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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Jan 20. 2024

9. 카키색 히잡

istanbul, Turkey

이 정도면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쯤에 다녀온 붕갈로하우스의 여독도 연말 그리고 신년파티의 향기도 흐려질 때쯤이 됐으니 말이다.

잠에 들기 전 날씨를 확인해 보니 이번주 목요일, 금요일에 날씨가 좋다고 나와 바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날씨 어플을 그리 믿지는 못하지만 지금 기댈 곳은 그것밖엔 없고 이번주가 지나면 그가 독일어 시험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일 아침 당장 일정을 바꾸더라도 내일은 배를 타고 나가자고 신신당부를 했고 어느 정도 공부를 끝낸 그도 지금쯤이면 괜찮은지 긍정의 눈빛을 보냈다.


구름이 조금 있지만 나쁘지 않은 하늘이었다. 좋고, 나쁜 하늘이 어디 있겠냐 만은 파랗고 밝은 하늘을 기다리는 나에게 나쁘지 않은 하늘이었다고 말하는 게 좋겠다.

동네 근처에 있는 교회 앞에 맨날 서계시는 교회서큐리티분이 계신다. 처음엔 그가 맨날 그 분과 인사를 하는 게 조금은 이상했지만 지금은 인사를 안 하고 지나가는 게 이상할 정도로 친숙해져 내가 먼저 눈인사를 건넸다. 인상 좋은 얼굴에 불뚝 나온 배, 조금 어눌하고 느린 말투, 갈색 가죽점퍼를 입고, 낡은 검정 가죽 구두에 검정 니트 모자를 쓰고 서계시는데 목 주변에 무언가 항상 묻어져 있다. 그런 걸 보면 뭔가 더 챙겨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2-3분쯤 짧은 대화를 끝내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20-30분쯤 갔을까 선착장에 도착했다. 오늘 가는 곳은 쿠즈군주크로 지난 연말에 다녀온 적이 있는 곳이다. 그때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해가 다 질 무렵에 도착을 한 마당에 제대로 구경을 하지 못해 오늘 제대로 여행을 다시 하기로 했다. 그때 살짝 둘러봤는데도 아기자기한 향기가 마구 뿜어져 나와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가는데 터키 국기 앞에서 사진을 찍는 여성을 보더니 너도 저렇게 사진을 찍고 싶냐 묻는다. 이렇게 부는 바람에 이쁜 척할 자신도 없었고 갑자기 쨍 해지는 햇빛에 눈을 제대로 뜰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자기는 터키에 국기와 나를 사진 한 장에 같이 담아 보고 싶다고 하여 쭈뼛쭈뼛 그 옆에 가서 섰다. 사진은 웃긴 사진 한 장 더 추가 됐지만 그 사진으로 하여금 국기에 대한 자신의 견해로 대화가 이어져 가면서 우리는 각자 서로의 국기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조금 더 서로를 알게 되었다.


차를 마셨다. 그의 말로는 일반인들의 맛있는 차이 말고도 다른 맛을 추가한 차이를 맛볼 수 있다고 해서 그곳에 방문했는데 뭐가 뭔지 잘 몰라서 그에게 주문을 맡겼다. 시큼한 사과 냄새에 바닥에 깔려 있는 바닥에 깔려 있는 설탕. 작은 티스푼으로 저어 한입 먹어보니 역시 기본이 최고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선착장 근처에는 쇼핑만 할 수 있는 작은 타운 있었는데 집에 가기 전에 이곳에서 히잡을 구매하기로 했다.


목적지까지 걷기에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조금 걸으니 반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날씨가 좋아 우리는 걷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생활들을 보면 조금의 유산소가 필요했 기도하고 말이다. 터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바다 건너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 경치를 감상하고 4살부터 12 살까지만 놀 수 있는 놀이터 옆 작은 벤치에 앉았다.


그는 내게 누구냐고 묻는다. 너는 나의 행복이냐 너는 나의 전부냐 너는 나의 선샤인이냐 묻는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웃고 있는 내 표정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가만히 웃고 있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 보라는 듯이 재촉하지는 않고 네가 웃으면 온 세상이 밝아진다고 말한다. 한국말로 들었으면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쳐 그만하라고도 했겠지만 외국어가 주는 이 로맨틱함은 어쩔 수 없었다.


길가의 건물에 번지수를 표시하는 글자가 튤립 모양의 세라믹으로 되어 있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이 들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내게 그는 튤립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튤립은 실은 아주 옛날에 터키로부터 전해진 거라고 했다. 그래서 터키 전통 무늬에 꽃무늬가 많다는 사실에 납득이 갔다. 무슨 길 무슨 길하며 정 없는 파란 표지판으로만 되어있는 한국의 번지수표시와 비교해 보면 훨씬 자유롭게 건물을 꾸미고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이곳의 표식이 더 보기 좋았다.


그는 내가 좋아할 거 라며 사람이 절대 오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골목길을 데려가고, 이 동네 있다는 유명한 정원에 나를 데려갔다. 겨울이라 초록 잎이 전부 진 꽃나무들과 나무들 밖에 없었지만 그 뒤에 있는 건물들은 그 나름의 색으로 다음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다.

슬슬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 우리는 식당을 찾았다. 식당은 즐비했지만 비싼 동네의 물가는 상상을 초월했고 우리는 같은 길을 세 번은 돌고 돌아서야 피데 집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한껏 멋을 낸 다른 식당들의 외관이나 인테리어 메뉴판 등등에 비하면 어디 작은 동네 시골에 있을 것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고 돌아다닐 때 처음 뵀던 사장님 보다 지금 계신 분은 훨씬 불친절했다. 그냥 배나 채우고 가자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렸는데 그 집의 피데는 상상 이상으로 담백하고 기름기가 적었으며 내용물도 촉촉하고 알찼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불 친절해도 좋으니 다시 한번 가서 다른 맛의 피데를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이 기똥찼다. 피데 하나를 나눠먹고 사람들이 환장하는 잘 꾸며놓은 디저트가게에서 작은 디저트를 맛보기로 했다. 그가 제일 좋아한다는 초코가 진득한 디저트와 딸기 에끌레어를 맛봤다. 슈로 만든 딸기 에끌레어에는 나의 추억이 초코 디저트에는 그의 추억이 담겨있었고 우리는 져물어가는 해와 함께 각자의 과거를 함께 회상했다.


히잡 가게 아주머니께서 나의 국적을 물었다. Im from korea.라고 하니 북한인지 한국인지 묻는 질문을 듣고 황당하였다. 그가 말했던 터키의 문제점 중 하나가 사람들의 지식수준이 너무 낮다고 했는데 일반 뉴스만 봐도 당연히 한국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한 나의 생각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분간이 안 갔다.


꾸역꾸역 분홍, 보랏빛이 도는 히잡을 추천해 주시는 아주머니 의견을 무시하고 우리는 카키 빛이 도는 히잡을 골랐다. 히잡 안에 검은 밴드를 두르고 착용도 해봤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냥 기본 히잡만 구매를 했다. 너는 모스크에 갈 일이 별로 없는데 그럼 이건 이번 여행이 끝나면 언제 또 사용할 수 있겠냐는 그의 질문에 바로 스카프처럼 목에 둘렀다. 마침 딱 이 정도 길이의 이 정도 두께의 스카프가 필요했는데 잘 됐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스카프는 카키색 히잡이 되었다.

Ja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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