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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Dec 27. 2023

3. 타인과의 대화

istanbul, TURKEY

해가 뜨고 바로 붕대를 풀어보았다. 탱탱 부은 다리를 보고 있자니 짜증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내가 여기에 오려고 얼마나 열심히 알바를 하고 시간을 보냈는지 얼마나 숨이 헐떡였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쓰러워 그를 보고 있자면 어느 아쉬운 마음도 쉽게 내비칠 수는 없었다.


터키에 오기 전부터 지인들에게 터키에 대한 정보를 캐냈고 파워 J인 아는 오빠가 ‘simit’(시미즈)라는 터키식 빵은 무조건 꼭 먹어보라는 말을 내게 수십 번 했었고 어제 구매한 카이막과 오늘 아침 빵집에서 구매한 시미즈와 함께 터키식 아침을 먹었다. 우리나라에서 ‘breakfast’라고 불리는 것은 그냥 집마다 조금씩 다른 유형의 아침으로 밥을 먹는 가정도 시리얼이나 과일같이 간단한 아침을 먹는 가정도 있는데 이곳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냥 담배로 아침을 때우는가 하면 차이티나 커피로도 때우고 터키식 아침 식사를 할 땐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꼭 치즈, 오이, 토마토, 버터, 빵, 올리브를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설거지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내가 아침식사로 한국에서 무엇을 먹는지 말해줬더니 친구들은 그걸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의 보통의 아침식사는 오트밀과 사과나 바나나 같은 과일이다.


가볍게 동네를 구경하고 카페에서 공부를 하기로 한 우리는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동네를 거닐었다. 어제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길가에 가득했다. 이곳에 와서 나와 같은 인종의 사람을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기에 내가 있는 이 동네가 여행지가 아니라는 것쯤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100% 이방인으로만 봤고 그들의 시선에 내 시선을 어디에 두는 게 마땅한가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현지인이 가득한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곳임에 틀림없었다.

카페를 향하는 길에 마주한 식당에서 그의 지인을 만났다. 잠깐 인사만 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우리는 그곳에 앉아 한참 수다를 떨며 커피를 마셨다. 어디선가 들은 정보였는데 터키는 커피를 시키면 대다수의 곳에서 한입에 먹을 수 있는 디저트를  준다고 했다. 별 기대 않고 시킨 라떼 찻잔에 디저트가 놓여있었고 음료가 맛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그걸 받아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크게 맛이 있거나 특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의 따뜻함이 느껴졌달까, 그리고 우린 그곳에서 나와 다시 카페로 길을 향했다. 고양이 카페인 양 길거리에 고양이가 가득하다. 길을 걷다 멈춰 계속 고양이 사진을 찍는 그의 표정을 보니 조금은 지루함이 느껴졌다. 한 블록에 보통 2-3마리의 고양이가 있는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사진 찍기를 멈출 수 있냐는 말이다.


그가 제일 좋아한다는 카페에 도착해 주문도 채 하지 않은 채 주인과 대화를 나눴다. 터키말이라곤 인사와 안부 그리고 어떻게 내 이름을 소개하는지에 대해서만 알고 있어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터키 사람들은  타인과도 대화를 잘 나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숙소에 가던 어제도 숙소에 가던 길에 있던 교회의 경비원 아저씨와도 한참을 대화하며 나를 소개하고, 슈퍼 주인과도 한참을 대화하며 나를 소개하는 그를 보며 말이다. 멋진 부부가 운영하는 이 카페는 좋은 향을 가진 원두를 사용하는 거 같았고 나름대로 좋은 원두의 커피를 많이 접해본 나로서도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매우 훌륭했다. 공부를 하는 그의 옆에서 숙소의 전경을 그리고 또 내부를 그리기도 했다. 한 번도 드로잉을 선물한 적은 없으나 그냥 따뜻함의 느껴졌던 주인분의 눈빛과 악수에 드로잉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끄러운 마음에 드로잉을 선물했다. 대충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글을 쓰고 있는데 차이티 두 잔을 들고 오던 그는 감사의 표시라며 우리에게 티를 대접했다. 무언가를 받고자 선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준 주인분을 보고 오랜만에 타인에게 따뜻함을 느꼈다. 요즘엔 지인에게도 느끼기 힘든데 말이다. 또다시 오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길을 나섰다. 딱히 할 일은 없었지만 벌써 저녁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고 저녁도 아직 못 먹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아침이라 불리는 점심을 먹고 밖에 나와 음료를 세잔이나 마셔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금방 꺼질 배라는 걸 알기에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음식이름이 하도 특이하기도 하고 사실 음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찾아보고 오지 않아 뭐가 먼지 몰라 네가 알아서 데려가라 하며 거의 끌려가긴 했지만 말이다.


