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편: 학부모 의견을 모으는 대표가 되어야
키키: 이번에는 천둥의 이야기를 들려줘. 천둥은 어떤 계기로 학부모회를 시작하게 되었어?
천둥:나는 키키처럼 개인적인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야. 다만 중학교에 대한 소문이 안 좋아서 아직 아이가 입학하기 전부터 걱정을 하고 있었지.
우리 지역이 대표적인 혁신초등학교가 있는 곳이잖아.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눈높이가 꽤 높아져 있는데, 중학교는 예전 그대로 정체되어 있었거든. 특히 방과후수업이 너무 고리타분했어. 영어, 수학, 컴퓨터 같은 거밖에 없었어. 하다못해 농구나 축구, 악기 같은 것도 없었어. 아무리 새로운 걸 요청해도 개선되지 않고 몇 년째 똑같은 것들만 반복되고 있었지. 그 외에도 동아리 활동이라든가 참신한 수업, 토론수업이나 블록수업 같은 거라고는 없었어. 매번 퇴임을 앞둔 교장선생님이 왔다가 가만히 복지부동하고 있다 가버리는 그런 학교였어. 초등학교 때 재밌고 다양한 방과후를 즐기던 아이들은 중학교에 올라가서 급격히 시들해졌지. 여건이 되는 부모들은 다른 중학교로 보내려고 미리 전학시켰어. 6학년 2학기만 되면 마을이 뒤숭숭했지.
나도 고민이 많이 되던 차에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라디오에서 학부모 학교참여 공모사업에 대한 홍보를 우연히 들은 거야. 경기도 교육청에서 그게 막 시작되던 무렵이었거든. 예산을 따서 아무것도 안 하는 학교 대신 아이들에게 재미난 활동을 만들어주자고 그 사람을 중심으로 몇몇 학부모들이 의기투합을 했지.
키키: 공모사업 하지 않아도 학교 예산에서 일정 정도 학부모사업비로 책정하잖아.
천둥: 교육청에서 권고는 하는데 학교 재량이야. 당연히 안 하는 학교도 많았지. 아마 지금도 그럴걸?
예산을 책정해놓은 경우도 대부분 학부모 교육 연 2회 하는 걸로 처리하는 걸로 끝인 경우가 많아. 학부모들이 듣고 싶은 교육이 뭔지 물어보지도 않고 그냥 학교가 알아서 진행해버렸고. 매년 비슷비슷한 내용이거나 당시 유행하는 강의를 쫓다 보니 초등이고 중등이고 같은 강사가 오기도 하니까 뻔하다는 인식이 강하지.
반면 공모사업은 학부모회장 개인 통장으로 바로 예산이 들어오니까 일일이 학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거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라고 느껴졌지. 물론 사업이 끝나면 보고서를 써야 하지만.
키키: 아이들에게 재미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활동이라면 초등에서 많이 하는 방식인데, 천둥은 초등학교 때도 학부모 활동을 했었어?
키키: 학교에 갈 일 없는 게 제일 좋은 거라는 생각, 학부모라면 대체로 공감하지.
천둥: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학부모 활동을 안 한 게 아니더라. 학교에서 제법 구미가 당기는 강의도 있었고 도서관에서 하는 모임도 자주 갔어. 교장선생님이 워낙 열린 마인드를 가진 분이라 편하게 학교에 들락거렸거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그랬던 것 같아. 꽤 많은 학부모들이 아무 때나 학교에 왔고, 학교 행사 참여율도 매우 높았어. 학부모들끼리도 서로 잘 알고 끈끈한 관계를 맺었지.
우리는 학교에 대한 신뢰가 엄청 높았어.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가 생각해 보면, 역시 교장선생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 권위적인 분위기의 전형적인 교장실을 소탈하게 바꾸고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수시로 교장실에 드나들면서 사탕 얻어먹는 그런 교장선생님의 시초에 그분이 계셨거든.
교장선생님의 소탈함은 학교문화 전체에 녹아들어 있었어. 약간 옆으로 새는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차려입고 오는 학부모가 아무도 없었어. 가끔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더 이상했어. 다들 평상복에 슬리퍼 차림이었지. 아침에 세수도 안 하고 파자마 같은 실내복에 점퍼 하나 걸친 상태로 마주치는 게 일상이었어. 선생님들도 편한 차림새였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학교가 우리들 일상 안에 있어서 서로 각 잡고 마주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거야.
