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에서 읽다)마음사전(김소연)

우리가 서로를 알아본다는 착각 속에서

by 일상의모서리

인연은 대개 이해로 시작한다.
그와 내가, 그녀와 내가, 그들과 내가 그랬듯이.

“아, 이 사람은 나를 알아주는구나.”
그 안도감이 관계의 문을 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그 ‘알아줌’ 속에는
보이고 싶은 얼굴만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 본 것은 진짜 서로의 속살이 아니라, 서로가 골라 준 옷을 입은 서로였다.

그 이해는 가장 성공적인 오해였다.


반대로, 관계의 위기는 오해에서 온다.

“당신은 나를 오해하고 있어.”
그 말속에는 변명과 두려움이 섞여 있다.

그 ‘오해’ 속에는 서로가 꺼내놓지 않으려 했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어쩌면 서로가 본 것이야말로 감춰온 서로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그 오해가 너무 정확해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뿐이다.


이해와 오해가 얽힌 자리에서
인연은 자란다. 나의 인연들이 그렇다.

처음의 이해가 오래가지 않듯,
처음의 오해도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결혼 전, 남편이 살 던 집에 놀러 갔을 때 먼지도 없는 바닥과
잘 정돈되어 있던 그의 방, 장르별로 정리된 서재의 책들을 그의 부지런함으로 이해했던 나의 오해.
그런데 왜 목욕탕에 머리카락은 치우지 않는 가... 청결하지 않나 생각했던 것은 느긋하고(게으르다고 표현하기에는 그의 게으름은 선택 적므로), 여유 있는 그에 대한 완벽한 오해였다.

관계는 서로의 오해를 견디고, 이해를 갱신하며 조금씩 깊어진다.

싸워도 잘 싸우면 백년해로할 수 있... 다.

오래가는 인연은 그 오해마저 풀어내려는 사람들의 시간이 아닐까.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서운하기도 하지만, 아쉽지도 않은 것은 나도, 그도 서로가 노력하지 않을 만큼의 인연이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