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7. 눈치 없는 것도 매력이니까
여러 번 글로 썼다시피 동오는 실외배변견이기 때문에
비가 와도 천둥이 쳐도 폭염이어도 하루 3회 이상의 산책이 필수다.
재택근무를 하는 나는 더운 여름 추운 겨울 가리지 않고 항상 점심시간에 동오와 산책을 하는데
가장 힘든 때는 아무래도 무더운 여름이다. 나도 힘들지만 강아지는 기본적으로 사람보다 체온이 높고 털로 뒤덮여 있어서
땀으로 체내의 열을 배출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운 날 무리한 산책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동네에 펫프렌들리 한 카페가 있고, 사장님이 동오를 예뻐해 주셔서 무더운 산책길에 잠시 카페에 들러 에어컨 바람도 쐬고 물도 마시곤 했다.
사장님이 주시는 간식에 빠진 동오는 점심시간만 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카페로 직진하는데
얼마 전 무더위에 동오와 점심 산책을 나섰을 때 하필이면 준비해 둔 원두 소진으로 카페 문이 닫혀있었다.
문이 닫힌 줄도 모르고 카페 안에 들어가 사장님을 만나겠다는 동오를 끌고
땀을 줄줄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벤치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동오가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동오는 낯선 사람한테 크게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라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주목해서 바라본 적은 거의 없는데
민망함에 리드줄을 아무리 당겨도 동오의 시선이 할머니에게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할머니와 나 둘 다 동시에 깨달았다.
동오가 뚫어져라 쳐다본 것은 할머니가 아니라 할머니가 들고 있던 삼다수 통이었던 것이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고, 햇빛을 내리쬐고 있었고, 동오는 카페에 들르지 못해서 차가운 에어컨 바람도 쐬지 못하고 물도 마시지 못한 상태였다.
삼다수 통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버티는 동오가 안쓰러우셨는지 할머니는 물을 나눠주시겠다고 하셨고
물을 담을 마땅한 그릇이 없는 상태라 손에다 받아서 물을 먹였다.
할머니가 물뚜껑을 열자마자 할머니 옆으로 달려 올라가서는 앉아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는 모습의 동오라니
목이 많이 말랐구나 안쓰러우면서도, 민망하면서도, 귀여움에 웃음이 났다.
평소 동오는 겁도 많고, 낯도 많이 가리고, 소심한 성격이라 이런 넉살을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눈치 없는 귀여움이라니,
강아지들은 계산하지 않고 행동하는 순수한 존재라서 눈치 없이 행동하는 것도 그저 귀엽게 느껴진다.
반대로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넌씨눈이라는 말은 눈치 없는 사람을 비하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넌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눈치가 있어야 직장 생활을 잘한다, 사람이 눈치가 있어야 한다
눈치에 대한 말들도 참 많다. 사람들은 마친 눈치란 살아가면서 반드시 갖춰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필수 역량처럼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될 때가 많다. 오히려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착하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자기 검열에 취약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야기 끝에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을 때,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또는 누구보다 편해야 하는 가족 사이에서도
심지어 내가 상처받은 상황에서 조차도 내가 눈치가 없어서 뭔가를 잘 못 했던 것은 아닌가 누군가에게 내가 넌씨눈으로 비치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나도 강아지들처럼 넌씨눈으로 살고 싶다.
마음처럼 안되는 이 세상에게
가짜 웃음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 빼고 모두가 다 완벽한 인스타그램 속 친구들에게
연차가 쌓일수록 압박감 가득한 회사에게
그래 난 c발 눈치도 없다! 니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나한테 뭘 원하던 간에 나 하고 싶은 대로 한다! 난 내길을 간다!고 외치고 싶은 때가 있다.
아니 넌씨눈으로 살 수 있는 강력한 멘탈과 미움받을 용기를 장착하고 싶다.
아무래도 인간 세상에서 강아지들처럼 넌씨눈으로 살아도 귀엽게 여겨질 수 있는건 힘들테니까 말이다.
이 기회를 빌어 길에서 만난 모르는 넌씨눈 강아지에게도 너그럽게 물을 나눠주신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덕분에 그날 동오는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었고 나는 잠시나마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