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라서 거의 30년을 한국에서 살았다.
그런데 왜? 이민 1.5세 코스프레를 하는지 모르겠다.
일례로
남편은 처가와 시댁을 구분 못한다.
누구네집 얘기 하다가 시댁과 친정과 며느리 뭐 이런 얘기가 나오면 남편의 리액션 버튼이 멈춰지고, 순간 멍해지는 순간이 있다.
친정이랑 시댁이랑 헷갈리는 거다.
또 처형과 제수씨도 헷갈려한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그런 가족에 대한 호칭이 복잡하고 헷갈린 건 맞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러한 이유에서인지 그런 어려운 호칭 말고 그냥 언니라고 부르거나 이름을 부르면서 차츰 간소화한다고도 들었다.
아니 그런데 남편은 순종! 토종! 국산!인데, 왜??!!!
왜 자꾸 이민 1.5세 코스프레를 하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 같이 산책하다가
“음~~ 공기가 너무 상큼하다.”
“ …. 공기가 상큼해? 보통 시원하다나 신선하다라고 하지 않아? “
“응! 상큼해”
“보통 상큼은 뭐 과일 같은 거나 약간 신맛 나는 거 그런 거 표현할 때 쓰지 않나?”
“응 공기가 신과일 먹을 때처럼 상큼해. 나는 상큼한 것 같아 ”
“……????”
애들이 라면 끓이면서 혹시 먹을 사람 있냐고 물어보면 남편은 절대로 안 먹을 거라고(살찔까 봐.. 은근 관리하는 남자) 선언한 다음, 딱! 한 젓가락 먹으려는 순간에 주변에서 서성이며
“와~~ 냄새 너무 좋다. 아빠 한 모금만 줘~”
“…. 한 모금? 아빠 보통 모금이란 말은 물이나 음료수 같은 거 말할 때 쓰지 않아?”
“응, 똑같은 거야.”
왜? 당신은 외국에서 태어난 우리 애들보다 한국말이 더 서투른가요?
오늘 남편이랑 아침을 먹으면서
“역시 커피는 아보카도랑 먹을 때 향이 극대화되는 것 같아.”
“맞아, 커피에 제일 잘 어울리는 안주는 역시 아보카도야.”
“……. 자기야, 안주는 술 먹을 때 곁들이는 게 안주야. “
“아니!! 커피랑 같이 먹는 것도 안주라고 해도 돼.”
이 사람은 정녕 안주(按酒)에 ‘주’ 자가 ‘술 주’ 자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급기야 네이버를 검색하여 보여주기까지..
안주란 술을 마실 때에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남편 덕에 안주에 안이라는 한자가 누를 안 자라는 것을 배웠네.
술을 누른다.
역시 술은 안주랑 먹는 게 정석이구만.
이런 기본 중에 기본인 표현을 저런 식으로 표현하면 , 남편을 잘 모르는 사람은 1.5세나 2세쯤으로 생각할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라고 외친다.
문제는 이제 나도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저런 표현들을 처음에 들었을 때는 안 어울리고 어색해서 내가 정정해줬는데 “공기가 상큼해.”라는 말을 하도 들으니 이제 너무 자연스럽다는 거.
혹시 남편은 작가의 기질을 가진 것인가?
남들보다 더 자유로운 영혼을 가져서 그의 생각을 일반적인 언어의 틀에 가둘 수 없는 것인가?
그 뭐 ‘시적 허용’처럼.. 남편은 본인의 감성과 언어가 따로 있는 것인가?
헷갈린다 헷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