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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n 08. 2022

퇴사 24일 전

2017년 3월 8일

웃음 소리도 듣기 힘든 날이 있다. 내 마음이 시끄러울 땐 모든 게 다 소음이 된다. 7시 퇴근 시간은 한참 지났고, 일은 끝나지 않는 오늘 저녁이 딱 그랬다. 내일 와서 마저 해야지, 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건,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


봄에 있을 페스티벌 자원봉사자들이 몰려왔다. 바로 옆방이라 그들의 웃음소리는 벽을 타고 손쉽게 넘어왔다. 평소 같았으면 궁금하기도 하고 따라 웃기도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질 못했다. 사무실의 어느 누구도 웃지 않았다. 저들은 알까, 바로 옆 방의 불꺼지지 않은 사무실의 우리가 곧 한꺼번에 사라질 거라는 걸.


누군가에게 쫓겨본 사람은 안다. 딛고 걷는 땅에 얼마나 돌부리가 많은지. 개인적인 채무가 아니더라도 나와 연결된 사람은 온전히 내 몫의 짐이 된다. 그리고 맨발바닥으로 끊임없이 쫓기는 기분을 맛보게 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날카롭게 울리는 몇 통의 전화를 받고 사색이 된 누군가는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이었다. 험악한 말들이 오가고, 감내할 수 없는 대우를 받으며 그가 지은 표정에서 언젠가 눈물을 쏟던 얼굴도 떠올랐다. 때마침 사무실 한켠에서 삼삼오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사람과 나 우리 둘만은 웃지 못했다. 한 사람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일보직전이었고, 한 사람은 급박한 상황에도 손도 내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퇴사를 앞두고는 칼 출근, 칼 퇴근을 하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제발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 기대를 걸었지만, 오늘 역시 10시를 넘겨 지하철을 탔다. 월급이 들어오기 며칠 전이라지만, 위로가 되질 않는다. 제 날짜에 받을 수나 있을까하는 지레짐작이 달려들어 기대의 싹을 잡아먹는다.


마지막이 될 팀회의에서는 각 사업의 뒷정리를 이야기했다. 요청한 사업비가 제대로 입금이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엑셀파일 정리. 그리고 퇴사 이후 삶과 받지 못한 월급, 적절한 보상에 대한 억울함. 글자로 적어놓고 보니 절망적인 단어들뿐이지만, 회의실 분위기는 언제가 그렇듯 화기애애했다. 이 달이 지나고 봄이 와도, 모두 함께 있을 것처럼 그렇게.


9시가 넘어 늦은 저녁을 먹었다. 설렁탕과 소주 두 병. 가시 돋힌 마음에 한 잔, 두 잔 뿌려주었다. 잠시라도 사그라들길, 더이상 자라나지 않길 바라면서 연신 잔을 기울이고 뽀얀 국물을 떠먹으며 겨울 같은 3월의 밤을 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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