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이제 아무것도 안하려고
지금은 2020년. 이제 21년을 바라보는, 20년도의 마지막달인데. 아직도 저런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랍다. 그런데다 그는 무려 미국인인데. 국적에 차별을 두는건 discrimination이니까 국적이야기는 접어두려한다.
남편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그는 내가 하루종일 무엇을 하는지 정말이지 궁금했는지 매일같이 물어오는데 나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제는 신경이 곤두선다. 이유는 그는 놀라울만큼 강박증이 있기 때문. 주방에 작은 무언가 하나라도 떨어지면 스트레스를 받고 선반에 물이라도 떨어져있으면 극도로 긴장하며 집안에 먼지 한톨이라도 보이면 한숨을 내쉬고 마룻바닥에 머리카락이라도 떨어져 떼구르 구르는 모습이 보이면 한없이 예민해진다. 그리고 우리집엔 고양이가 한 마리가 있어 그녀의 털빠짐에 남편은 몸서리를 친다.
이런 남자랑 5년을 살고있는나로써. 저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답해야할까?
처음엔 나도 별 생각없이 요모조모 오늘은 무얼했는지 자세히 설명을 하곤했다. 그런데 점차 대화를 나누며 그 질문 속을 하나하나 살피니 진실을 알게 되었던 순간. 그는 내가 하룻동안 나를 위해 어떤일을 했는지 물어보는게 아닌, 하루에 어떤 집안일을 했는지 물어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16년도에 결혼해 서울에서 잠시 신혼생활을 하고 바로 유럽으로 넘어가 4년간 네덜란드에서 (진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 있을 땐 주말부부였기에 같이 있는 시간이 이토록 많지 않아 부딪히는 시간이 적었지만 네덜란드에 도착해서는 하루가 다르게 소소한 다툼이 시작됐다. 수저를 수저함에 어떻게 넣는지부터 세탁기의 세제를 사용함에 있어서, 화장실의 칫솔 위치는 어떻게 배치되어야하고 화장지의 말림의 상태는 안쪽이어야하는지 바깥쪽이어야하는지. 난 보통 내 방식대로 되어 있지 않더라도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곤하는데 그는 그때마다 콕콕찝어 이야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네덜란드에 있을 때는 둘다 일을 하는 맞벌이였기에 가사분담을 하는데에서도 (그는 불만은 있었지만) 크게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미국으로 이사를 하고 나니 나는 일이 없어졌고 남편은 꼬박꼬박 근무를 하는 것에 대해, 달라진 생활패턴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하루종일 일까지하는데 나보고 집안일을 하라고?"
그의 질문에 난 어의가 없다. "넌 이집에 안살아? 내가 지금 일을 안하고 싶어서 안해? 넌 마치 내가 집에서 집안일을 안하고 있는것 처럼 이야기하고있어. 그리고 조금 분담을 하자는건데, 그게 어려워? 24시간 집에 붙어있으면 보이는것도 안보이던것도 눈에 들어와 끊임없이 움직이며 치우게돼. 네가 그걸알아?!"
지치고 지친다. 네 장단에 맞추는것도 이걸 설명하는것조차 입이 아플정도.
난 그래서 그에게 선택권을 줬다.
1 내가 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이 보이는데로 치우길 => 그의 반응: 길길이 날뛰었다.
2 네 스탠다드에 맞춰줄 가사도우미를 구해 => 그의 반응: 와이프가 있는데 도우미가 왜필요하지?
난 답했다. 넌 와이프를 가사도우미로 착각하고있어. 날 도우미로 쓰려면 월급은 주고 얘기하길.
3 일일이 내가 하루종일 뭘하는지 보고싶다면 그냥 집에 카메라를 설치해. 상관없으니까
그리고 난 오늘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했다. 내가 하루종일 뭘하는지, 안하면 이제 잘 보이겠지.
빨래는 쌓여갈거고. 주방 싱크대는 반짝이지 않을거고. 1-2개 있던 머리카락과 슬쩍슬쩍 보이던 고양이 털은 바닥에 날릴거며. 쓰레기는 집 밖으로 이송되지 않을거다. 장을 보지 않아 냉장고는 텅텅 비고. 무엇보다 식사를 대령할 사람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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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해외이사로 내 커리어는 엉망이 되었고 새로운 장소에서의 적응과 새시작이 난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이런 대화는 뾰족한 신경만 자극할 뿐. 말이라도 예쁘게 하던가. 이사온지 1달이 조금 지나친 이 시점에 또 다시 잠못자고 고민하는 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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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에 petty라는 단어가 있다. 중요치않은 정말 사소한것들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에게 Don't be petty (about something)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바로 그 영단어 PETTY. 같이 살고 있는 오늘의 그이에게 딱맞는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