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에게 심리상담사는 필요하다.

심리상담사의 역할과 실질적인 도움에 대하여

by 재키

평소에 마음이 힘들거나 우울하고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다. 밥 벌이를 하는 사람중에 고민과 스트레스로 괴로워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들 중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의 조사결과(2021)에서는 성인 10명 중 7명이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있으며 그 중 3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보고됐다. 한국갤럽의조사(2022)에서는 성인 응답자의 약 56%가 최근 한달 이내 직장문제, 경제적문제,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정신과 치료나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5%에 불과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2020 조사)


전문가의 도움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등을 떠밀어줄 수 있도록 나의 심리상담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먼저 풀어보고자 한다.


나에게 심리상담이란 좀 비싼 심리검사 같은 느낌이었다. 평소 친구들과 오늘의 운세나 올해 별자리 운세 등을 안주삼아 재미로 얘기했던 적이 많았다. 한 때 심리검사 카페가 동네에 생겼을때 친구들과 가서 서로 테스트를 하며 잘 맞나 안맞나 비교하며 놀았던 적도 있다. 그래서 심리상담은 좀 더 자격증이 많은 사람이 해주는 그 정도의 심리테스트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코로나가 사그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기는 힘들던 시기에 우연히 그룹상담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는 온라인 글을 보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 공짜라면 일단 손 내밀고 보는 쫌생이인 탓에 냅다 신청서를 내고 그룹상담에 참여했다.


1~2주에 한번씩 온라인으로 만나 미리 정해진 주제에 따라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약 10회 정도 진행했던 걸로 기억한다. 가끔 만나다보니 반년 넘게 한 셈이다. 애초에 여러명이 한 그룹일거라고 안내받았던 것과는 달리 장기간 일정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불참을 선언해 결국 나와 다른 여자 한분만 덜렁 남아 그룹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하호호 웃으면서 사람들과 심리테스트 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낼거라 생각한 내 기대와는 달리 10여주 간 나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한번도 떠올려 본 적 없었던 얘기를 털어놓으며, 나조차 몰랐던 숨어있던 내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불편한(?) 시간을 보냈다. 그룹상담을 마친 후, ‘나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결국 큰 맘 먹고 개인상담을 시작하게 되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그 당시의 나는 제법 인생에 만족도가 높은 편이었다.

한국에서 살때는 직장 문제, 인간관계에 만족스럽지 않은 엄마와의 관계까지 -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내 스스로 캐나다로 이민을 결정하면서 무일푼 무비자 상태에서 어느덧 영주권도 내 힘으로 취득했고 좋은 동료들도 만났고 많은 친구들도 사귀며 소박하지만 내가 일군 성취들을 보며 때론 자부심도 느끼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룹 상담을 하며 상담사가 제시한 질문에 답을 하고 어린 7살의 나와 마주하고 나니, 나는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감정과 공포는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씩씩하고 강하게 살려고 지나치게 애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날은 어릴 때 힘들었던 가정환경을 얘기하며 어떤 생각이 떠오르냐는 질문에, “그 시기가 견디기 힘들었지만 엄마 나름의 애를 썼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부모가 되는지 몰랐던 서툰 사람들의 부족함이 내게 상처로 다가왔지만 난 이제 성인이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어린 자신을 만나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말에도 내 생각 그대로 “그들도 나름 애쓰고 있었을거야. 넌 결국 잘 될거니까 걱정하지마”라는 씩씩한 말과 성숙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사가 꼬리에 꼬리를 잇듯이 덧붙인 한마디, “정말 7살의 자신을 만나면 그렇게 말하고 싶으세요?“라는 물음에는 어째서인지 영문도 모르고 눈물부터 터져나왔다. 그리고 엉엉 울면서 말했다.

“정말 너의 엄마는 해도해도 너무 한다고 말해줄거에요“.

그 당시의 상담사는 놀라지 않았지만 나는 왜이렇게까지 울어대는지 내 자신에게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봉인해제시켰을까를 생각해보면 결국은 단순한 물음이라는 생각이 지금은 든다.

