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su Jan 02. 2023

08. 진짜 마음가짐

Montreal, CANADA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비행기가 네 시간이나 늦어질 줄은 생각을 못했다. 악명 높은 플레어 항공의 연착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고 나는 덕분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몬트리올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어 다운타운으로 넘어가 쇼핑몰을 둘러봤다. 그는 짜증을 낼 정도로 내 선물을 거절하고 있지만 말이다.


눈 깜짝할 새에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여행도 인생도 말이다. 하루만 지나면 31살이 된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그런데 사실은 사 년의 공백이 많이 느껴지기도 한다. 체력적으로 힘들다기보다는 나의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여행을 많이 했던 이십 대 초 중반에는 사고 싶은걸 사지 못해도 먹고 싶은걸 먹지 못해도 대충 여미고 다니며 겁도 없이 늦은 시간에도 길거리를 휘저으며 다니고 되게 당찼던 거 같은데 지금이랑은 좀 다른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북적북적 함께하는 연말이라 더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여행을 하면 굶는 일이 다반사인 나는 이번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음식섭취를 잘하고 있지는 못한다. 일단은 먹고 싶은 음식이 없고 나는 달고 짜고 기름기 있는 음식을 잘 못 먹는데 외국음식은 대체로 그런 부류기 때문에 비싼 돈과 팁을 내가 시켰을 때 반 이상은 남기는 일이 다반사이고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그는 밥때가 되면 밥을 좀 먹고 사야 할 게 있으면 좀 사라며 나를 나무랐다. 넉넉하지 않게 돈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는 걸 알지만 부족하면 자기가 도와줄 테니 여행을 좀 풍족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마음이었다.

이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가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내게 해준 것들이 어마무시하게 많고 크기 때문에 염치 불고하고 그에게 더 도움을 청하고 싶지도 않고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그 마음이 편하지도 않을게 분명했다. 또 도움을 받아서 욕구와 필요를 채우는 대신에 후에 글이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할 때 부족하게 여행을 했다고 하지 말라는데 원래 내 것을 쓰는 것과 그의 것을 받아 쓰는 건 큰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부족하게 여행을 하는 게 더 괜찮겠다고 그에게도 설명했다.


그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정말 말로 표현 못하게 고맙지만 그는 내가 아니니 나를 쉽게 이해할 수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사 년을 넘게 만났는데 아직도 날 잘 모른다고도 생각했다. 나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그의 손을 빌려 욕구를 채워 무언가 손에 넣는다면 그 자리에 또 다른 욕심이 채워질 거 같아, 애초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다. 애초에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고 나는 나를 믿기도 하지만 못 믿기도 한다.


가지고 싶은 건 가지라고 하는 그의 마음을 계속 거절하다 보면 가끔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악마의 속삭임을 듣는 느낌도 들고 말이다. 하지만 내 것인지 아닌지를 나는 항상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손 놓고 받고만 있지도 않고 말이다.

이런 여행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어지간히 싫어하는 그에게 속 편히 내 마음을 내 비친 적은 없었다. 극히 이성적인 그가 무언갈 포기하고 이렇게 시간을 낼 리도 없고 애초에 여행을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를 분명히 하자면 나는 그런 것들은 필요 없으니 모으고 모아 이런 여행 한번 같이 하는 게 내가 명품백보다 가지고 싶은 카메라보다도 제일 원하는 선물이다. 나는 언젠가 했으면 한다는 뜻인데 그는 또 당장 할 거도 아닌데 왜 모으냐는 말을 하겠지만,


2022년도가 아주 급히 지나갔다. 호스텔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친구가 추천해준 카페 겸 바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참 생각을 하다 오늘도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에 가서 짐을 챙겨 공항에 갈 준비를 해야겠다. 그가 일어나면 정말 받고 싶은 선물 하나만 제발 말해달라고 해봐야지.

Dec30.22


작가의 이전글 07. 욕심 버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