 금빛 선이 그려진 문양, 빛살이 원을 가르며 교차하는 표식.
스트라이프: “네가 쓴 것들이 맞는 말이었다는 걸 우린 안다. 진실을 말했기에 버림받은 자들을, 우린 모은다.”
미라뉘주: “모은 다음에요?”
스트라이프: “사라지지 않게 한다. 그리고, 통하게 한다.”
미라뉘주: “유니옹… 빛을 말하면서, 왜 어둠에서 만나죠.”
스트라이프: “빛은 어둠을 통과할 때 선명해지거든.”
그는 짧게 웃고, 원반의 뒷면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주소와 시간이 짧게 떠올랐다.
스트라이프: “내일 자정, 부두 7번 창고. 문을 세 번 두드려라. 오든 말든 네 선택이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사이, 빗줄기 뒤로 스트라이프의 모습이 스르르 흩어졌다. 남은 건 손바닥 위 차가운 원반뿐.
그날 밤, 그는 트로피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방 안은 조용했고, 빗소리만 규칙적으로 창문을 두드렸다.
미라뉘주(속으로): 내가 틀렸나. 아니면 세상이 나를 틀렸다고 만들었나.
휴대폰에 저장된 녹취 파일을 재생했다.
피해자: “기자님, 우리 얘기를 누가 들어줬어요. 그게 처음이었어요.”
또 다른 목소리: “기사 보고 시에서 나왔어요. 고맙습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한때 그의 펜끝이 바꿔놓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웃음, 안도의 한숨. 그리고 지금, 그 모든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허위’라는 낙인.
친구였던 동료의 메시지가 화면 위로 스며들었다.
동료: “미라, 미안하다. 더는 같이 못 가겠다.”
거울 앞에 서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붙어 있었다.
미라뉘주: “정의는 늘 무겁다… 그래도 내려놓으라고 배운 적은 없는데.”
자정이 가까워질수록 손바닥의 원반은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그는 원반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창밖의 비는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
미라뉘주(속으로): 내가 가면, 무엇이 변할까. 가지 않으면, 무엇이 남을까.
정각 십분 전, 그는 코트를 집어 들었다. 문을 열며 트로피를 힐끗 돌아보았다. 윤광이 어둠 속에 묻혀 조용히 잠겼다.
부두는 텅 비어 있었다. 파도 소리가 잔잔했고, 7번 창고의 철문은 녹이 올라 있었다. 그는 주위를 살핀 뒤, 세 번 두드렸다.
낯선 목소리: “들어오세요.”
문 안은 생각보다 밝았다. 낡은 천장등 아래 몇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복면도 망토도 없었다. 단정한 코트와 차분한 표정, 그리고 가슴팍에 같은 문양의 배지.
낯선 여성: “미라뉘주 씨. 오셨군요.”
미라뉘주: “여기가… 뤼미에르 유니옹.”
낯선 여성: “우린, 진실이 통하지 않은 사람들을 잊지 않습니다. 당신이 겪은 일도 알고 있어요.”
뒤쪽 기둥에 기대 선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스트라이프였다. 그는 이 밤의 연출가가 아니라, 그저 문을 열어준 안내인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스트라이프: “선택의 시간이다.”
여성은 그의 앞에 얇은 서류 한 장을 놓았다. 서약문이었다.
낯선 여성: “당신의 정의를, 우리 방식으로 지키겠다고 약속하실 건가요.”
미라뉘주: “우리 방식이라면, 구체적으로.”
낯선 여성: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고, 드러나야 할 것을 드러내는 일. 다만, 혼자가 아니다.”
미라뉘주: “누가 이 일을 심판하죠.”
낯선 여성: “결과. 그리고 책임.”
그는 펜을 들고 한참을 멈췄다. 손끝에서 잉크가 종이 위로 아주 작은 점을 남겼다. 머릿속으로 수많은 밤이 스쳐갔다—경찰서를 전전하던 취재, 악다구니 같던 협박, 그리고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던 한 사람의 목소리.
미라뉘주: “나는—”
말이 목울대에서 한번 걸렸다가, 곧 매끄럽게 흘렀다.
미라뉘주: “나는 나의 정의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혼자서 못 한다면, 함께 하겠습니다.”
그는 서명했다. 펜 끝이 마지막 획을 그을 때, 바깥에서 파도 한 줄기가 부딪혀 작은 울림이 번졌다.
스트라이프가 조용히 다가와 배지를 내밀었다.
스트라이프: “환영한다.”
미라뉘주: “당신은, 여기서 무슨 역할이죠.”
스트라이프: “지금은 그저, 문을 여는 사람.”
미라뉘주: “그래요. 문이 열렸다면, 안으로 걸어가야겠죠.”
그는 배지를 왼쪽 가슴에 달았다. 금선의 문양이 숨결에 맞춰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낯선 여성: “이제부터 당신은 우리다. 이름이 지워지지 않도록, 우리가 지킬 것이다.”
미라뉘주: “이름보다 중요한 건, 지켜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창고 문을 나설 때,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비는 더 이상 추위의 상징만은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씻어내고, 다른 무언가를 남기는 감각.
스트라이프가 반 걸음 뒤에서 걸었다.
스트라이프: “오늘의 선택, 후회하지 않을거야.”
미라뉘주: “그럼 좋겠군요.”
부두 끝, 수면 위에 조각난 빛이 떠 있었다. 그는 잠시 멈춰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미라뉘주(속으로): 내가 쥔 건 어쩌면 다른 방식의 빛. 그렇다면, 이 빛으로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발걸음은 이전과 달랐다. 혼자였다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게 된 사람의 걸음.
밤이 길수록, 새벽은 가까웠다. 그리고 그는 그 새벽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