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에서 벗어나려면

행복과 불행의 변주

by 하늘아래

근심에서 벗어나려면


주역 계사전에 ‘樂天知命(낙천지명), 故不憂(고불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는 50세를 ‘知天命(지천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천명을 알았다고 한 50대에 인생의 근심이 없었나 하면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공자의 인생에 끝도 없이 떠도는 방랑의 시절이 50대 중반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樂天(낙천)’은 자연의 섭리를 즐긴다는 말이고 ‘知命(지명)’은 그 섭리를 이해하고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樂天知命, 故不憂’의 해석은 ‘천명을 즐기고 알게 되면 그 결과 근심에서 벗어난다’라고 해야 하나요? 어떤 사람들은 이 글귀를 하늘의 뜻이 자신과 어긋나도 그것을 운명으로 여기지 않고 맞서 이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합니다. 잘 적용하였다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선 중기의 문인인 상촌 신흠(申欽,1566∼1628)이 청음 김상헌(金尙憲,1570~1652)에게 쓴 편지에 보니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습니다. 신흠이 당시 조정에서 물러나 근근이 살아가던 차에 김상헌이 유배를 가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차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저는 전처럼 지내고 있습니다마는 근심과 함께 살고 있으니 어찌한단 말입니까. 옛사람이 비록 ‘천명을 즐기고 안다(樂天知命)’고 하였으나 역시 억지로 한 말일 것입니다. 우리 일을 만약 옛사람이 당했더라면 천명을 즐기느니 안다느니 하는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欽粥飯如昔, 而奈與憂俱居. 古人雖曰樂天知命, 亦恐此強言也. 吾輩之事, 縱使古人當之, 有不暇樂焉知焉也) -「寄淸陰」 중에서

신흠은 주역의 ‘樂天知命, 故不憂’라는 말에 딴지를 걸었습니다. 옛사람도 우리의 힘든 상황에 닥치면 고통 자체를 감당하는 것도 벅차 한가하게 그것의 의미를 곱씹을 여유조차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樂天知命’이라는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김상헌이 당한 어려움에 따뜻한 공감을 먼저 한 샘입니다.

천명을 안다는 것은 인간능력의 한계에 대한 자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늘 그런 운명을 대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붓다가 29세에 출가한 이유 또한 ‘일체개고(一切皆苦)’라는 인생의 운명을 직면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고통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신의 미움을 산 시지프스의 비극은 떨어진 돌을 힘들게 굴려 올려야 하는 삶의 무게에 있지 않고 아무리 돌을 올려도 다시 굴러 떨어지고 말 거라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 있습니다. 전혀 변화될 것이 없는 삶의 반복, 그것이 시지프스의 비극이며 오늘날 우리의 비극인 샘입니다. 오죽하면 카뮈(Albert Camus,1913~1960)는 시지프스의 비극에서 인간운명의 실존과 반항의지를 발견했습니다. 돌을 굴려 올라가는 시지프스의 행위에서 부조리한 삶에 대한 긍정과 자긍심을 찾은 것입니다.

‘不憂’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명 자체가 비극인 것을 어쩔 수는 없지만 그것을 내 것으로서 주체 속에서 파악할 때 강한 긍정의 힘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버겁습니다. 저는 앞의 과정을 ‘知命’, 뒤의 과정을 ‘樂天’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시지프스는 적어도 산꼭대기에서 돌이 떨어진 아득한 지면으로 터벅터벅 내려오며 자신의 운명과 매일 마주하였을 것입니다. 또 다시 시작해야 할 인생의 험난함을 직시하며 좌절하지 않는 의지, 그럴 때 인간은 자유를 느끼고 근심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성경을 보니 예수님은 고통을 덜어주기보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라고 합니다. 그 길은 겟세마네의 길이고 골고다의 길입니다. 시지프스에겐 돌덩어리가 자신의 십자가입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는 저주고 누구에게는 축복이 아닙니다. 저주와 축복은 동전의 양면처럼 늘 붙어 다닙니다. ‘樂天知命’은 예측이 불가한 인생사에서 신의 지혜를 엿본 사람의 고백입니다. 그렇게 하면 ‘不憂’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고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