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편:교육적 방향성과 동등한 관계
키키: 천둥은 학부모회를 하면서 어떤 시도를 했고, 어떤 태도가 필요했어?
천둥: 아까 학교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으로 순회활동을 했잖아. 학교가 우리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드디어 동반자라는 느낌을 받았어. 확실히 학교가 지향하는 교육적 방향성과 우리가 나란히 나아가는 게 중요했던 것 같아. 왜냐하면 교육적 목표 자체가 틀리거나 잘못인 경우는 없거든. 다만 방법이나 과정에서 차이가 있는 거지. 그걸 어떻게 좁혀나가는가의 문제는 진심으로 실천하느냐에서 결판이 나겠지.
어쨌든 처음에는 같이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서 혼자의 생각을 결과로 보여주기 바빴어. 학부모들과 관계를 맺어나갈 시간도 없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지.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면 학교도 학부모들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활동만 하다 보니 사람이 남지 않더라. 지속가능한 학부모회가 되기 위해서는 활동보다 사람을 남겨야 한다는 걸 깨달았지. 그래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힘을 보탰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 같아. 마치 물 한 방울씩 입에 물고 불을 끄려는 박새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한 방울 한 방울 물을 날랐던 거야.
만일 교사들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기다려주는 태도도 필요한 것 같아. 우리는 학부모회가 먼저 회복적 정의를 공부하기 시작했거든. 처음에는 학교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을 몹시 부담스러워하다가 학폭이 반복되니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어. 그런 전환의 순간이 오거든.
키키: 와, 전환의 순간이라.... 정말 뿌듯하고 기쁜 순간이다! 또 어떤 전환의 순간이 있었어?
그렇다고 학생지원을 아예 하지 말자는 건 아니고 학부모들이 성장할 수 있는 쪽으로 활동의 에너지를 옮기는 거지. 예를 들면 학생봉사단을 지원하면서 우리의 리더십과 관계성을 돌아보거나, 활동에 대한 주도성과 자부심을 높이기 위해 지역봉사센터와 연계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있었어. 어쩌면 당연한 과정일지라도 학부모를 성장시키는 활동으로서 의미 부여를 계속 강조했어.
그중 하나가 ’벽화그리기‘였어. 모든 학부모들이 언제든 학교에 와서 붓질 한 번이라도 할 수 있게 진행하자고 계획을 짰는데, 실패했어. 주민참여예산 등 지원금까지 받았는데, 학교가 애들 데리고 그냥 휙 진행해버린 거야. 아이들이 멋진 그림을 그린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참여해서 완성해나가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건데 그걸 기다려주지 못한 거지.
키키 :그런 시도가 대단하다. 그런데 학생들이 수혜자라는 건 어떤 의미야?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
천둥: 봉사활동하면서 우리는 봉사를 해주는 사람이라는 시혜적인 생각을 아이들이 갖고 있는 걸 알아챘어. 그게 좀 위험해보였지. 근데 학부모들에게는 받는 게 또 익숙하더라고. 학부모들도 학생들에게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 안달이고. 예를 들면 봉사활동을 가면서 음료수를 사준다든지, 차를 태워 다닌다든지 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지. 봉사활동 가서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래서 누구나 봉사할 수 있고, 봉사 받을 수도 있는 봉사활동으로 완전히 바꿔버렸어.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평화의 식탁’ 이나 ‘버스정류장 도서관’ 등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 거야. 좀더 ‘동등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었어.
바자회를 할 때도 설문조사 등에 참여해야 떡볶이를 주는 식으로 ’퍼주기‘를 멈췄지. 아이들에게 베푸는 게 무슨 수혜냐고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예 매뉴얼에 취지와 방법을 적시해놓으면 금세 받아들이더라. 2년의 법칙이야.
키키: 그게 뭐야? 처음 듣는 말인데?
천둥: 당연하지. 3의 법칙을 알게 된 후에 내가 만든 거니까. 하하. 2년의 법칙은 사람들이 2년만 지나면 바뀐 방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거야. 원래 그랬다는 듯이.
키키: 오, 그런 거 같아. 2년의 법칙, 나도 써먹어야겠다.
천둥: 2년만 문제의식을 잘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정착되니까 힘을 내보자고. 그리고 이번에도 봉사단이라는 ’활동‘ 말고 우리의 ‘문제의식’을 봐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