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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Jan 06. 2023

10. 텀, 쉼, 등등

Calgary, CANADA

새해가 된 어젯밤, 각기 다른 캐나다의 도시에서 온 40대 룸메들은 클럽에서 광란의 밤을 즐긴 것 같았다. 내 침대의 머리맡이 정말 방문 바로 앞에 배치되어있기 때문에 문을 여닫을 때마다 알 수 있었는데 발걸음만 들어도 지침+취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 옆 그러니까 문 근처에 둔 내 실내용 슬리퍼에서 외출용 신발에 많이 밟힌 흔적을 찾을 수 있었고 나는 뭐 별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 작은 캘거리라는 도시에 온 이유는 앨버타주에 진입하기 위함이 제일 큰 이유였다. 앨버타주에는 모두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밴프라는 도시가 있는데 여기에서 그곳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고 나는 그나마 공항이 있는 큰 도시를 찾다가 이곳을 선택했다. 도착한 첫날 픽업가이드님이 날씨가 좋아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보여줄 게 있다며 나를 야경+뷰 명소로 데려가셨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깔끔한 도시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었다. 아마도 날씨도 한몫을 했겠지. 하지만 막상 낮이 되어 도시를 마주하니 한 블록에 홈리스가 2-3명은 무조건 있었고 토론토나 몬트리올같이 큰 도시보다 더 많은 홈리스와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이를 먹고 여행을 오니 왜 겁이 많아진 건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 아시안 혐오가 생겨 나타나는 현상들을 뉴스로 종종 접해서일까, 그 이유 때문에 더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살짝 아쉬운감이 있기는 하지만 위험한 건 나도 싫고 걱정을 끼치고 싶기도 않았다. 그래도 각 도시에서 그 시간대에 보고 싶다고 소망했던 것들은 거의 다 봤기 때문에 아주 큰 아쉬움은 없었다.


오늘은 신정으로 거의 모든 소비를 하는 곳이 문을 닫는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라 원래부터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재정비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숙소를 나서기 위해 가방을 싸는데 오늘은 온전히 작업에 집중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모두 내려두고 안경과 필통 크로키 북만 챙겨 옷을 대충 걸쳐 입고 머리를 질끈 묶은 후 밖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여행객이 아닌 거처럼 말이다. 구글에 문을 열었다고 해서 이십 분을 걸어 방문한 카페는 어두컴컴 문이 닫혀있었고 다시 숙소 근처로 돌아와 숙소에서 삼분거리의 카페에서 네 시간 정도 머물며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12일 만에 이렇게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게 처음이었는데 옛날 느낌도 나면서 손이 굳었을까 살짝 불안한 마음으로 대학원 개강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진득이 앉아 그림을 그리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고 나 같아지기도 했다.


특별한 것 없이 새해 첫날을 보냈다. 대신에 가장 나다운 쉼을 한 새해 첫날이었다. 버킷리스트를 세우지 못했는데 며칠 뒤에 있을 미국여행 계획도 세우지 못했는데 살짝 엉망진창 나 같으면서도 나 같지 않은 여행을 하는 중이다.

Jan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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