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편: 학부모라는 이름 속에 담긴 공공성
키키: 천둥은 어떤 시각차를 발견했어?
천둥: 그전에 나는 아까 키키가 학교는 직장이라고 한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 물론 그 말도 교사 입장에서 직장인 것이 맞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무원으로서 ‘공적 책임감’을 가져야 하잖아.
키키: 선생님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소명 의식을 말하는 거야?
천둥: 그 이전에 공무원으로서 가져야 할 공적 책임감부터. 공무원이라면 국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 필요하잖아. 근데 ‘직장인’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는 평범을 가장한 무책임을 방조하는 것 같아. 심지어 일반적인 직업윤리조차 갖지 않으려고 그 무게를 희석시켜 버리는 듯해.
키키: 하지만 너무 노동강도가 높으니까 그런 기대를 하면 약간 죄송스러운 맘이 들어.
천둥: 맞아. 심지어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하잖아. 하지만 편의점 알바생에게도 우리는 돈을 지불한다는 이유로 일정 시간 동안 가게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을 부과하잖아. 그뿐이야? 요새는 회사에서도 어지간한 일은 대부분 알바나 인턴이 다 한다며. 최소의 비용으로 착즙하는 사회가 가지는 문제를 고학력 고소득이면서 사회적으로도 높은 대우를 받는 공무원이 자기의 직업윤리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물타기를 인정하자고? 그런 걸 우리가 인정하고 이해해주면 안 되지 않아? 물론 지나치게 과로사회이기는 하지만, 그건 노동의 문제로 풀어야 할 문제이고, 사회인으로서, 또는 직장인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은 각자 받아들이고 또 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대신 진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박수와 보상을 적극적으로 챙겨주면 되잖아. 나 너무 꼰대인가?
키키: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만, 의미 있는 지적이네.
천둥: 물론 교사들이 책임감이 없다는 말은 아니야. 오히려 직업이라는 말이 애쓰는 교사들을 힘빠지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정말 애써야 할 곳이 어디냐의 문제야.
무슨 말이냐면, 학교는 이미 행정기관이 된 지 오래되었다는 거야. 막연히 생각만 했었는데, 코로나 때 교육부 조치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정말 그렇구나 깨달았어.
키키: 알고 보니 학교는 수업보다 평가와 기록을 하는 행정기관이다?
천둥: 학교를 폄훼할 생각은 없어. 다만 공정한 처리가 가장 중요해졌다는 말이야. 공정이 뭔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민원인이 밀어닥쳐도 기록으로써 증빙하겠다는 의지로 처리하는 거지. 그렇잖으면 안 될 정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는 말이기도 하고.
학부모들은 학교를 아이들이 보호받고 성장하는 공동체이길 바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공정한 생기부와 졸업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키키: 고등학교는 그런지 몰라도 초중등 학부모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 않아?
하지만 교사들은 “교육은 우리가 잘하고 있다.” “교육적 기회로 삼을 건지 말 건지에 대한 결정도 우리가 하겠다.” “교육에 대한 권한은 내게 있으니까.” “정 원한다면 가정에서 해라.” “갈등은 나쁜 거고 없애야 한다.” 라고 하는 것 같아서 숨이 탁 막혀.
학교에서 이미 교육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했다고 해도 갈등이 생기면 다시 교육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우리는 이미 했고, 안 돼서 다시 해야 되는 건 부모의 몫이야.”라는 학교의 태도에 우리는 절망하는 거야.
키키- 맞아. 계속 가정의 문제입니다. 책임 있는 부모의 태도를 가지세요. 그 얘기만 반복하지.
우리 아이에게 학폭이 일어났을 때, 집에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내 아이를 단속도 해야 하지만, 교실에서 그런 일들이 반복되어 오지는 않았는지 확인해달라고 하는 것은 나의 책임이자 권리인 거지.
키키: 결국 이것도 제도나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태도의 문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