‘Kokorec‘(코코레치)라고 불리는 음식은 양이나 염소의 내장 혹은 살코기를 양념한 뒤 꼬챙이에 끼어 구운 것을 잘게 잘라 따듯한 바게트빵 안에 넣어주는 음식으로 그의 의견에 따르면 아이잔과 함께 먹으면 궁합이 좋다고 했다. 아직 아이잔을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짭조름한 고기가 들어간 바게트 빵과 요거트 맛이 나는 음료를 함께 먹고 싶진 않아 우린 코코레치 2개와 ’Midiye dolma’(미디예 돌마) 5개를 시켰다. 미디예 돌마는 홍합 안에 양념을 한 밥을 넣고 함께 쪄낸 것으로 레몬즙을 뿌려먹는 음식인데 홍합도 별로 안 좋아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먹는 외지음식인데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그냥 시도해 보라는 그의 말에 용기를 냈다. 먼저 나온 돌마를 어떻게 먹는지 보여줬고 나는 정말 신세계를 느꼈다. 따뜻할 줄 알았는데 차가웠던 돌마 안에 들은 쌀은 찹쌀이었고 그 양념과 레몬이 잘 어우러져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이내 먹는 방법을 매우 잘 습득한 내가 마냥 웃겼는지 반대편에 앉아있던 그는 열심히 동영상을 찍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두 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금 더 시킬껄하며 생각하고 있던 찰나 코코레치를 받았고 한입 먹어본 순간 내 눈을 동그래지고 말았다. 뭐랄까… 내가 그래도 양고기를 좋아해서일까 정말 이 담백하고 적당한 양념의 속과 바게트빵의 조화가 정말 너무 잘 어울렸다. 안에 오이나 파프리카 같은 것들이 들어가 있는 곳도 있었지만 우리가 간 곳은 양념된 속과 바게트빵이 전부였지만 정말 내가 먹어본 외국 음식 중에 최고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터키 음식이 왜 유명한지 한 번에 깨달은 순간이었다. 맥주와 아주아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은 생각에 포장을 해가고 싶었지만 1/2 사이즈의 코코레치도 내게는 너무 거대해 더 먹지는 못하고 집으로 향하며 코코레치라는 생소한 외국음식을 머리에 새기기 위해 계속해서 입 밖으로 되뇌었다.


