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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자전거여행 20

《돌과 나무 사이의 하룻밤》

by 이쁜이 아빠

‘Parador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 호텔에서 하룻밤..


이 호텔은 도시 중심 광장인 Plaza del Santo에 자리하며,
바로 맞은편에는 Santo Domingo 대성당(Catedral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 이 있다.

그래서 창문을 열면 성당의 종탑이 보이고,
밤에는 십자가 조명이 은은하게 비친다.

11세기, 산티아고로 향하던 순례자들을 위해 세워진 병원이 있었다.

그 건물은 세월을 견디며 돌과 나무의 흔적을 간직한 채, 지금은 ‘Parador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수백 년 전 피로에 지친 순례자들이 머물던

그 자리에

오늘의 나도 또 다른 순례자로 들어섰다.

그 순간, 나는 이곳이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길 위의 쉼터’이자 ‘세월의 안식처’라는 걸 느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따라 달린 하루,

먼지와 땀으로 뒤덮인 몸을 이끌고 도착한 이 도시

라 리오하의 산토 도밍고 데 라 칼 사다였다.

호텔 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돌벽과 나무기둥이 엮여 있는 복도는 마치 세월이 쌓인 시간의 복판 같았다.

건물 한가운데에는 수백 년 된 나무 기둥이 있었다.

그 표면은 세월에 닳아 매끈했지만, 그 옆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은 여전히 거칠었다.

나는 호텔 벽면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와 돌을 바라보다가 문득,

돌이 나무를 지탱하고, 나무가 돌에 온기를 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과 사람도 그렇게 기대어 살아가는 건 아닐까.

이곳의 구조는 마치 인간관계의 축소판 같았다.

호텔에서 정비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성당의 종소리에 이끌려서 광장으로 자연스럽게 나왔다.

종소리는 위로 퍼지고, 그 울림이 벽돌 건물 사이를 흘러나올 때, 나는 비로소 ‘오늘이 끝났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성당의 종소리가 저녁 하늘을 흔들고,

광장 위에는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묻어 있었다.

저녁은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느껴본 ‘식사의 기쁨’이었다.

빵을 찢는 손끝에 힘이 빠지고, 붉은 리오하 와인이 입안에 스며들었다.

피로가 녹아내리는 그 순간,

한 모금의 와인과 한 조각의 빵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지를 처음 알았다.

창밖의 광장에서는 순례자들이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있었고,

성당의 종탑 아래로는 느리게 저녁이 내려앉고 있었다.

밤이 깊자, 방 안은 조용했다.

조명은 부드럽게 돌벽을 감싸고, 공기는 포근했다.

잠들기 전 창문을 열어보니, 성당의 십자가 불빛이 바로 맞은편에 떠 있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흔들리며,

마치 “잘 왔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순례는 단지 길 위의 여정이 아니라,

이처럼 잠시 머물러 나를 다시 느끼는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다시 한번 그 나무와 돌을 바라보았다.

세월을 견딘 두 재료가 서로에게 기대어 서 있듯,

나 또한 오늘의 나를 어제로부터 지탱받고 있음을 느꼈다.

돌과 나무 사이에서 보낸 하룻밤이,

이 긴 순례길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앞서서 말했듯이 이곳의 순례자 병원은 11세기, 유럽이 신앙의 열기로 가득하던 시절에 세워졌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의 청자가 막 비색을 띠기 시작했고, 아마 불경의 소리가 산천을 울리던 시기였을 것이다.

나는 오늘 천 년의 세월이 숨 쉬는 이 돌벽과 나무기둥에서 그 시절의 숨결을 느끼며,

그리고 그 긴 역사의 시간 속에 잠시 돌벽과 나무기둥사이에 끼어들 듯

이 역사적인 호텔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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