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코로나19 환자 감소로 인력감축이 있어 이번 달 6일 파견되셨던 위 목록 총 10명의 선생님들은 이번달 29일 금요일이 파견이 마지막 날입니다.
'......'
이번 달에 발령받은 10명의 간호사들은, 나와 같은 마음일까. 미간을 잠시 찌푸렸다.
왜인지 억울했다. 이 병원에서, 코로나19에 앞서서, 특히나 중환자들에게 있어서 필요한 사람보단 행정상 처리하기 쉬운 사람들 먼저 처리하는 느낌이었다.
"하하. 오늘 왜인지 춥지 않았나요?"
윤석 선생님은 괜히 민망한 듯 이런저런 필요 없는 소리를 하며 정적을 깨기 위해 애썼다.
평소 신규 때 다져진 덕에 누군가의 말엔 무슨 말이라도 반사적으로 라도 나오던 내 입에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머릿속에선 '내가 저들 누군가보단 더 쓸모 있는 사람인데-'라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들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중얼거렸다.
"파견이 그렇죠, 뭐.. 다른 병원에서는 하루 전에 짜르기도 한다는 데요.."
"하루요?"
"네. 얼마 전에 제주도에 어느 병원에서 이틀 전에 불러서 갔는데 하루인가 이틀 만에 바로 종료시켜 버렸대요."
나는 식겁했다.
며칠 전 이곳에 이 짧고도 얕은 정착, 아니 머무름을 하기 위해 '당장 이틀 후부터 살 곳을 구하고 있다.'며 근처 월세방을 구하러 돌아다니는 노력을 했던 때가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나마 운 좋게 사람 좋은 집주인님을 만나 '최전선에서 일하시는데 배려해 드려야죠.'라며 한 달 단위의 월세방을 구할 수 있었지만, 급한 대로 최소 6개월 계약으로 방을 구한 선생님들이 수두룩했다. 내가 상당히 운이 좋았다는 걸 알고 아찔했지만, 결국 한 달도 채 안돼서 나는 그들 앞에서 그나마 양호한 거구나 했는데-.
파견직에겐 그 마저도의 상황에 억울해하는 건 사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그래, 나 자신은 피해를 봤다고 말하기도 민망했다.
파견 3주 차에 접어들었다.
며칠 전 파견 종료 통보를 받고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간호사들은 그 누군가는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들 동안이라도 더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누군가는 더 이상 정을 주지 않으려 조금은 더 차가워졌다.
환자는 총 14 베드 중에 5명.
인공호흡기 환자 1명, 그리고 High Flow 환자 4명.
중증도는 그렇게 낮지도, 그렇다고 심하게 높지도 않았다.
".. 저희도 얼마 안 남았네요.."
"그러게요. 아쉽다."
"그래도 코로나19가 1년 조금 안 돼서 끝나가는 분위기인 거니까.. 다행인 것 같아요."
이야말로 양가감정.
코로나19가 끝나가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에 기쁘고 행복하지만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20년을 넘게 일해도 받기 힘든 급여를 4년 차가 받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까, 아-. 아니야. 기뻐해야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쉬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 괜스레 죄책감이 생긴다.
'.. 그래도..'
그래도, 머리와 마음이 혼란스럽다.
우리는 여가 시간에 전산 앞에 앉아 오늘 확진자 수를 검색해 본다. 주의 중간, 목요일인 오늘. 확진자 수 추이를 읽기가 가장 좋은 날이라 생각한다. 주말엔 집계가 안되기 때문에 잠시 주춤했다가 월요일에서 수요일사이에 폭등하기 때문이다.
"저번주 목요일과 비교해 볼까요?"
나는 저번주의 그래프와 비교해 봤다. 역시, 큰 차이는 없다. 미미하게 몇 십 명 정도 차이가 났다.
"선생님은 다시 파견 신청하실 거예요?"
요즘 우리들끼리의 공통 질문지.
"네, 아마.. 일단은 계속 넣어보긴 해야죠. 선생님은요?"
"저도.. 일단 넣어는 보려고요. 근데 파리목숨인 게 스트레스가 크긴 하네요. 줄어드는 추세면 아마 다른 데 가서도 또 금방 잘릴 것도 같고."
"그래도.. 하루 이틀이라도 어디겠어요."
"......."
하루 이틀에 감사하며 타의에 의해 옮겨 다녀야 하는구나. 아무리 내 사주에 역마살이 꼈다지만 벌써 비참하고 피곤하다.
파견 종료일이 5일 남았다.
'이 집도 이제 얼마 안 남았네..' 6평의 내 원룸을 쓰-윽, 둘러봤다.
보통 월세방을 뺄 땐 한 달 전에 집주인분에게 말해야 한다 하는데, 입주 3일 전에 들어와 방 빼기 1주일 전에 이야기한다는 것이란.. 파견직들은 집주인에게 그다지 좋은 이미지는 아닐 것 같다.