빠른 회복을 위해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 있기로 했지만 아무래도 응급실에 가보는 게 좋겠다는 그의 말에 그렇게 까지는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답을 했지만 그의 대답엔 단호함이 간호했다. ‘I wanna fix this shit’ 그리고 그의 표정을 보곤 그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 병원을 간 경험은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때에 말라리아에 물려 엄청난 고온 때문에 가봤던 게 전부였는데 그게 벌써 9년 전이라 그와 함께 있다고 긴장이 되진 않는다고 할 순 없었다. 그래고 내일 오전이 되어 보통 병원을 가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응급실을 가자고 하는 것도 크게 납득이 되진 않았고 말이다. 그의 손에 이끌려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 병원은 신식 건물을 많이 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병원에 비하면 허름한 건물의 내부와 외관을 보고 놀라긴 했지만 이스탄불에서 제일 유명하고 오래된 병원이라는 그의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일단 치료가 가능한지 또 얼마나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오겠다는 그를 밖에서 앉아 기다렸다. 의사인 그의 찬스덕이였을까 아니면 그의 친밀함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 나라의 정 때문이었을까 20유로 전도면 치료가 가능한데 원하냐는 그의 질문에 말없이 동의하는 표정을 보이며 안으로 향했고 여권을 제출하고 순서를 기다렸다. 전광판에 내 이름이 뜨는 것도 의사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어색했다. 물론 사람들의 시선도 나를 그냥 지나치진 않았고 말이다. 그럴 때면 일부로 내 다리를 조금 더 절기도 했다.


의사의 진단하에 X-ray를 찍고 사진을 확인했는데 아무래도 안쪽에 금이 간 것 같은데 잘 보이지 않아 조금 더 확인하고 싶으면 MRI를 찍으라고 권했다. 나에게 보험이 적용되는 한국에서도 응급실+X-ray+MRI를 찍는다면 금액이 어마무시할 텐데 이곳에서 외국인의 신분으로 쉽게 사진을 더 찍어보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X-ray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금이 간 것 같다는 의사의 진단에 기분이 어두워졌고 그가 가격을 체크하러 간 사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엉엉 울어 보였다. 타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옆에 앉은 타인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았고 말이다. 금액을 체크해 보니 아마 70유로 정도 나올 거라고 했고 그는 돈보다 너의 다리나 건강이 더 중요하니 사진을 찍어보자는 그의 말에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고 결국은 이곳에서 원통 안에 들어가 MRI까지 찍게 되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터키라는 나라의 국민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응급실을 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 같은 경우에도 다음날까지 참고 일반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그는 빨리 이 다리가 어떤지 체크하고 싶다는 이유로 나를 이곳에 데려왔으니 말이다. 돈보다는 지금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게 우선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너무나도 낯선 이곳에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곳에서 의사인 그 덕분에 빠르게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결과적으론 아무 이상이 없었고 의사는 충분한 쉼과 찜질을 권했다.


집에 돌아가는 거리를 걷는 내내 큰 꿈을 부풀어 안고 온 이곳에서 이 다리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다가 이것도 새로운 추억이겠거니, 경험이겠거니 생각하자 싶었다. 여름에서부터 겨울이 될 때까지 조금의 보탬 없이 열심히 하루들을 살아온 내가 이곳에 와서 그와 진득하니 시간을 보내고 쉴 수 있게 된 거라고 그냥 마냥 좋게 생각해야겠다고 말이다. 안 그러면 이 시간이 너무 아쉬워서 종일 깊은 어둠 속에 살 것 같아서 말이다. 일 년 동안 살았던 호주에서도 병원 한번 찾은 적 없던 나였는데,,, 그래서 종교도 없고 신도 믿지 않는 내가 알라에게 기도를 했다. 오늘 하루에만 5번 정도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히잡을 구매해 모스크에 가기로 그와 약속했다.


길가에 사람들의 말풍선이 가득하다. 낯선 타국의 땅이 이렇게 낯설어 보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싶은 며칠이었다. 고작 며칠 보내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며칠 지내본 터키에서의 타인과의 대화가 그런 느낌을 준 게 아닐까 싶었다. 너무 친밀하게 타인과 대화를 하는 그를 보면서 원래 아는 사람이냐 몇 번이나 물었지만 원래 알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정들이 관계를 만들고 기분 좋은 바이브를 만드는 게 아닐까. 따뜻함이 무언지 잘 설명은 안되지만 누군가에게 보호를 받고 그 느낌을 느끼고 밝은 눈인사를 받고 나도 함께 웃어 보이고 그런 것이 아닐까.

Dec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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