키키: 우리도 다른 지역의 학부모들에 비하면 대단히 차려입는 편은 아니지만, 그 정도라니 좀 특이하네. 무엇보다 그런 교장선생님을 경험했다니 부럽다.
천둥: 교장선생님의 영향이 매우 큰 건 사실이었지만, 교사 학부모가 비슷한 지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야. 손꼽히는 혁신학교라 혁신 교사들이 줄지어왔고, 일부러 이사 오는 학부모도 많았으니까. 아주 특별한 사례지.
키키: 특별한 사례는 일단 예외로 하고, 그래서 공모사업을 했어?
천둥:우리가 학부모회 임원이 아니어서 못 했어. 학부모라면 누구나 학부모회장에게 제안해서 같이 할 수 있는 건데, 우리는 그걸 몰랐어. 할 수 없이 우리들 중에 한 명이 학부모회장이 되기로 했지. 근데 학교에서 운영위원이 아니면 학부모회장을 할 수 없다는 거야.
키키:그건 사실이 아니잖아.
천둥:그렇지. 학교에서 우리를 받아들이기 싫어서 그렇게 말한 거야.
키키: 학교가 왜?
천둥: 하던 사람이 하는 게 편하니까. 당시 우리 지역에는 초등부터 6년 내내 학부모회장을 했던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이 중학교에 와서도 또 하기로 되어 있었나 봐. 근데 엉뚱한 사람이 나서니까 싫었던 거야. 항상 단독 후보였으니 투표를 진행해야 하는 것도 귀찮았을 거고.
근데 우린 그런 것도 모르고 하겠다고 나섰고 결국 운영위원도 되고 학부모회장도 되었어. 근데 학교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거야. 회장이 낸 의견은 묵살하고 여차하면 다수결로 폐기하고. 안 되겠다 싶어서 그다음 해에는 다수결로 이길 수 있도록 우리가 다 같이 운영위원으로 입후보했지. 물론 학교도 자기들이 원하는 운영위원을 준비시켰지만, 우리는 이미 한번 좌절이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모두 선출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준비를 단단히 했어. 놀랍게도 우리가 다 뽑혔어. 그제야 학교의 태도가 싹 달라지더라.
키키: 드디어 공모사업을 할 수 있었겠네.
천둥: 공모사업은 그 전해에도 신청해서 진행했는데, 학교에서 전혀 협조를 안 해줬어. 가정통신문도 안 내주고 공간도 안 빌려주고. 그런데 우리가 다 같이 들어간 다음부터는 뭐든 해줬지.
처음에는 기분 좋게 누렸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6년 내내 회장을 한 그 사람과 우리가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어. 그동안 우리는 학부모회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00파’라는 말이 있더라. 00파에서 △△파로 바뀐 것뿐이었어. 우리가 새로운 계파를 만들어서 그들을 밀어내고 학부모회를 차지한 거야. 이건 아니다 싶었지.
키키: 드디어 나서야겠다고 결심했구나.
천둥: 나는 사실 나서는 거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었어. 언제나 뒤에서 협조하는 편에 속했어. 근데 키키가 말했다시피 누군가 해주기를 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할 수 없이 나선 거지.
싫지만 떨치고 나서야 할 만큼 충격적인 일이 있었거든. 운영회의 중에 내가 어떤 의견을 냈는데, 교장이 “누가 그래요?” 묻더라. 내가 학부모들 의견이 그렇다고 하니까, “누구요? 옆집 아줌마요?”하면서 내 의견이 아주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하더라고.
키키: 진짜? 너무하네.
천둥: 근데, 그게 너무 사실이라서 부끄럽기만 했어. 실제로 누군가의 의견을 모아서 낸 의견이 아니라 같이 활동한 우리들의 의견이니까. 너무 분하다, 하고 씩씩거렸는데, 생각할수록 학부모 대표로서 학부모들의 의견을 모아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더라고.
키키: 그래도 그런 말을 들었을 땐 교장이라는 위계가 너무 크게 다가왔을 것 같아.
키키:그래서 아까 ‘학부모들의 의견을 모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 거구나.
천둥: 응. 근데, 함께 하던 이들에게는 그게 크게 와닿지 않았나 봐. 원래 같은 일을 겪어도 통찰을 얻는 순간은 각자 다른 거니까. 나는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으로 학부모 활동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어.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이름만 걸어주세요, 하면서 운영위원과 학부모회 임원들을 겨우 채웠지.