'오늘 난 2팀이네.'
이브닝 출근 전, 전일 나이트번 선생님들이 짜 놓으신 팀을 확인해 보니 나는 두 번째 팀이었다. 팀을 구성하는 이유는 한 듀티당 파견직 간호사가 적어도 4명 정도씩 짜이는데, 이는 간호사가 레벨 D와 PAPR을 착용하고 8시간 내내 오염존(*)에서 일하기 힘들기 때문에 2명씩 짝지어 교대한다.
듀티당 간호사가 누가 있느냐에 따라 한 팀당 중환자실 출신 적어도 1명은 들어가게끔 짜여 있었다.
오늘 이브닝 멤버 4명 중 중환자실 출신은 3명이었다. 그래서 나와 함께 들어가는 1명의 선생님은 나와 같은 날 발령받았던 중환자실 출신의 '성석현' 선생님이었다. 여태껏 듀티가 겹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을 섞어 본 적은 거의 없었던 남자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힘들다고 꽤나 악명이 높은 수도권의 어느 한 3차 병원 신경계 중환자실 출신이라고 하였다.
*오염존 vs 클린존: 오염존은 말 그대로 오염구역으로 보고 방호복을 착용하고 있어야 하며, 클린존에서는 착용할 필요가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비말/공기/접촉주의 모두 시행할 때, 병실이 시작되는 지점과 간호사 스테이션을 이중 문의 구조로 분리해 두었다.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두 번째 문이 열리기 전까지의 구역을 준오염구역으로 분리하여 이곳에서 필요한 물품이나 약품을 주고받거나, 오염존에서 자신의 팀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직원들이 보통 준오염구역에서 환복 및 소독을 하고 나온다.
시간적으로 막 여유롭지 않지만, 2팀이기 때문에 정시 전에 옷만 갈아입으면 되었다.
환복시간까지 합쳐 14분 전, 병원으로 향한다.
10월 말인데, 날이 벌써 쌀쌀해졌다.
나는 옷을 여매며 빠른 걸음으로 병원에 향했다.
.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환자가 늘었대요, 선생님."
".. 아 그래요..? 왜 빨간 날에 안 늘어나고.."
"그러니까요. 오늘 바쁠 것 같아요."
나는 중환자실 안에 있는 휴게공간 의자에 내 에코백을 올려놓으며 환복을 하고 있는 1팀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첫 만남 때부터 말을 잘 걸어 주던 혜린선생님이 울상으로 얘길 했다.
곧장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나와 같은 팀의 성석현 선생님이 보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는 인사를 건넸다.
"네. 안녕하세요."
".. 화, 환자가.. 많이 늘었네요..?"
"그러니까요. 다행이죠." 성석현 선생님은 이상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뭐가 다행이라는 거지?
"네?"
".. 한가한 것보단 낫다.. 이런 거죠."
.. 저 사람.. 깨림칙해.
밖으로 나가 데이 선생님들이 분리해 놓은 약들을 확인했다. 이브닝과 나이트번이 투약해야 하는 약들이 잘 준비되어있는지, 없어진 약은 없는지 약알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았다.
초기에는 약들이 오염존에 전부 구비가 되어 있어서 액팅간호사들이 약을 다 줘야 했지만, 언제 코로나19가 끝날 지 모르는 마당에 오염존에 약을 구비해 두면 이후 전부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몇 달 전부터 클린존에서 약을 관리했다고 한다.
'지금 당장 준비해 줄 약은 없는 것 같네.'
수액을 투약시간보다 빨리 만들어 놓을 경우, 박테리아가 생성될 수 있기 때문에 보통 30분 전쯤에 만들어 오염존 안 쪽으로 넣어주어야 했다.
"이미 제가 다 봤어요." 성석현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아, 아-. 네네."
나는 다시 환자 모니터 앞으로 향해 앉았다. 성석현 선생님도 곧장 따라와 내 옆에 앉았다. 우리는 무전기를 하나씩 나눠 들고 환자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
.
1팀이 들어간 지 1시간 정도가 지났다. 즉, 우리랑 교대하기 1시간 전이었다.
신환이 온다는 전화가 연속으로 두 번이나 왔다.
"선생님, 안에 너무 바쁠 것 같은데.."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아, 아니에요. 제가 30분 일찍 들어갈 테니까, 선생님은 10분 정도만 일찍 들어와 주세요. 밖에 모니터링해야 되는 선생님도 필요할 것 같아요."
이러면 안 되지만, 왜인지 내가 들어가 액팅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마음 편할 것 같았다.
.
.
신환이 1층 뒷문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울리자마자 나는 방호복을 입기 시작했다.
"선생님, 이따 봬요."
