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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Feb 15. 2023

13. 지극히 선명히 흐르는 시간들

Jasper, Arberta

가로등하나 없는 이 93번 도로가 나는 무섭기만 하다. 원래 이렇다며 별문제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신 기사님은 얼마나 많은 어둠을 헤치셨을까 싶었다.


운전엔 별 도움이 안 됐겠지만 빛이 없어서 오히려 산맥과 나무 호수 눈 같은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들에 더 스며들었다. 네 시간을 산길을 따라 이동하니 핸드폰도 안 터져서 정말 이 길 위에는 버스 안에 있는 6명과 대자연뿐이었다.


곰이 나오지는 않을까 설록이 나오지는 않을까 기대하며 창문에 바짝 붙어있다가 내 입김이 금세 얼어버리는 걸 보고 이내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대어 그림 같은 이곳을 바라봤다. 중간중간 있는 넓지 않은 공터 같은 곳에 차들이 재정비를 한다. 누구 하나 포기 없이 끝끝내 무덤덤하게 정비를 하고 이내 다시 출발하는 사람들을 보니 시련이나 생각지 못한 일들에 있어서 좀 무덤덤해져도 괜찮겠다 곱씹었다.


캘거리와 캔모어에 있는 내내 구름 몇 점 없이 푸른 하늘이더니 거짓같이 하늘에 먹구름만 선명하다. 기온도 떨어지고 말이다. 누군가 하늘에서 내 여행을 후원해 주는 게 분명했다.

재정비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던 어제,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위해 카드를 샀는데 혼자 놀다 보니 시간이 다 지나버려 편지를 쓰지 못했다. 밴프에 도착해서 짐을 맡길 곳이 없다면 카페에 앉아 편지나 써야겠다 싶었는데 짐을 맡길 곳도 있었다. 기프트샵에서 더 이쁜 엽서들을 발견해 애꿎은 지갑만 비어지는 중이랄까,


밴프에서 하루를 묵지못해서 내내 후회할까 싶었는데 무박으로 이틀정도 와보니 큰 후회는 되지 않았다. 내게는 아기자기한 캔모어가 더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눈에 선명하니말이다. 세 시간 만에 시내를 전부 둘러보고 제스처로 향한 지 세 시간 삼십 분째 이제 해는 모두지고 자동차에 달려있는 라이트를 생명줄 삼아 우리는 이 길 위를 달리고 있다.


스위스에서 겨울에 야간썰매를 탔었는데 그때 안전요원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white is live, Black is dead’ 펜스하나 없는 그 산을 무슨 모험심으로 올라갔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충 눈을 따라 내려오면 살고 검은색으로 보이는 돌, 절벽, 나무로 간다면 죽는다는 뜻이었다. 지금은 무슨 색을 따라 가는진 모르겠지만 빙질에 따라 또 높낮이에 따라 운전속도를 조절하는 기사님에게는 내 이 한 목숨을 맡겨도 괜찮겠다 싶었다.


벌써 캐나다에서의 여행이 일주일밖에 남지를 않았다. 이 시간이 다가오길 얼마나 곱씹어 기다렸는데 너무 빠른 거 같아 속상하다가 또 나쁘지 않게 흘러가고 있는 거 같아 더 선명이 남겨야겠다 싶기도 하다. 도착시간이 삼십 분 후니까 이제부터는 제스퍼에 도착하면 저녁으로 뭘 먹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하루 만에 두 번의 도시이동은 내게 큰 피곤함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내게도 처음이었다. 캔모어의 버스정류장도 밴프의 버스정류장도 내가 타야 할 버스들도 다 첫 만남이었기 때문에 긴장을 안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가로등이 없는 꽁꽁 얼은 산길을 달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으니 피곤함은 마치 이곳의 추위처럼 온 공기에 가득할 만도 했다.


무사히 제스퍼에 도착해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스탭에게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근처에 한식집을 말해줬다가 내가 가고 싶어서 체크해 뒀던 식당 중에 한 군데를 말해주며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보라 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식은 무슨~ 하고 체크해 둔 곳을 가려고 했는데 어느샌가 내 발은 한식당을 향하고 있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추장돼지불백을 시킨 뒤였다.

Jan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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