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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Feb 27. 2023

15. 오고 싶었지만 오기 싫었던 밴쿠버

in the train (Jasper to Vancouver)

기다리던 기차를 타던 날이다. 숙소에서 날 잘 챙겨줬던 스탭이랑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아침 일찍 데스크를 들여다보니 아쉽게도  그 스탭은 없었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가방을 낑낑이고 또 끌고 숙소를 나서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번에 탈 기차는 제스퍼에서 밴쿠버로 넘어가는 24시간이 걸리는 기차로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정말 정말 큰맘 먹고 1 cabin인 침대칸으로 예약했는데 가격이 약 100만 원 이어서 며칠을 고민했지만 내가 또 여길 언제 오겠나 싶어 그냥 사버렸다. 겨울의 로키산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열차인데 그 사실만으로 내게 너무 낭만적인 행위라는 생각 들었고 여행을 사랑하게 되면서 이렇게 큰 사치를 부린 건 처음이었다. 아니 사치는 아니고 내 영혼에 이로운 쓰임이랄까? 무튼 출발 전에 여기저기 자랑을 하기도 했었다.

큰 백팩을 짊어지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기차역에 들어서 데스크로 갔다. 티켓을 보여주니 다들 티는 안 내려했지만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백패커는 이 칸을 쓰면 안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한편으로 그들의 예상을 깨서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기차 속에서 본 캐나다는 경이로웠고 눈을 뗄 수 없었고 말로도 사진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풍경들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이 한 문장만으로 기차 안의 풍경을 당연히 표현할 수 없겠지만 더 이상 이 말 말고는 할 말도 없다. 앞으로 나열해 나갈 인연들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배가 고파 식당칸에 가서 브런치를 먹고 돔으로 된 칸에 가서 산맥을 구경하고 그림을 그리고 낮잠을 잤다. 편안하고 새로운 경험이었지만 하루종일 산책하는 강아지처럼 밖을 돌아다니는 내게는 가만히 앉아있는다는 게 한편으론 좀 이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차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Bar로 이루어진 칸에서 토론토에서 온 한 노부부를 만났다. 토론토에서부터 기차를 여행했다는 부부는 참 보기가 좋았고 할아버지는 툴툴 대는 듯했지만 할머니의 말을 잘 들어주셨다. 디자인을 한다던 할머니는 ‘사람들은 눈을 흰색으로만 보지만 사실 눈을 보랏빛도 파란빛도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게 너무 아름답다’라고 하셨는데 나도 그 말에 깊이 동감한다는 듯 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휴게칸으로 이루어진 곳에서는 열심히 아이패드로 작업을 하고 계신 아저씨를 만났다. 이분께서는 처음에 내게 식당칸을 알려주셨는데 밴쿠버에 살고 계시다고 하셨다. 무엇을 하는가 했더니 본인이 살 하우스 겸 스튜디오를 디자인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이틀 전에 어플을 깔아서 배우지도 않았다고 하시는데 아저씨의 스튜디오는 정말 멋있었다. 나는 미술을 전공하고 도자기도 조금 만질 줄 안다고 말씀드렸더니 다음에 꼭 자신의 스튜디오에 놀러 오라며 내게 명함을 주셨고 나는 그 명함을 여행 중 제일 소중할 여권지갑에 보관해 두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또 그림을 그리다가 저녁시간이 되었다. 식당칸에 가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딱 봐도 여유롭고 온화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영국에서 온 부부와 밴쿠버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밴쿠버에서 위험한 곳을 알려주며 절대 가지 말라고 하셨고 내 긴 여행을 응원한다고 하셨다. 무엇을 공부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내 작업을 보여드리며 캐나다에서 팔아보는 게 내 목표라고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께서는 앞으로 본인이 지켜보겠다고 열심히 하라고 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저녁으로 코스요리를 먹고 방에 들어서 저녁의 캐나다를 구경하다 잠에 들었다. 중간에 깨서 본 창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었고 나는 그 별들을 보다가 알 수 없는 감정에 눈은 행복했고 또 한편으로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다시 들었다. 덜덜거리는 기차 안에서 제대로 잘 수나있을까 싶었는데 이 여행을 했던 기간 중 제일 푹 잔 수면시간임에 틀림없었다.


잘 자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기차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무슨 역에 서있는 거겠지 싶어 다시 잠에 들었는데 잠시뒤에 일어나니 또 같은 역이었다. 급히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니 세 시간이나 지나있는데 바깥풍경이 똑같았다. 바로 지도를 켜 현 위치를 찾아보니 이미 밴쿠버에 3시간 전에 도착해 있었던 거였다. 당황해 급히 옷을 갈아입고 복도에 지나가는 할머니께 여쭤보니 할머니는 진정하라며 원래의 도착시간인 여덟 시 전에만 나가면 되니 서두르지 말고 아침도 먹고 나가라고 하셨다.


나 김수연 저녁을 먹고 거의 바로 잤는데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기 위해 또 식당칸으로 갔다. 이렇게 움직이지 않은 것도 오랜만이라 왠지 모르게 하루 만에 몸이 무거워진 느낌도 들었다. 마지막 테이블메이트는 오타와에 살지만 휴가차 밴쿠버에 온 부부였다. 부부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인스타그램도 주고받았다. 휴게칸까지 넘어가 작별인사를 하고 짐을 싸고 나서려는데 기차를 탈 때 나를 도와주었던 직원이 친절히 또 짐도 들어주고 나를 배웅해 주어 가볍게 기차를 나섰다.


캐나다 마지막 여행지인 밴쿠버에 드디어 도착했다. 오고 싶었지만 오기 싫었던 애매모호한 마음으로 도착한 밴쿠버의 기차역에서 기차 안에서 만난 인연들과 한 번 더 스치며 인사를 나눴다. 역으로 들어와 우버를 부르려는데 핸드폰이 되지를 않았다. 그때 오타와에서 온 부부와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다가 본인의 핸드폰으로는 되는 것 같다며 갑자기 우버를 켜 차를 부르는 것 같았다. 내가 알기론 현금결제가 되지 않아 돈을 드리겠다고 했더니 자기의 선물이니 받으라고 하며 나를 위해 우버를 불러주고 차 앞까지 함께 가주었다. 감사한 마음에 포옹을 하고 꼭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는 그의 말에 꼭 그러겠다고 했다.


감사함을 표시하고 우버에 올라타니 금세 숙소에 도착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예측이 불가한 일들이, 참도 많이 일어나는 캐나다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원래 여행이 이랬었더랬지 싶다가도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기차에서 나는 많은 응원과 마음을 받고 더 꽉 찬 사람으로 단단하게 밴쿠버를 맞이했다.

Jan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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