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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녜스 Jun 10. 2022

흔들리는 바람이 일러준다

바람이 분다.

줄지어 서있는 나무의 수만 개 이파리가 바람 부는 대로 나풀거린다.

잎새의 흔들림이 군무를 하듯 일정하다.

미세한 떨림과 움직임을 넋 놓고 바라보다 뿔뿔이 흩어진 생각들을 다시 불러 모은다.

시간의 수레바퀴는 여지없이 흘러가고 멈춤의 여운은 잠깐 사이 자취를 감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변화를 맞이하는데  전과 달리 소극적이 되어가는 걸 느낀다. 그렇다고 과거에 연연하거나 변화에 등한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변화에 대한 셀렘과 호기심보다 낯선 느낌의 새로움과 마주해야 하는 노파심 때문일 것이다.

나이 듦에 의식이 변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강과 같다. 물은 여느 강에서나 마찬가지며 어디를 가도 변함없다. 그러나 강은 큰 강이 있는가 하면 좁은 강도 있으며, 고여있는 물이 있는가 하면 급류도 있다. 그리고 맑은 물과 흐린 물, 차가운 물과 따스한 물도 있다. 인간도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가 한 말을 음미해본다.

사람이 모여사는 세상. 저마다 생김새가 르듯 살아가는 사고방식도, 모습도 다르다. 그 다름을 서로 존중해준다면 살면서 부딪히는 여하문제들 크게 없을 것이다.


지천에 흐드러지게 핀 화려하고 순박한 꽃들의 향연 무르익어간다.

며칠 전, 여행 중에 가평의 자라섬을 들렸더니 그곳에 핀 붉은 양귀비꽃과 하얀 안개꽃의 무리가 예뻐서 눈을 맞추고, 색다른 황금빛 양귀비꽃과 블루 세이지 꽃향기에 마음을 빼앗겨 들어올 틈이 없건만, 담장에 걸쳐 핀 요염한 붉은 장미가 나의 시선을 붙잡는다. 꽃은 꽃이라서 아름답다.


삶을 무언가로 가득 채울 필요는 없다.

더없이 소박한 하루의 느슨함이 친근하다.

여태껏 지내온 삶의 조각들을 퍼즐처럼 늘어놓고 봐도 특별할 만한 것은 없다.

치열한 삶도 아니었고, 일부러 사서 고생한 삶도 없다. 그렇다고 좋은 길, 편안 길만 걸어온 삶도 아니었다. 세상살이가 어디 호락호락할 일이던가. 기복이 없는 인생이 없듯, 힘든 고비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이겨내며 지내왔다.

지금껏 삶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져 왔음을 감사하며,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내 방식대로 내 분수대로 살아갈 징후는 농후하다.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오늘도 백수의 쉼을 예찬한다. 백수가 과로로 몸져누우면? 이것저것 재고 말 것도 없이 나만 손해다.

바람 따라 나붓 나붓한 잎사귀가 리엑션 하듯 내게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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