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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Feb 22. 2024

11. 일상의 일부,

istanbul, TURKEY

아야소피아에 가기로 했다. 사실 아야소피아 문턱까지 다녀온 적이 있지만 히잡이 없다는 이유로 문 안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엊그제 쿠즈쿤즈크에서 히잡도 구매했겠다 카키색 히잡이 잘 어울리는 옷으로 빼입고 집을 나섰다.

일월이 된 이후로 맑은 하늘이 날씨어플을 가득 채운 이스탄불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 발이 좋아지도록 하루에 다섯 번이나 기도했던 나의 마음을 알라신께서 들어주셨을지도 모른다. 발도 나아진 겸에 여행도 멋지게 하라며 말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거리들을 지나 아야소피아가 있는 곳 무렵에 도착해 트램에서 내렸다. 내가 중국인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것처럼 아랍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가 아야소피아 근처에 있는 값비싼 아랍 음식점들이나 상점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말도 안 되는 품질의 터키음식을 파는 것을 보며 자신은 투어리스트가 가득한 이 동네를 선호하지 않아 타국에서 손님이 올 때나 겨우 이 동네에 온다고 말했다. 햇살이 좋아 거리를 집 삼아 살아가고 있는 강아지들이 썬텐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대여섯 마리는 되는 아주 큰 강아지들이 모여있는 진귀한 광경을 보고 있자면 아직도 이 도시에서의 생활을 완벽히 적응했다고 쉬이 말할 수는 없었다. 하긴 식당 의자에 앉아있는 고양이나 전철 개찰구 앞 교통카드 리더기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들에 비하면 훨씬 신사적이고 조용한 강아지들이었다.


모스크에 도착해 들어가기 전 벤치에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눴다. 무슨 대화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얼마 전 터키정부에서 큰 폭력조직을 체포해 그 들의 값비싼 외제차를 압수했고 그 차들을 경찰차로 튜닝해 여행객들이 많은 곳에 터키 정부의 강인함을 전시하듯 보여줬는데 그런 것에 관한 내용이었을 거다. 한참 대화를 하고 있는데 지금 네가 말한 문장 중에 틀린 곳이 하나도 없는 걸 알고 있냐며 영어가 엄청 많이 늘었다고 내게 칭찬을 해줬다. 사실 4개 국어를 하는 그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영어실력이었지만 그래도 제자리에 머무는 것보다는 괜찮은 결과였다.

한 번에 많은 인원이 들어가게 되는 걸 막는 건지 모르겠지만 불규칙한 단위로 출입을 막는 아야소피아 앞에 줄이 꽤나 길었다. 줄이 왜 이렇게 기냐는 나의 질문에 금방 사라질 거라며 네가 줄을 서고 있으면 입구에 가서 언제쯤 입장이 가능한지 물어보고 오겠다는 그의 말을 듣고 줄을 섰다. 오늘따라 동양인이 많이 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여기저기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가족생각이 조금 날 때쯤 그가 돌아왔다.


히잡이 없으면 히잡을 무조건 구매하거나 여자의 경우에는 얼굴만 보이도록 머리 뒤쪽이나 목을 칭칭 감은채로만 입장이 가능한 아야소피아. 히잡을 빌려주는 다른 모스크도 많은데 터키에서 큰 모스크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는 이곳에서 이런 그들의 억지에 기대감이 확 떨어지긴 했지만 건물의 웅장함은 두껍고 딱딱하고 무거웠다. 모스크 양식의 창문에서 들어오는 환한 빛들이 그 딱딱한 느낌을 녹여준다고 생각했다. 모스크의 바닥에는 우리나라에 식당 앞에 ‘어서 오십시오’ 발 받침대 같은 두꺼운 천이 깔려있었는데 신발을 벗고 한참을 서있다 보니 족저근막염인 나에게는 오래 구경할 수 없는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그래도 기도하는 그를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찍고 그곳을 나섰다.

사실은 나보다는 건축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모스크를 본다면 굉장히 흥미로울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겉에서 보면 전부 다 똑같아 보이지만 모스크 안의 건축형태는 확연히 다르고 저마다 고급스러운 자태를 내뿜는 창문의 느낌은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었다.


