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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친정 엄마, 여기 여기 붙어라!

딸아, 엄마라서 미안해

"우리 시어머니가 생강을 이렇게 해주시고 가셨어."

결혼한 딸이 또 시어머니 얘기를 한다. 미국에 사는 시어머니는 간호사로 심장전문 병원에서 수석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2년 전 은퇴하고 시간제로 재취업하여 계속 일을 하고 있다. 일 년에 한 번 한국 아들집을 방문해서  한 달씩 있다 가는데, 저번에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생강을 까서 다져서 음식 할 때 톡톡 부러뜨려 사용하라고 비닐팩에 납작하게 넣어 냉동실에 얼려놓고 가셨단다.  사골국도 한솥 끓여서 일회용씩 팩에 담아 얼려주었다고 한다.


듣는데 은근 기분이 묘하다. 

(내가 다른 집 결혼한 딸들 이야기하면 너네 이런 기분인 거니? 다른 집 딸들 이야기 안 하는데 어쩌다가.)


지난번에 시어머니가 왔을 때는 고구마 줄기를 한 묶음 사다가 주방 바닥에 앉아서 껍질을 까 나물을 해주셨다고 말하는 폼이 시어머니가 고구마 줄기 까는 모습이 꽤나 기억에 남는 듯했다.

(엄마도 너네 집에 휴가로 한 달간 가 있으면 거실 바닥에 앉아 고구마 줄기도 까고, 마늘도 깔 것 같긴 해, 딸아. 나도 꽤 소심하긴 해. 빈정 죄끔 상한 건가? )


'사돈, 고맙긴 한데요, 좀 적당히 하세요. 내가 비교당하잖아요.'


딸아이 시어머니는 바지런('부지런'보다 '바지런'이다)하다. 미국에서도 직장을 다니다가 휴가내서 오는 건데 한국 와서도 쉬지를 않는다. 

워낙 한국음식이 그리워 나물도 일부러 손질 안된 것을 사다가 손질하며 허기진 한국의 정서 시간을 채우는 듯하다.




반면, 난 김장도 못한다. 나물도 못한다. 내가 하는 음식은 모두 정석이 아닌 내 맘대로 퓨전이다. 

주변에서 딸네 집에 밑반찬을 해 나른다거나 김치를 대놓고 날라준다는 친정 엄마들을 볼 때, 난 움찔한다.

음메, 기죽어.

그게 항상 마음에 걸려 한번은 함께 모임 하는 젊은 회원들에게 물었다.


"친정 엄마가 반찬 해 날라주면 좋아요?"

"아뇨."

뜻밖이다.

"어머, 왜요?"

"친정 엄마도 시어머니도 해 다 주는 것 다 싫어요. 귀찮아요.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건 입맛에 맞지 않아서도 그렇고, 받고 맛있다고 겉치레 인사하는 것도 귀찮아요."

"결국 안 먹고 버리는 것도 싫어요."

"친정 엄마 음식은 입에 맞지만 요즘 집에서 밥을 잘 안 먹잖아요. 결국 못 먹고 남아서 버려요."

"안 해주는 게 좋다. 호호호."


'다행이다.'

난 지화자를 불렀다.

죄책감, 열등감에서 해방.

그런데 오늘 또 딸에게서 시어머니가 생강이 어떻고 곰탕이 어떻고 들으니 다시 거북목이 된다.




난 딸이 아기를 낳을 때도 곁에 없었고, 조리원 비용을 대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딸들은 아이들 기르면서 힘든 일이 있어도 친정 엄마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아, 한번 있구나. 딸이 맹장염에 걸렸을 때 연락이 와서 일본에 살던 나는 급히 한국으로 와서 손녀를 봐주었다. 





모임에서 한 젊은 회원이 자신은 친정에 삼일에 한번 전화해도 엄마가 연락이 뜸하다고 서운해하신다고 한다.

'어이구, 우리 딸들은 한 달이 가도 전화 안 하는데.'

카톡으로도 일이 없으면 무소식이 희소식.


딸네 집에는 일 년에 한 번이나 갈까?  막내 딸네는 이사나 해야 집들이로 한번 가보고 그만이다.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온다. 그것도 명절이거나 두세 달에 한번 정도.



내가 너무 한 걸까?

딸이 너무 한 걸까?


독립적인 걸까?

거리감일까?


내가 친정 엄마나 언니들의 도움 없이 혼자 육아를 했었고 도움 받을 친정이 없다는 것이 많이 서글펐는데, 내가 역시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난 '친정'엄마'같지 않은 친정 엄마임에는 틀림없다.

나 같은 친정 엄마 어디 없어요?

나 같은 친정 엄마, 여기 여기 붙어라!


God could not be everywhere and therefore he made mothers.
 신은 어느 곳에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
-Jewish Prov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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