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와 <국제시장>, 넌 뭘 찍을래?
작년이었다.
평가가 좋지만은 않았던 한 영화의 단체 관람을 갔던 날, 교수님께서 물어보셨다.
“만약에 말이야, 너희가 너희 시나리오가 아닌 영화의 연출을 맡을 기회가 생겼다 치자.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 작품이 도저히 잘 될 것 같지 않아. 돌고 돌다가 너희 같은 신인한테 너 한번 해볼래? 하고 주어진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면.
대신에 제작만큼은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면
이 중에 그런 동아줄이라도 잡고 나는 입봉해야겠다 하는 사람 손 들어 봐.“
장내는 조용했고, 나와 한 동기만이 손을 들었다.
참고로 당시 우리가 술자리에서 자주 하던 놀이를 깔고 가자면,
“야, 네가 감독이 됐어. 근데 <올드보이>를 찍고 5천을 벌수 있고, <국제시장>을 찍어서 60억을 벌 수 있다 치자. 그럼 너 뭐 찍어?”
이런 선택지를 논하고 있었고 거의 대부분 <올드보이>를 골랐다. (내 대답은 일단 패스하겠다) 천만 영화인데다가 대종상부터 상이란 온갖 상을 다 휩쓴 <국제시장>이 <올드보이>에 비해 부족한 영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당시의 우리는 감독의 색채가 온전히 드러나는 <올드보이>와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국제시장>을 비교하며, 대중의 선택보다는 감독 개인이 원하는 예술적 완성도를 높게 쳤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때의 우리는 한 편을 찍더라도, 그리고 그 한 편마저 망하더라도 감독의 예술적 완성도를 온전히 그려낼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겠다는 치기어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졸업을 앞둔 지금은 솔직히 다들 뭘 고를지 잘 모르겠다.
다들 머리가 복잡할 것이다.
아마 <올드보이> VS <국제시장>은 여전히 다들 <올드보이> 고를 거 같고 (이건 사실 올드보이가 너무 좋은 영화라서 그렇다. 옆에 비교급으로 뭐가 나와도 아마 대부분의 영화학도들은 올드보이를 고를 거다), 타작가의 시나리오로 입봉은 다들 흔들리지 않을까. 내 시나리오로 7년 걸릴 거, 남의 시나리오로 2년 걸릴 수 있다는 상황의 구체성까지 주어진다면 거의 80%은 남의 시나리오를 고르리라 확신한다.
나도 그렇다.
(대신에 각색은 내가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참 좋겠다.)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퇴색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지망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감독으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필모가 없는 내가 타인의 작품의 완성도를 논해봐야, “그럼 너는 뭐 만들었는데? 야 임마, 네가 아직 학생이니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삶. 아마 영화 뿐 아니라, 대부분의 직업이 그럴 것이다. 교직생활의 불합리와 불편을 임용고시생이 말하면 그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어린 아이의 투정으로 보이는 것과, 아직 법조인이 되지 못한 로스쿨 학도가 사법고시 부활을 논해봐야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젊은 우리가 지망생으로서의 삶을 하루 빨리 끝내고자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적어도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저도 영화감독 해봐서 아는데요. 저는 이런 부분이 좀 싫어서요. 대신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정도는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 나의 불편이 이 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자의 투정 정도로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불합리를 교정할 진지한 논제가 되길 바라는 것.
그러나 정말 지망생의 투정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사실 아니다. 우리는 매일 투정하고 투쟁해야한다. 어쩌면 이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은 바로 기득권이 되지 못한, 우리 지망생들의 투정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이해관계가 없는 우리가 무엇이 두렵겠는가.
(아마 내가 이미 상업영화 감독이었다면, <올드보이> VS <국제시장>같은 문제는 내지 못할 것이다. 둘 다 아는 사람이라면 나중에 만났을 때 얼마나 민망하겠는가. 그리고 내 영화가 이 두 영화의 발끝에는 미칠 수 있는 영환가를 고민하고 있을 것 같다)
왜 한국 영화 시장의 제작자들은 대중들이 말하는 한국 영화 하향평준화를 막지 못하는가. UBD류의 전기 영화를 연이은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케이퍼 무비류의 팜므파탈형 여성 주인공은 과연 시류에 맞는 인물 유형인가? 마약, 섹스, 폭력류의 도덕적 문제를 다루는 작품은 연이은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제작되는가. 12년도에 제작된 <범죄와의 전쟁>과 18년도 개봉의 <마약왕>의 플롯이 몹시 유사한데 왜 6년이라는 시간동안 이 플롯은 여전히 제작되고 있는가. 그리고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왜 또 비슷한 영화들을 제작하는가? 거의 모든 지역구마다 영화제를 유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단편, 독립영화 시장은 왜 관객과 철저히 유리되어 있는가. 이쯤 쓰고 나니 갑자기 실명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사실 사회를 바꿔나가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투정일지 모른다.
어제가 불편했기에 오늘은 이를 반복하지 말자는 의지.
SNS도 하지 않는 내가 영화감독 지망생으로서의 삶을 브런치에 적어보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졸업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내게 물었다.
그럼 너는 뭘 찍고 싶으니?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되찾아가는 영화를 찍고 싶다. 이를 테면, <Me Before You>나 <Stranger than fiction>이나, <Her>이나 <리틀 포레스트> 같은 거. 스무 몇 해를 기성 교육을 받고 좋은 사회 구성원이 되고자 살아왔던 내가 나도 몰랐던 나의 자아를 찾고 내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는 그런 류의 이야기.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삶과 밀접히 닿아있는 그런 이야기. 그런 영화가 저예산이나 독립영화가 아니라, 메이저 상업영화가 되는 시장을 꿈꾼다.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살게 된 지 삼년 차,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이 시간 동안 세편의 단편 영화를 찍었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알려지지 않을 예종 1년차의 영화들은 절대 카운트하지 않겠다) 두 번째 장편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역시 첫 번째 장편 영화 시나리오는 영원히 외장하드에 남겨둘 예정이다. 두 번째는 세상에 내놓을 수 있길 바란다. 내놓을 땐 당연히 첫 번째라고 당당하게 거짓말할 예정이다).
한편은 대부분의 감독들이 그렇듯 외장하드 한구석에 나만 기억하며 조용히 묻어두었고, 두 번째 영화로는 작은 영화제에서 마이크를 잡고 벌벌 떨다 왔으며, 어쩌면 또 외장하드에 묻어야 할지 모르는 세 번째 영화의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이 세 편으로 지망생으로서의 삶을 꼭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유튜브 시대에 이제 감독도 브랜드 가치를 가져야 하는 시점이니,
너도 유튜브를 좀 찍어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와서
유튜브는 도저히 찍을 용기가 나지 않는 한 영화감독 지망생의 투정을 앞으로 열심히 연재해 볼 예정이다.
혹여 궁금하신 분들 있으시면 구경오시라.
열심히 질문도 해주시라.
아는 만큼 적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