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속에 사는 사람들
일본에서 한국까지는 가깝고도 멀다. 비행시간은 두 시간 남짓이지만 공항까지 두 시간 공항에서 두 시간이기에 아침 일찍 동경 집을 나와도 부산 고향집에 도착하는 건 땅거미가 내린 뒤다. 몸도 마음도 몽롱한 상태로 탈것들에 몸을 실으면 반나절만에 주변 사람들도 냄새도 공기도 달라진다. 하늘을 날아가는 귀성길이 그다지 싫지는 않다.
길고 긴 학생 시절 동안에는 이곳에서의 내 삶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었고 매일매일 새로운 일들이 벌어졌다. 울퉁불퉁한 일상들 속에서 귀성을 미리 계획하기란 쉽지 않았다. 문득 그리움의 냄새가 짙어질 때, 그리고 통장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을 때 불현듯 비행기 표를 예매해 짐을 싸곤 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와 몇 시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대충 방 청소를 한 뒤 공항을 향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여권을 내고 다시 여권을 받고, 또 여권을 내고 다시 받고, 또 여권을 내고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동경발 부산행 작은 비행기 창가 자리에 다리를 구겨 넣고 앉아있다. 어제의 피로를 보상받겠다는 듯 온몸을 폴더폰처럼 접어 30분 정도 자다 일어나 보니 비행기는 안정적인 고도에 올라섰다. 기내식을 후다닥 입에 털어 넣고 책을 펼쳐 세 줄 정도 읽고 좀 쉬고 다시 세 줄 정도 읽고 하다 보니 어느덧 착륙 시간이 다 되어간다.
단시간 비행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승무원들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입국 카드와 세관신고서를 내국인 외국인 별로 나눠준다. 한 줄 한 줄 넘어 내 앞에 온 승무원은 웃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어디 여권 가지고 계세요?"
일본은 비단 일본인들만의 나라가 아니다. 100만 명 가까이 되는 재일교포들이 일본인으로서 또는 한국인으로서 살고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른 나라 여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도 많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일본인도 있고 일본 이름을 가진 외국인도 있다. 여권이라는 작은 수첩으로 그어진 국경 사이의 틈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촘촘히 들어차 살고 있다. 매일같이 그 사이를 건너 다니는 승무원들은 그 사람들 모두가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비행기를 내려 입국 심사장까지 걸어가는 동안 언제나 그리웠고 어느덧 어색해진 풍경들이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펼쳐져 있다. 나는 오늘도 그 틈 사이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