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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Aug 14. 2022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2022.08.14

동생의 카톡을 본 순간 반갑지 않은 말을 들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 좋은 촉이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촉은 예상을 적중했고 그렇게 난 남자 친구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온 날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종교가 없는 나는 어릴 때부터 사후세계의 존재 여부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천국과 지옥은 누군가 지어낸 허구의 세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 누구도 죽은 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달하지 못할 텐데 사후 세계가 있다는 말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으며 대체 어떤 이가 퍼트린 걸까 싶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말이다.


남자 친구와 사 주년을 맞이하고 남자 친구의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멀지도 길지도 않은 여행이었지만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참 좋은 시간이었다. 저녁이 되고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여행은 어떠냐는 질문과 함께 할아버지가 편찮으셔 동생과 같이 할아버지를 뵈러 시골에 왔다고 하셨다. 연세가 드시기는 했지만 앉아서 식사도 잘하시고 티브이도 잘 보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남자 친구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가 오간 다음날 아침 숙소를 나서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카톡이 울렸다. 동생이었다.

'언니'라는 두 글자에 뭔가 안 좋은 촉이 왔고 나는 바로 답장을 했다. 그리고 동생에게선 '할아버지 돌아가셨어.'라는 답장이 왔다.


카톡을 본 순간 가슴이 턱 하고 막힌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제까지 식사도 잘하시고 과일도 잘 드셨다고 했는데 아침을 드시곤 피토를 하셨고 그대로 병원을 향하던 응급차에서 숨이 멎으셨다고 했다. 믿기지 않은 소식에 슬프다는 감정보다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앞섰다. 그날은 남자 친구와 나의 4주년이었고 휴가철이다 보니 장례식장으로 가는 버스와 기차가 전부 매진됐었다. 별수 없이 다음날 장례식장으로 가기로 하고 남자 친구와 하루를 더 보냈다. 그렇게 난 입관을 보지 못했다.


장례식장이 있는 부여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탔다. 5시간이 걸려 부여에 가는 길에 내 마음에는 온통 조급함 투성이었다. 이상하리만큼 나지 않던 눈물이 부여로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나더니 부여에 내려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테이블에 검은 옷에 흰 리본을 머리에 단 엄마가 보였고 나는 바로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들어갔다. 무거웠던 짐 가방을 내려놓고 할아버지의 사진이 놓인 단상을 둘러봤다. 손이 덜덜 떨려 국화꽃도 제대로 짚지 못했고 한참을 엎드려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난 장례식 내내 엄마 옆에 딱 붙어서 내 슬픔은 잠시 묻어두고 엄마에게 내 품과 어깨를 빌려줬다.


일상으로 돌아와 내 기억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생각하다 문득 큰 아쉬움과 슬픔의 소용돌이가 몰려온다. 내 여행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던 할아버지는 함께 마늘을 까던 내게 '너는 너 이모들이나 삼촌보다 훨씬 용감한 인생을 산거야. 혼자 그렇게 돌아다니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아무도 그렇게 못했어.'라며 '나 죽기 전에는 결혼해야지. 할아버지 손자 손녀 결혼식 보고 죽고 싶다.'라고 하셨다. 평소에 워낙 과묵하시고 내 여행에 관심이 없어 보였던 할아버지의 한마디는 내게 잊지 못할 감동을 줬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씀을 또 마음을 내비쳐주셨던 할아버지의 마음과 모습이 잊히질 않아 가슴이 아려온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이 될 때면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게 내 생에 큰 후회나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마음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남아 있는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후회 없이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며칠 내 온종일 흐리고 비가 내리던 하늘이었는데 할아버지가 하늘로 가신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이었다. 하늘에서 할아버지를 반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에서 아팠던 날들을 뒤로하고 하늘나라에서의 날들을 시작하게 된 할아버지의 또 다른 생이 탁 트인 바다처럼 푸르른 산처럼 그렇게 새하얗게 보기 좋았으면 좋겠다.


유난히 엄마의 마음을 잘 알아주셨던 할아버지가 그립다. 묵묵히 계셔주셨던 그 자리가 그립다.


aug 14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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