어쨌든 그때부터 도대체 ‘학교에서 학부모는 뭘까’. 학부모의 자리가 있기는 있는 건가, 딱히 필요 없는 자리를 억지로 만들어서 하는 건 아닐까, 학부모회는 학교에서 어떤 위치여야 되는가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조금씩 머릿속 한구석에 생기기 시작했어.
키키: 그런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굳이 학부모회를 계속한 건 어떤 이유였을까?
천둥: 사실 학부모회에 들어가기 전에 마을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밖에서 하려면 할 수도 있었어. 실제로 학교랑 너무 힘이 들어서 차라리 바깥에서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어. 근데 바깥에서 해도 어차피 공간을 유지하거나 청소년을 모으려면 에너지를 들여야 하잖아. 기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해보자고 한 거지.
한편으로, 나는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야. 학교는 지역민들의 평생교육기관이기도 하잖아.
하지만 다른 학교에서 활동하는 학부모들이 학교가 학부모를 너무 밀어내요, 라고 하소연하면 너무 애쓰지 말고 밖으로 나가시라고 말해. 마을에서 뭔가를 할 수도 있고, 학부모 단체도 있으니까 거기서 활동하다가 여건이 되면 그때 들어오시면 된다고 말이야. 너무 힘든 거 아니까.
키키: 그렇게 학부모회 활동을 하다가 학폭을 경험했다면서?
천둥: 응, 내 아이가 학폭에 연루된 적도 있지만 그전에 내가 학폭위원으로 있으면서 간접적으로나마 학폭을 경험하게 되었어. 당시 학폭대책위원이었는데, 난 위원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느 날 학폭이 일어나면서 불려 갔어.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데, 대체로 아무 준비도 없이 학폭대책위원이 되고 또 아무 생각 없이 그 임무를 그냥 해. 정말 너무 무책임하지.)
아까 학폭 심의 자리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날 나는 학폭위원으로 그 자리에 있는데도 엄청나게 폭력적이라고 느껴졌어. 피가해자들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수치심과 무력감이 느껴지더라. 우리는 그냥 거수기처럼 시키는 대로 하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아는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었지. 선생님들이 “얘는 몇 호 처분이 적정하니까 그렇게 아세요.” 하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거야.
명색이 학폭대책위원회인데, 대책이라곤 없어. 징계위원회라고 이름을 바꾸든가. 그래서 왜 대책은 얘기 안 하냐고 물었더니 “징계하는 게 대책 아닌가요?” 하더라. 그때는 우리 사회가 응보적 정의를 중심으로 법질서가 구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니까 너무 황당하게 여겨졌지.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대로 물러날 수가 없었어. 그래도 학폭이 일어났으니 뭔가 대책을 얘기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럼 대책을 내보세요.” 그러는 거야. 내가 대책을 알 리가 없잖아.
너무 막막했어. 막막했다, 정도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이토록 답을 모른 적은 처음인 것 같은 느낌이었어. 세상이란 게 정말 허술하게 쌓아 올린 모래성 같구나. 이 나이 먹도록 어찌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었고, 절벽 앞에 선 것 같았어.
키키: 절벽 앞에 선 기분이라는 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막막한 느낌 때문이었을까?
천둥: 맞아, 보통은 이건 어디 가서 물어봐야겠다거나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 이런 게 있잖아. 근데 그 일은 전혀 앞이 안 보이고 너무 깜깜했어. 그런데 절대 이대로는 아닌 것 같아,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주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더라는 거야. 다른 위원들은 아무 문제없다는 듯 선생님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서 쟤는 왜 저래? 하며 나를 보는 거야!
키키: 아이고, 너무 속상했겠다. 적어도 천둥에게만큼은 문제의식이 크게 다가온 거잖아.
천둥: 그렇지. 어느 정도였냐면 온몸에 발진이 일어났어. 몇 개월간 알 수 없는 발진이 얼굴과 몸을 뒤덮었어.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어. 가해자들과 부모들을 모아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지켜야 할 약속을 받아내고, 그 약속을 지키는 과정을 함께했어.
징계는 징계대로 이루어졌지. 징계가 내려지던 날, 왠지 모를 패배의식이 나를 뒤덮었어. 절망감이 너무 커서 집에 오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어.
키키: 에구, 정말 고생 많았다. 어떤 점이 천둥을 그렇게까지 절망하게 했을까?
천둥: 뭔가 하기는 했지만, 올바른 길은 아니라고 느꼈던 거지. 그러다 우연히 회복적 정의를 만나면서 조금씩 길을 찾게 됐고, 학부모 교육으로 소개했고, 학교가 회복적 생활교육을 받아들였어. 그제야 좀 치유가 되더라.
