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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Jan 04. 2023

09. Im lucky girl

Calgary, CANADA

결국은 한 시간 더 비행기가 연착됐고 나는 열두 시가 넘어서 캘거리에 도착했다. 캘거리에서 5일 동안 할 게 있냐고 물어보는 호스텔 친구들에게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내 생각에 몬트리올도 크게 할 건 없었다.


퀘벡에서의 악몽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공항픽업을 신청했다. 12시가 넘으면 비용을 두배로 지불해야 하지만 마음 좋은 가이드님께서는 원래 가격만 받아주셨고 오늘 정말 말도 안 되는 날씨라며 공항에서 나온 새벽 한 시에 야경을 보러 가주셨다.

로키산맥 옆에 있는 캘거리는 겨울이 되면 기본 영하 20도는 훌쩍 넘고 보통 영하 30도 정도인데 내가 도착한 오늘은 로키산맥이 가지고 있던 추위가 며칠 정도 풀리는데 딱 그 첫날이라고 하셨다. 영하 33도였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영하 6도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별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경을 보러 올라가니 캘거리는 서울과 비슷한 지형을 하고 있는데 강을 따라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비슷했고 실제로 그렇다고 했다.


이렇게 맑은 하늘을 본 게 얼마만인지 너무 늦은 시간에 체크인을 하고 캘거리에 도착하긴 했지만 이 날씨면 정말 로또라는 모두의 말을 들으니 새해 마지막날이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샤워를 미루진 않았다. 씻고 나오니 새벽 두 시가 넘는 시간이었고 난 삐걱거리는 6번 침대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늦잠을 자려고 했는데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룸메이트들 때문에 별수 없이 잠에서 깼다. 이내 다시 잠들 수도 있었지만 한번 눈을 뜨면 원래 잠에 잘 들지 못하기도 했고 좀 더 자서 뭐 하나 싶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여덟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나는 이내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이곳은 퀘벡에서 묵었던 숙소와 똑같은 회사의 숙소였는데 그 회사의 숙소들 중에 제일 시설이 좋다고 몬트리올에서 만난 친구들이 이야기를 해줬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갔지만 다른 곳과 달랐던 점은 햄과 삶은 게란이 있었다는 거 외에는 없었다. 같은 방을 쓰는 어디 나라에서 왔는지 모를 아시아 룸메이트는 두세 개의 요플레를 방으로 챙겨 와 쟁여두기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제 맑았던 밤하늘이 아침까지 이어졌다. 구름 하나 없이 맑은 모두가 이상하다고 하는 앨버타주의 날씨가 참 포근하다. 종일 다운타운을 주인을 쫓는 강아지처럼 종종 대며 걸어 다녔다. 몬트리올에서 만난 호스텔 친구들이 오일동안 캘거리에서 할 게 있냐는 말에 조금 공감을 하기도 했지만 난 쉼이 필요하기도 했고 이 작고 조용한 도시가 어쩐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한해의 마지막날을 뭐를 하며 보낼까 하다 이내 평소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새해 카운트다운은 봐야겠다는 생각에 샤워를 하고 11시 55분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캘거리 타워가 잘 보이는 호스텔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들뜬 표정으로 폭죽이 터지길 기다린다. 자정이 되고 사람들은 큰 소리를 해피뉴이얼을 외친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누가 자유로운 국가가 아니랄까 봐 새해 폭죽이 터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운타운으로 향한다. 개개인이 폭죽을 터트리기도 하고 귀여운 아이들이 해피뉴이얼을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닌다. 아파트의 각층에서는 새해를 축하하는 의미의 장난감 악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폭죽을 보는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캐나다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너무 바쁘게 살아온 탓에 30살을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지만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더 생각나는 밤이자 기분이 좀 외로워지기도 한다. 새로운 나와 마주하기도 하고 좀 작아지기도 뿌듯해지기도 하는 이 여행을 앞으로 남은 한 달 동안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는 내일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새해에 무언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을 했으면 좋겠다. 무너지더라도 더욱 단단해질 수 있는 것들 말이다.

Dec.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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