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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연 Mar 30. 2021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

이수연 에세이

 2014년 9월, 문래동 스페이스 문에서 매일 공연이 열렸다. 일주일 중 하루는 어쿠스틱 데이로 어쿠스틱 연주자들이 모여 두 시간 동안 공연을 이어나갔다. 다른 공연장이 그렇듯 스페이스 문도 적은 관객에 빈자리도 종종 눈에 띄었다. 나는 조금 늦게 들어가 뒤편 자리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관객이 있던 없던 아티스트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문래동 지하에서 외로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중 '도마'도 있었다.

 그녀는 어두운 조명 아래 몸집만한 기타를 메고 있어 왠지 작아보였지만, 차분하게 노래하며 자판을 누르는 손이 옹골져 보기보다 심지가 굳은 사람이거니 싶었다. 그러나 무대에 내려온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며 “음악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하자 쑥스러운 듯 작게 “네,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에 수줍다고 생각했다. 말수도 많지 않고 꾸벅 인사하고 돌아가는 뒷모습과 커다란 기타가 끝까지 눈에 띄었다.

 첫 공연을 보자마자, 나는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 ‘찾아보는 아티스트’ 목록에 도마를 올렸다. 도마의 공연이라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공연장에 향했다. 워낙 좋아한 터라 함께 공연 기획을 진행하다 정중한 거절을 받기도 했다. 덕분에 그녀의 머릿속에 내 얼굴이 남았는지, 우연히 만난 홍대 거리에서 그녀는 나를 보곤 꾸벅 인사를 건넸다. 여전히 수줍은 얼굴이었고, 여전히 큰 기타를 메고 있었다.

 2015년에는 기다리던 미니앨범이 나왔다. 공연이 아닌 음원으로 그녀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나는 바로 예약 구매를 했고, 덕분에 그녀에게 직접 싸인이 적힌 앨범을 받을 수 있었다. ‘도마 0.5’라고 적힌 앨범에는 갈색 어두운 톤에 앳된 그녀의 얼굴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수연 씨:) 항상 공연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녀가 앨범을 건네며 써준 내용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앨범의 포장을 뜯고 바로 차에서 그녀의 음악을 들었다. 조곤조곤한 말투와 시와 같은 가사에 마음이 푹 녹아내렸다.

 

“축축이 비 내리는 거리를 보며 / 앙다문 마음속엔 걱정만 많아 /
그때 한 소녀가 내게 친절히 다가와 / 슬픔을 집에 가두지 말고 / 풀자고 했다”
(소녀와 화분)

 

 슬프던 때에 그녀의 음악이 있었다. 덤덤하게 슬픔을 풀자고 하는 말에 마음이 살짝 넘쳐 울컥하기도 했다. “슬픔은 저기 골목 끝까지 갔다가 내가 부르면 다시 달려오고 슬픔은 저기 시장통에 갔다가 밥 짓는 냄새에 돌아오지” 그녀가 슬픔에 말할 때 살짝 웃음 짓기도 했다. 슬픔이 무척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비 오는 날, 화분을 창가에 두고 말을 거는 한 소녀가 계속 말을 걸듯 그녀는 음악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종종 혼자 그녀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되었다. 차분하게 가사가 천천히 스미는 느낌이 좋았다. 기타를 쥔 손을 보기도 하고 눈을 감고 노래하는 모습에 같이 눈을 감아보기도 했다. 빠르지 않은 박자는 자연스럽게 한 걸음씩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모두가 음악에 집중한 순간, 그녀의 숨 하나까지 음악이 된 것 같았다. 그날의 향, 그날의 조명, 그날의 노래. 평범했던 공연임에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었다. 그녀가 했던 말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요리할 때 그 도마가 맞아요.
어느 날 잠에서 깨는데 요리하시는 어머니의 도마 소리가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도마라고 지었어요.”

 

 어느 날 그녀가 무대에서 했던 이야기. 통통거리며 무언가를 썰어내는 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듯 슬픈 마음과 불안을 섞어 푹 끓여 내다 보면 포근한 요리가 될 것 같았다. 그녀는 그렇게 위로를 전하는 아티스트였다.

 

 2021년 3월 19일, 도마는 세상을 떠났다. 그녀 나이 만 28세.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멀리멀리 가던 날 / 데려온 노래는 들리지도 않고 / 날아오를 듯이 가볍다가 /
고갤 떨구면 가장 낮은 곳으로 / 이유도 없이 나는 곧장 섬으로 가네”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 중)

 

 그녀가 떠났다는 것을 알고서 나는 다시 그녀의 음악을 들었다. 변하지 않은 목소리와 기타 소리가 고스란히 떠올라 그녀의 다음 노랫말을 자연스럽게 따라 불렀다. 초록빛 바다를 부를 때면 눈을 꼭 감는 그녀의 모습 또한 선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미래를 나눌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과거에 묶여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미래를 나눌 수 없을 때 슬퍼진다는 것 또한 그녀를 통해 알았다.

 비록 나와 그녀는 관객과 아티스트, 타인과 타인으로 살아갔지만, 서로의 존재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티스트는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고, 관객은 말을 거는 사람이 필요하니까. 그녀의 공연에 찾아간다면 그녀는 이전과 같은 얼굴로 나를 반겼을 것이고, 나는 그녀가 음악으로 말을 걸어오면 나는 그 말을 찬찬히 듣고, 위로가 필요할 때에 떠올려보기도 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딱 그 정도의 거리였지만, 충분히 삶을 나눴다고 기억하는 것은, 그녀의 음악이 내 삶과 가까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 그녀의 노랫말처럼 그녀는 이유도 없이 섬으로 갔다. 멀리멀리, 고갤 떨구고 가장 낮은 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조심조심 걸어도 들려오는 발소리 같은 기타 소리도 함께한다. 그녀는 이유도 없이 섬으로 떠나가버렸지만, 모든 것을 두고 갔다. 남겨진 음악으로 살아있는 자의 곁을 지킨다. 슬프지만, 외롭게 두진 않는다. 그녀가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자신만큼이나 사랑했다는 걸 이제야 알아챈다.

 

 조심히 섬으로 걸어 들어간 그녀는 이제 섬 속에서 화분을 키우고 슬퍼했던 인연을 다시 만나고 코스트코 테킬라 한 잔을 홀짝이며 고개를 들고 웃는 모습이기를. 그녀가 남겼던 노랫말처럼.



도마 1집

 https://youtu.be/tNGMKRiSy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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