그때 가해자 부모들이 학부모회로 들어와 오래 같이 활동했어. 회복적 정의 공부도 같이했고. 근데 그때는 재발되지 않게 하는 데만 집착하느라 피해자들의 회복에는 신경 쓰지 못했어. 그게 지금도 마음에 걸려있어.
키키: 천둥의 아이가 학폭에 연루된 일은 어떻게 되었어?
천둥: 학교가 회복적 정의를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즈음, 친구가 때려서 아이가 다쳤다고 학교에서 연락이 왔어. 부랴부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는데 교감한테 전화가 왔어. 우리 애가 먼저 친구를 놀렸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라 피가해라는 거야. 그 순간 교감의 목소리 톤이 달라지는 걸 느꼈어. 그전에는 어쩔 줄 몰라하는 목소리였는데, 순식간에 가해자의 부모를 대하는 태도로 돌변한 거야. 뭔지 알지?
키키: 알지. 그 고압적인 분위기.
천둥: 맞아. 그리고 약간 비아냥을 느꼈어. 회복적 생활교육을 선두에서 추진해오던 내가 가해자 측에 서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비웃음거리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서 엄청난 자괴감을 느꼈어.
키키: 그것도 너무 잘 알지. 학부모회장이랍시고 그러지 말고 네 아이나 잘 키워라, 하는 태도.
천둥: 아휴, 아무튼 피가해가 섞이니까 치료비 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는 거야. 보통 치료비는 가해자 측에서 100% 책임지는데, 피가해는 잘못의 정도에 대해 서로 합의해야 하니까. 학폭으로 다친 경우는 보험이 안 되니까 별거 아닌 상처도 치료비 부담이 크거든. 그런 줄 알았으면 그냥 놀다가 다쳤다고 하는 건데. 하지만 미리 알았더라도 증빙을 해야 하는 경우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해야 하는 거지. 여러 모로 치료비는 민감한 부분이야.
그런 상황에서 학폭위가 열렸어. 아이는 다쳐서 병원에 누워있는데, 학폭위에 불려 가는 게 너무 억울하더라. 그래도 나는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혹시라도 이전부터 우리 아이가 누군가를 놀리는 행동을 했다거나 교실에서 그런 일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달라고 했어. 이번 일이 교육적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미 담임에게도 말하고 학폭 담당 선생님들에게도 말하고 학폭위원회에서도 말한 거야. 근데 내 진의가 가닿지 않더라. 같이 회복적 생활교육을 공부한 사람들도 포함된 학폭위원회였는데도 불구하고.
키키: 아 정말, 당사자들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하는 태도. 절차를 끝내기에만 급급한 태도, 때문에 너무 상처받아.
키키: 어려운 과정이다.
천둥: 그래도 학부모회 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 나는 굉장히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게, 나로선 엄청난 성과인 것 같아. 또 한 번, 아쉬우면 내가 하자,를 배웠지. 회장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부터는 단 한 번도 주저하지 않고 먼저 나섰던 것 같아. 뭘 하든지 기꺼이 내가 먼저 하겠다고 나섰고 그렇게 맡은 일은 귀찮지 않았어. 내 역할이 너무 많다고 속상하거나 힘들다고 투정하지 않았어. 그런 시간을 꽤 길게 보내고 나니까 내가 변해 있더라. 원하는 일이 있다면 내가 나서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걸 몸으로 체득한 셈이야.
키키: 맞아, 맞아. 누가 해주기를 바라는 건, 특히 학교가 해주길 바라는 건 의미가 없어. 게다가 내가 원하는 방향은 내가 아니까.
천둥: 방향을 알고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도 내가 아니까, 내가 하는 게 당연한 거야. 함께하는 일이어도 그건 온전히 내 몫이야.
키키: 완전 공감해. 그런 마음으로 일하니까 마음도 편해. 어제도 밤새 학부모 연수 포스터 다 만들고 왔어. 내가 열심히 하니까 사람들도 미안해서 잘 따라와. 그런 장점도 있어.
천둥: 단점이 하나 있어. 그렇게 10년을 했더니 완전 번아웃이 되더라. 중간중간 휴식도 취하고 스스로에게 보상도 적당히 주어져야 하는데, 그런 조절을 잘 못했던 것 같아. 학부모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꼭 말하고 싶어. 열심히 하시되 제때제때 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