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운 생명 Jun 16. 2024

잠을 잊은 그대에게

집밥예찬 2


 예기치 않은 사고는 삶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사고가 나기 전 남편과 나는 여느 부부들처럼 맞벌이를 했다. 내가 아침 7시 무렵 출근을 하면 야근을 마친 남편은 7시 30분쯤 퇴근을 한다.

혹여 내가 잔업이라도 하게 된다면 나는 저녁 9시에 퇴근을 하고 남편에 6;30분에 출근을 하게 되어 3~4일을 생이별할 때도 더러 있었다.

 

아홉 시쯤 집에 도착하면 청소며 빨래 등 약간의 집안일을 마치고 남편의 저녁 반찬 준비를 한다.

돼지고기에 야채와 갖은양념으로 불고기를 재우고 콩나물도 빨갛게 무쳐 놓는다. 국물도 없으면 섭섭하니까 쌀뜨물에 된장 풀고 갖은 야채 넣어 보글보글 된장찌개까지 끓이면 낼 저녁밥상 완성이다.

이렇게 준비를 해 놓으면 남편은 된장찌개를 데우고 불고기를 볶아 저녁식사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냉장고를 열어보니 전날 해둔 반찬이 그대로 있었다. 반찬이 그대로라는 건 남편의 저녁 메뉴는 라면이라는 걸 의미한다.

라면 안 먹게 하려고 나는 피곤해도 야채를 다듬고 지지고 볶고 끓이는데 설거지가 귀찮아서 라면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는 남편이 미웠다. 그런 일이 잦아지자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남편과 다툼이 있곤 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혼자 먹는 밥이 맛있을 리 없었고 잠을 잔 것도 그렇다고 안 잔 것도 아닌 컨디션에 밥생각도 나지 않았을 텐데.

사고로 휴가 아닌 휴가를 맞게 되며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아지자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남편이 야근을 마치고 잠을 청해 보지만 몇 번이나 잠 못 들고 깨어나는 걸 실제로 보게 되니 눈물이 났다.


그때부터였다.

 따뜻한 음식은 따뜻하게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매운 음식 맵지 않은 음식, 나름의 조화를 생각해서

저녁 상차림에 신경을 썼다. 10개의 손가락과 7개의 손가락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차라리 검지와 중지가 있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없었다면

생활하기가 훨씬 수월 했을 텐데...

이만큼 다친 것만도 천만다행이라고 하고선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 어쩔 수가 없다.


올해로 만 20년째 남편은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야간근무일 땐 낮에 잠 못 들고 주간 근무일 때 밤에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잠을 잊은 애달픈 남편

그런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나의 큰 내조는 따뜻한

저녁한상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가정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여전히 잠 못 드는 그대들이 있어 이 밤 우리는

꿈길을 걷는다.




작가의 이전글 집밥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