성석현 선생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 보니 이미 환자는 도착하여 A룸 5번 베드에 옮겨져 있었다. 이미 1팀 선생님들께서 빠른 속도로 활력징후는 모두 확인한 것 같았다. 혜린 선생님이 신환에게 IV를 놓기 위해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환자의 정신이 멀쩡한데, 환자 발치에서 주사를 잡으려고 하는 것 보니 환자 IV route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환자 route 안 좋아요?"
".. 네, 여기 있는 것 같긴 한데.."
"같이 볼게요."
나도 토니켓(*)을 들고 와 환자의 팔과 다리를 묶어보며 주사 놓을 자리를 찾아봤다. 다행히 왼쪽 다리에 얇은 주사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 잡으면 될 것 같은데요?"
"오, 거기 괜찮아 보이네요."
*토니켓: tourniquet, 환자의 지혈을 돕는 데 쓰거나 혈관 내 카테터를 넣을 때 혈액을 모은 후 이동을 막아 혈관을 좀 더 통통하게 만들어 주는 용도로도 쓰이는 줄이다. 고무로 된 노란 줄형태의 토니켓이 가장 흔하며 최근에는 원터치 밴드 형식의 토니켓도 많다.
토니켓, 출처: 11번가
그때 갑자기 덩치가 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는 나와 혜린선생님을 슬쩍 밀며 말을 걸었다.
"제가 할게요." 성석현 선생님이다. 내가 들어온 지 5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 선생님 안에서 들어오래요?"
"아뇨. 그냥 제가 들어온 건데요, 바빠 보여서."
"밖에 모니터링 누가 해요, 그럼?"
석현선생님은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봤다. 그 표정은 차갑고도 기분이 나빠 보였다.
봐줄 사람이 있다는 대답이 없는 것 봐서는, 한마디로 '어쩌라고.'라는 표정 같았다.
"선생님, 여긴 저희가 할게요. 다른 할 것도 많아요. 1팀 5시 바이탈 안되었대요. 그거랑 back care 해주실래요?"
성석현 선생님은 말없이 뒤돌아 A룸을 나갔다.
".. 밖에 모니터링해 줄 선생님 없으실 텐데.. 선생님 먼저 나가실래요?"
나는 아무래도 밖이 신경 쓰였다. 최근 들어 본원 선생님들이 모니터링 한 명이상은 해달라 말씀하셨기 때문이었다.
"아니에요.. 저희 팀에서 못한 것도 많아서.. 본원 선생님들한테 봐달라고 말씀드렸겠죠.."
나는 고개를 들어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클린 존을 확인했다. 환자 모니터 앞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고, 본원선생님들은 전산을 보느라 바빠 보였다.
"... 말씀 안 드린 것 같은데요.."
석현선생님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만 있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클린 존에서, 귀가 잘 들리는 상태에서(*) 환자 모니터를 확인하는 것도 우리의 업무 중 하나인데-. 무턱대고 상의도 없이 들어와서 쌓여있는 할 일들이 뭔지 보이지 않아 다른 사람이 하고 있는 거라도 자신이 하려고 하는 것.
경력직 간호사에겐 흔하지 않은 일이다.
*오염존에서 PAPR을 착용하고 있으면 후드와 연결하는 기계에서 필터가 된 바람을 후드 안으로 넣어주기 때문에 '위잉'소리가 작게 계속 들리며, 후드를 쓰고 있으면 시야 또한 제한이 있어 알람 소리나 환자의 상태 변화에 대해 캐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클린존에서 환자 모니터나 CCTV 주시를 해주는 인력이 따로 필요함.
PAPR+Level D, 출처:https://www.empiresafety.com
"파견 잘리기 싫다고, 돈 벌어야 된다면서 확진자 늘었으면 좋겠다 노래를 부르고 다니시더니.."
.. 아-. 사익에 눈이 멀어 남의 피해를 바라는 사람인가..? 그리고 그걸 당당하게 떠벌거린다고..?
게다가 환자에게 그렇게 득 될 의료진의 스킬과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그의 생각이나 말하는 방식은 오히려 해가 되는 느낌이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안녕하세요. 오늘입니다.
이번에도 오랜만에 찾아뵈었습니다. 해외에 가려고 준비를 좀 하다 보니까 정신이 없네요ㅠㅠ
어쨌든 영주권 문호가 닫혀서, 계획이 미뤄진 덕에(?) 모든 것을 촉박하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번 글은 자신의 사익 때문에 공익을 바라지 않게 되는 상황을 이야기해 봅니다.
많은 파견직 간호사들은 의료진으로서 환자가 줄어들 이를,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고액이라는 급여에 대한 자신의 사익을 바라는 마음이 공존하는 양가감정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여러분이 의료진이라면, 혹은 '잠재적 환자'로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공익과 사익에 대한 양가감정은 약간 다른 사건들로 몇 번 다뤄볼 예정입니다.
오늘도 긴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