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무 Aug 01. 2022

제가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되는 걸까요

 내가 느끼는 감정, 드는 생각이 맞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분명 나의 감정이고 생각인데 누군가에게 확인받아 확신을 얻고 싶다. 내 안에 있는 문제의 답을 밖에서 구하려 하다니 모순적인 일이다.


우리는 종종 서로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파트타이머와 직원, 고용인과 피고용인, 팀원과 팀장, 교수와 학생, 부모와 자녀처럼 다양한 관계로 만나며 각자의 자리에서 매 순간 갑과 을이 되어버린 나와 당신을 발견한다. 주어진 배역에 충실하게 할 일을 해가는 입장 속에서 사람의 존재는 흐려지는 것이다. 일로 만난 우리는 사회라는 기계의 부품으로 변해버렸다. 반복되는 시간이 쌓여가며 당연하게 여기는 일이 많아진다. 처음엔 눈치를 보며 부탁하던 일이 어느새 일방적인 통보가 되고, 희생을 감수한 배려에 감사하다가도 익숙해지니 부족하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갑이 되어간다.


 여기에서 을인 사람이 저기에선 갑이 된다.

사회에서 을이었던 내가 가족에게는 갑이 되기도 하고  안에서 갑인 내가 부서에서 을이 되기도 한다. 미디어에서 말하는 갑질의 사례를  번쯤 접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너보다 위에 있는 입장이니 알아서 받들어주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반대로 '을질'이란 표현도 나왔다. 상대적으로 약자라는 입장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에 사람 없다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여전히 상하관계가 존재한다. 표면적인 신분제는 폐지되었지만 물질을  힘이라고 여기며 계급을 나누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갑과 ' 경계가 모호해서 언제든 위치가 바뀔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이기적으로 산다.


부끄럽지만 나에게도 있는 모습이다. 밖에선 목소리 내지 않으면서 소중한 사람에게 감정을 쏟아냈다.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받아줄 거라는 착각을 가지고 나의 힘듦을 알아달라며 떼썼다. 당신도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지친 모습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 감정이 우선인 어린아이처럼 철없게 굴며 주변 사람을 지치게 했다. 당신의 배려가 익숙해지고 챙겨주던 것이 당연해서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역지사지란 말을 증명하듯 어리석은 사람은 비슷한 일을 경험해봐야 문제를 인식한다. 공감은 지능이라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미련한 나는 여러 일을 겪어보고서 겨우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그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다. (아주 드물게 사람인가 싶은 존재도 있지만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사람에 가까울 것이다.) 역할을 맡아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뿐이지 나와 당신처럼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에 마음이 다친다. 아픔을 느끼는 정도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라도 다치면 아프다. 내가 힘든 것처럼 상대도 쉽지 않은 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서로에게 조금은 친절할 수 있을까. 당신과 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느낀 감정은 틀리지 않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개인의 몫이다. 옆 사람의 감정과 다르다 해서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감정을 앞세워할 일을 모두 내던질 정도로 책임감 없는 사람은 아니다. 모두가 서툴지만 애쓰며 살아가고 있단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서로의 배려 속에 우리가 조금은 감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조금은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관대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잘 지내고 있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