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타의 바람을 달리다
부르고스를 떠나자마자 펼쳐진 풍경은 끝이 없는 평원이었다.
도로 양옆으로는 이미 고개 숙인 해바라기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너머로는 구름이 낮게 흘렀다.
해발 800미터의 고원, 메세타(Meseta) 평원 순례길의 중심이자 가장 고독한 구간이었다.
바람은 언제나 정면에서 불었다. 초반의 오르막을 넘자 바람결에 섞인 흙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길은 단조로웠지만, 그 단조로움 속에 묘한 평화가 있었다. 페달을 밟는 내 리듬과 바람의 박자가 하나가 될 때면, 나는 세상과 함께 숨 쉬는 기분이었다.
그날의 하늘은 잊을 수 없다. 구름은 한없이 부풀어 오르다 어느 순간 검게 변했고, 멀리서 빗줄기가 수평선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빗방울이 닿을 듯, 닿지 않을 듯.
메세타의 하늘 아래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변했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는 것도,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카스트로헤리츠(Castrojeriz)에 다다를 무렵, 언덕 위의 작은 성당이 보였다.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건물, 오래된 돌벽 위에는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 새겨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말없이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길 위의 흙먼지가 내 물통과 얼굴에 두껍게 쌓여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 먼지마저 성스러워 보였다.
물통을 들어 입을 대자, 입안 가득 먼지 맛이 섞였다.
“그래, 순례란 이런 맛이지.”
완벽하지 않아도, 불편해도, 그 안에 하루의 진심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길의 냄새와 색깔, 바람의 온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덕 꼭대기에는 ‘12% 경사 하강’ 표지판이 서 있었다.
해발 1050미터. 브레이크를 잡기 전, 잠시 뒤돌아봤다.
내가 걸어온 길 위로 검은 구름이 다시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바람이 다시 불었고, 나는 브레이크를 풀었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그건 고통이 아니라 자유의 속도였다.
그 순간, 나는 과거의 나로부터 벗어나 미래의 나로 향하고 있었다.
프롬리스타(Frómista)에 도착할 무렵, 하늘은 다시 맑아졌다.
길 옆의 벽화에는 성인(聖人)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시간에 빛바랜 그 벽화 앞에 자전거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그의 눈은 마치 말하는 듯했다.
“길 위의 흙과 바람은 모두 너의 기도다.”
그 말을 듣는 순간처럼, 나는 내 안의 고요를 느꼈다.
오늘 하루의 피로, 흙먼지, 땀, 그리고 길 위의 예의까지 모든 것이 순례의 한 장면이었다.
길 위에서 본 모든 장면
구름 낀 메세타의 하늘, 성모의 눈빛, 먼지 쌓인 물통, 그리고 닳아버린 신발.
그것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삶이란, 조금씩 닳아가면서 깊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오늘도 그 닳은 마음으로 또 한 걸음을 내딛는다.
바람은 여전히 거칠었지만, 그 바람이 이제는 나를 밀어주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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