오늘 가기로 한 대통령궁은 쿠즈군즈크에 갔을 때 건너편에서 아주 환하고 멋있게 빛나던 건물이었다. 그냥 멋지다 싶은 건물이 아니라 정말 눈에 띄게 아름다운 궁이어서 저 건물에 가보고 싶다고 그에게 몇 번이나 말을 했다. 궁에 가는 길에 있는 모스크에 들렀다. 생각해 보니 모스크 입구의 문은 아주 무거운 가죽? 같은 것이어서 들어갈 때마다 힘을 줘 당기거나 밀어야 했는데 그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힘을 주어 나의 현생을 뒤로하고 신을 만나러 간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럴듯한 이유였지만 문이 무거운 건 약자에겐 좋지 않아 보였다.

아야소피아에 비하면 귀여운 사이즈의 모스크였지만 노약자나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도 빌려주고 히잡이 없는 사람들에게 히잡도 무료로 빌려주는 걸 보면 아야소피아보다는 훨씬 정이 가득한 모스크임에 분명했다. 모스크 안의 느낌은 뭔가 프랑스 옛 영화에 공주님이 살 것 같은 창문을 하고 있었는데 안에 있는 멋들어진 샹들리에게 그 느낌을 더 해주는 걸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모스크에 나와 대통령궁에 도착했다. 한화로 사 만원 돈을 줘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단번에 고개를 내저었다. 건축물의 외관이 이쁘고 외벽이 아주 높아 그 안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지 그렇게 큰돈을 내고 대통령이 있지도 않은 궁을 구경할 생각은 없었다.


대통령궁 앞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저녁으로 뭘 먹으면 좋을지 티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어느 나라에 가든 공주 같은 느낌이 아니 그냥 여성스럽다고 해두자. 여성스러운 느낌이 한껏 드는 여성들이 있겠지만 히잡이 있는 나라의 여성들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이곳의 돈이 많은 여성들은 좀 더 좋아 보이는 재질의 히잡을 두르고 히잡의 색이 찬란하달까? 나의 시선에선 그러하다. 아무튼 히잡 때문에 귀와 목은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손에 한가득 장신구를 매달고 새끼손가락을 올리며 작은 커피잔에 커피를 마신다. 사람마다 당연히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먹어본 터키 음식 중에 디저트는 평균적으로 매우 달았는데 어느 카페에 가든 여성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 초코 디저트를 먹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허기짐에 앉아있는 여성들처럼 음식을 하나 구매할까 했지만 가격표를 펼친 순간 이곳이 바닷가가 보이는 대통령궁 근처 있는 카페라는 걸 깨달았고 물 다음으로 제일 저렴한 티를 시켰다.


작은 기념일을 맞이해 저녁으로 맛있는 걸 먹고 싶었던 우리는 거의 한 시간을 고민해 식당을 골라 찾아갔지만 절망적인 기분을 맛봤고 나는 화가 머리까지 난 채로 식당에서 나왔다. 그는 그들도 고생해서 일을 하는데 자신도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블랙커스터머가 되고 싶지 않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간다고 말했지만 열난 불에 기름을 끼얹는 식당 직원의 행동을 보고 결국 계산을 하고 나가는 길에 그도 직원에게 한마디를 하고 말았다.

멋지고 로맨틱한 저녁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식당 탓을 하며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그의 말처럼 그들이 일부로 맛이 없게 음식을 내거나  일부로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재차 질문을 하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다면 미움으로 가득한 내 마음이 금세 좋아질 거 같지가 않았다. 힘없이 부른 배를 움켜쥐고 치즈케이크 집에서 인생 최고의 치즈케이크를 맛봤고 나는 놀이공원에서 결국엔 솜사탕을 쥔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퇴색했던 모든 것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분까지 들었으니 그 감정에 대한 말은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밤이 되니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크리스마스도 지나고 연말도 지나고 신년이 된 지도 일주일이 넘었는데 유럽풍의 건물이 많은 이 동네는 아직도 건물을 장식하는 장식물들로 거리가 반짝인다. 건물주의 마음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날이 더워질 때쯤이 돼서야 치우는 평범한 우리의 마음과 닮아있을까? 그래도 아무쪼록 오늘의 작은 감정이 이렇게 순식간에 바뀌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들이 이렇게 휙휙 흘러가고 있었다.

JAN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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