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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Oct 02. 2022

그만 1

2022.10.02

점심을 먹고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속이 뒤집어졌는지 결국 모두 게어내고 말았다. 난 확실히 감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복잡하다. 칠월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에 폭풍이 휘몰아쳤다. 장례가 끝나고 목 뒤에 이상한 혹이 생겨 수술을 했고 바로 코로나에 걸렸다. 알바를 하던 매장에서 코로나로 인해 큰일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인 큰 일이다. 또 4년 동안 진지하게 만나던 남자 친구와 끝을 볼뻔했다.

10월 초에는 마지막 졸업 심사를 앞두고 있고 10월 중순에는 대학원 모집일정이 있다.


장례식의 후폭풍이 잠잠해졌고 코로나의 후유증도 거의 다 좋아졌다. 목 뒤에 수술자국도 아주 조금씩 옅어지고 있던 구월의 마지막 주 목요일이었다.

졸업하고 도대체 뭘 할 거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내 계획을 말씀드릴 수 없어서 할 말이 없었다. 교수님의 속 마음까지는 내가 알 수가 없지만 교수님은 내게 지금까지 쭉 작업을 해오길 권해오셨는데 갑자기 조교자리를 권하며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원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말씀해주셨고 대학원에 가고 싶었던 나는 마음에 작은 새싹이 돋은 기분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생각은 거슬러 올라가면 이십 대 초중반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또 그걸 그리곤 했다. 그래서 여행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난 그 직업이 돈 많고 부자인 사람들이나 가질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자기 이야기하는 게 뭐가 좋냐고 한다면 이렇다 할 표현은 없지만 왠지 자존감이 올라가고 용기가 생기고 쾌감이 느껴지고 그렇달까? 정확한 표현은 모르겠지만 내 정신상태에 굉장히 이로운 행위인 건 확실하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좋고 또 내가 미소가 지어진다면 그거면 된 게 아닐까?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원에 다닐 수 있는 소식을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학비 때문에 반대를 했던 부모님이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다 못해 거의 외면을 받았고 난 마음속에 큰 상처가 생겼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이유들을 들을수록 조금 더 이기적이고 말 안 듣는 딸이 되어가고 있었다. 30대가 되어서 돌아온 학교에서 이렇게 생긴 기회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고 내 인생에 또 좋아하는 걸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싶었다.


점심을 먹고 대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속이 뒤집어졌는지 결국 모두 게어내고 말았다. 난 확실히 감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하루 종일 미열이 났고 안 좋은 속을 움켜쥐고 알바를 했다. 함께 일하던 알바분이 퇴근하고 혼자가 되자 바로 눈물이 쏟아졌다. 곱씹어보니 복잡하고 힘들었던 칠월 이후 하루도 온전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 생각도 없고 싶었고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혹시 그게 죽음인가 싶어 정말 힘들 대로 힘들어하고 있구나 난 아무에게도 기대고 있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었도 그 생각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인생의 길고 긴 마라톤에서 지금 나는 어디쯤을 달리고 있을까. 시작은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다 똑같이 하지만 끝은 모두가 다르니까,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pm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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