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게으르려고 일한다

게으름에 대한 변론

by 하늘아래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모두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저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을 뿐이라면 그에게 예배는 하나의 세상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신의 영혼에 참된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한 정직한 고뇌,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향한 진지한 염려와 경건한 근심, 진리를 알고자 하는 실천적인 열심, 그것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삶은 종교생활이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 김남준-《게으름》 중에서

* 김남준 목사는 규칙적인 예배생활의 위험성을 종교생활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종교생활대신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한다. 사실 기독교인은 일상생활에서 규칙적인 예배생활을 하는 것 자체도 힘들다. 남들이 쉬는 주말에 각종 교회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김남준 목사의 말을 듣고 있으면 게으름은 죄이면서 영적인 태만이다.


과연 그럴까?


진리를 향한 끝없는 추구와 실천은 그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즉 게으를 틈이 없으니 발전도 없다. 누가 무엇이 게으름인지 정의할 수 있을까? 타인을 게으르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대하듯 노동자의 게으를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게으름을 정의할 주체는 자신 밖에는 없다. 사고하는 인간의 자유와 특권은 오직 빈둥거림과 게으름에서 생긴다.


게으름을 죄악시하는 행동양태는 근대를 지나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청교도 혁명시기를 거치며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산업화 사회에 게으름 만한 죄악은 없었다. 소명의식은 부지런함과 부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게으름은 가난이며 저주였다. 돈을 버는 상태가 구원의 증거였고 성공하는 삶이었다. 지금이라고 다른가? 현대인들은 엄청난 양의 카페인을 아침마다 위 속에 부어 넣으며 일터로 향한다. 휴가를 내려면 엄청난 결단을 해야 하고 쉬는 것에 죄책감마저 느낀다. 참 불행한 삶이다. 그런데 적어도 윤회와 환생이 지배했던 과거 아시아 문화권에서 시간이란 끝없는 것이고 남아도는 것이었다. 자연을 벗하며 차를 마시고 한담을 나누었다. 덜 먹고 적게 소유하는 것을 인생의 겸양이라 여겼다. 출가나 수행, 명상은 속세를 떠나 게으른 자만 누릴 수 있는 삶의 지고한 선택이었다. 길어야 70, 80사는 인생이라면 그렇게 죽어라 일하다 죽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간은 게으르려고 일한다.


노후를 준비하는 세대가 그렇다. 김남준 목사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겠다. 그럼에도 나는 그러잖아도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영적인 게으름까지 언급하며, 게으름을 죽여야 거룩해진다고 채근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칭하며 그렇게 말하는 당신만 게으름을 죄로 여기고 부지런하면 될 것 아닌가? 적어도 내가 아는 거룩한 삶은 온전한 인간이 되는 삶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김남준 목사 말대로 그렇게 부지런히 영적인 것 좋아해서 지금 세상이 더 좋아졌나? 절대 그렇지 않다. 세상은 지나치게 거룩해지려 하고, 부지런해지려 하는 사람들이 다 망치고 있다. 부지런함은 자기 욕심일 뿐이다. 삶의 좋은 것은 하는 일 없이 좀 더 빈둥거리고 신앙생활조차 게으름의 쉼표를 찍어가며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하고 머뭇할 때 떠오른다고 믿는다.


게으름은 거룩한 삶의 은밀한 대적이 아니라 해방이고 자유다. 이제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라 게을러질 용기가 필요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