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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고운 Feb 14. 2022

품격을 높이는 말의 힘

말의 품격-이기주

나는 말보다 글에 더 익숙한 사람이다. 전화보단 문자를, 여가 시간엔 친구들과의 수다보단 카페에서 혼자 책 읽는 것을 더 선호한다. 대학 시절엔 발표보다 리포트 과제를 수행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이런 편애 때문인지 글쓰기 실력은 비교적 나쁘지 않지만 말하기엔 영 소질이 없다. 유명 유튜버나 연예인들이 영상에서 막힘없이 말을 하거나 순발력 있게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는 걸 보면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그들이 말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엔 내 궁금증을 풀어 줄 현답이 그득 담겨 있다. 책의 첫 페이지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품격이 드러난다. 나만의 채취,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은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말에 대한 그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장이다. 누구나 한 번쯤 타인의 말 한마디로 그 사람에게 호감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겐 방탄소년단의 RM이 그런 인물이었다. 겉모습만으로는 싫지도 좋지도 않은 감정이었다. 그러다 RM이 콘서트의 수많은 팬들 앞에서 말하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화양연화'라는 곡을 소개하기 위해 '길가에 길을 잃은 개나 고양이도 그렇고 굴러다니는 돌멩이들조차도 마음속에 은하수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입을 열었다. 평소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콘서트 영상을 멈춤과 재생을 반복하며 열심히 시청했고 결국 사람 대 사람으로서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말은 평소 그 사람의 태도와 가치관을 보여주는 법이다. 나는 이후 다른 영상들도 찾아보며 그가 높은 품격과 고급스러운 향을 풍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시 책으로 넘어가서, <말의 품격>의 내용과 구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저자는 4가지 사자성어를 대주제로 하여 각각 6가지 요소로 말을 잘하는 방법과 말을 잘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첫 번째는 "들어야 마음을 얻는다"는 뜻의 이청득심(心)이다. 친구와의 대화에서든, 혼자 등장하는 방송이나 유튜브 영상에서든 결국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다. 그러려면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이때 요구되는 것이 잘 듣는 것이다. 여기선 '겸상'에 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식사 정치'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치인들을 집결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 식사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덕분에 예산안 처리 문제로 으르렁거렸던 두 정당의 갈등을 한결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작가는 이처럼 대화의 간극이 쉽사리 좁혀지지 않을 경우 메시지를 전하는 태도와 방법 외에도 장소와 시간을 고민해 보라고 말한다. 사적인 대화가 자연스레 오가고 서로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져 경청이 좀 더 쉬워지는 시공간적 배경은 무엇일까?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식사 시간, 음식이 있는 공간이다. 특히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에게 겸상은 아주 건설적인 대화 방식이다.


두 번째 사자성어는 과언무환(寡言無患)이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으로, 얼떨결에 내가 잘하는 것 중의 하나다. 말의 파급력이 강해진 요즘, 가장 지켜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괜히 설익은 문장을 입에 나열하다 화를 입게 된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이로 인해 정치인은 민심을 잃고, 유튜버나 연예인은 수많은 팬을 잃는다. 과유불급은 말에도 통용되는 사자성어임에 틀림없다.


6가지의 적게 말하는 방법 중 하나인 '간결'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작가는 말에 있어서만큼은 '다다익선'보다 '단단익선'을 추구하길 권한다. 온갖 수사가 난무하는 문장이 겉으론 화려해 보일지라도, 정작 알맹이가 무엇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직장생활에서 이런 식의 대화는 위험하다. 사회 초년생 시절, 업무 관련 사항을 두서없이 전달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나... 나만 그런가?). 이에 상사는 답답한 표정으로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라고 묻는다. 아직 직장 경험이 없다면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을 떠올려 보자. 단박에 이해될 것이다. '단단익선' 어투를 지향하도록 하자.


다음 주제는 언위심성(言爲心聲)이다. "말은 마음의 소리"란 의미를 담고 있다. 대화를 몇 마디만 나누어 봐도 그 사람의 심성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 이유다. 이는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 있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아직도 '손님이 왕이다'라고 생각하는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식당, 카페, 병원, 콜센터, 공공기관 등에서 폭언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꾸준히 등장하니 말이다.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하며 굳이 자신의 저급함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번엔 '소음'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작가는 소리와 소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소리는 고막을 두드리며 몸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소음은 고막을 찌른다. 소음이 들쑤시면, 사람은 귀를 틀어막는다.

나는 마지막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이기주 작가가 책에서 언급했듯이 말에는 귀소 본능이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이다. 소음이 반복되면 상대방은 귀를 닫고 더 이상 당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레 지인들은 당신을 멀리할 것이고 당신 또한 그들에게 소음을 듣게 될 수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길 바란다. 내가 평소에 하는 말이 상대에겐 소리로 들릴지, 소음으로 들릴지.


마지막 주제는 "큰 말은 힘이 있다"는 뜻의 '대언담담(大言淡淡)'이다. 큰 말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권력자의 말을 의미하는 걸까?


옛말에 "대언大言은 담담하다"라고 했다. '담담'은 물의 흐름 따위가 그윽하고 평온한 상태를 나타낸다. 힘 있고 웅장한 것을 가리킨다. 옳다. 큰 말은 분명 힘이 있다. 반면 소언 笑言은 수다스럽다. 가볍고 약하다.

그렇다면 대언은 상대방이 들었을 때 수다스럽지 않고 무겁고 강한 느낌을 주는 말일 것이다. 저자는 전환, 지적, 질문, 앞날, 연결, 광장으로 대언담담을 행하는 기법을 나열한다. 이중 '지적' 부분을 소개하기로 한다.


모두 '꼰대'라는 단어에 익숙할 것이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자신의 사고방식을 남들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특히 꼰대라는 은어는 남을 지적하는 상황에서 자주 일어난다. "꼭 집어서 가리킴"을 뜻하는 지적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남용하고 있다. 책에선 '명절 증후군'을 예로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자리에 모이는 날, 서로에게 좋은 말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일부 친척 어른들은 불편한 질문을 서슴지 않는다. "결혼은 했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어느 대학 합격했어?", "전교 몇 등이야?" 덕담으로 포장한 엉성한 지적은 상대의 행동 변화는커녕 거부감만 들뿐이다. 자기 객관화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지적에 신중을 가하길 바란다.


신기하게도, <말의 품격>을 통해 말을 잘하는 방법뿐 아니라, 글을 잘 쓰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화려화지만 맥락 없는 문장은 좋은 문장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누구에게나 익숙한 글을 새로운 방식으로 나열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더 잘 띌 거라는 것 등이다. <말의 품격>에서 <글의 품격>도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p. 43

웅덩이는 흐르지 않고 정체돼 있으며 깊지 않다. 동정도 매한가지다. 누군가를 가엽게 여기는 감정에는 자칫 본인의 형편이 상대방보다 낫다는 얄팍한 판단이 스며들 수 있다. 그럴 경우 동정은 상대의 아픔을 달래기는커녕 곪을 대로 곪은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 것밖에 안 된다.


p. 90

언어의 의외성은 대화에서 무료함을 밀쳐낸다. 의외성은 곧 차별성이며, 차별성은 듣는 사람의 주목도를 끌어올린다.


p.123

상대의 단점만을 발견하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내면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인지 모른다. 슬픈 일이다. 남을 칭찬할 줄 모르면서 칭찬만 받으려 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면서 존중만 받으려 하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르면서 사랑만 받으려 하는 건, 얼마나 애처로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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