사람들과 대화를 할때 우리는 괜찮냐고 묻고 괜찮다고 답한다. 잘 지냈냐고 묻고 별일 없다고 말한다.

이미 충분히 사회화 교육을 받은 우리는 일단 불편한 감정은 뒤로 슬쩍 밀어두고 상대방이 당황하지 않을 답을 먼저 찾는다.

-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지금 부모님은 갈라서게 생겼지만) 나는 크게 별일은 없어.

- (얼마간 직장 상사 때문에 차에 뛰어들까 생각도 하고 밤에 잠도 잘 못자지만) 일은 늘 똑같지 뭐.

- (이렇게 사는게 의미가 있나 싶을 만큼 밤마다 우울하지만) 요샌 다 힘들지 뭐.

이렇게 번듯한 사회인으로서 사람들과 섞여 사는 동안 진짜 복잡한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 밀어둔 채로 못본척, 잊혀진척 하게 된다.


하지만 이 감정들은 어딘가에 있을 뿐 사라지지 않는다. 꾹꾹 누른 감정은 손에 꼭 쥐고 있던 해변의 젖은 모래처럼 손틈 사이 어디선가 자꾸 비집고 나온다. 그렇게 쌓인 감정은 트리거*가 되어 불쑥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별일 아닌일에 눈물을 터뜨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감정을 터뜨리게 하는 감정 유발요인, 촉발요인.


늘 괜찮고 성숙한,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내 안의 어린아이를 못본척 하고 살았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이 잊혀질까 두려워 때때로 일상의 예기치 못한 순간마다 눈물과 분노로 터져나왔다.

남편의 말과 행동에서 나의 원가족*의 말투나 행동이 느껴질 때면, 남편의 잘못 그 이상으로 화를 내곤 했다. 일종의 PTSD가 작동한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때도 그 사람이 실제 어떤 사람이건 나의 원가족과 비슷한 점이 있으면 본능 적으로 피했다.

가족에게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경험은 직장에서 끊임없이 내 자리가 없다는 불안을 느끼게 했고, 이는 나를 일중독자로 만들어 낮이고 밤이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욕망에 일에 미쳐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 원가족이란 태어나고 자란 자신의 가족을 의미한다. 주로 독립 전의 가족.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던 그룹상담을 통해 내가 어른이되며 해결했다고 믿었던 감정들은 사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어딘가 차곡차곡 쌓여 해소될 틈을 노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룹상담이 끝난 후에 나에게 맞는 개인 상담사를 찾기 위해 여러 상담소를 기웃거렸다.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나 역시 3~4명을 만나 비싼 돈을 내며 대화를 나눠봤지만 딱히 나를 잘 이해한다거나 위로받는다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상담도 별 도움이 안되더라고 하는 이유가 아마 이 단계에서 좌절하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런 사람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은 건, 겨울 외투 쇼핑을 할 때도 여러 사이트를 비교하듯 위해 여기저기 비교하고 고민하듯이 나와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좀 더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이라는 것이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살람들이 있다. 심리상담사도 마찬가지.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 사람이 나에겐 AI 대답하는 챗봇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나에겐 너무나 다정한 심리상담사가 다른 누군가에겐 교감이 안되는 답답한 사람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때문에 나와 맞는 이를 찾기위한 시행착오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굳이 그렇게까지? 라고 여길수도 있다. 직장 문제야 퇴사하면 그만, 인간관계도 저 인간을 안 보면 해결될 문제니 굳이 돈까지 써가며 상담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3년 이상 상담을 해본 결과, 심리상담사의 역할은 단순히 대나무숲 이상의 역할을 한다. 내 기준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점 네가지.


첫번째는 제 3자의 눈으로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해석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 역시 내 생각과 마음을 굉장히 잘 전달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10년이상 블로그도 관리해왔기 때문에(브런치 말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쓰고 표현하는 것이 그나마 몇 안되는 장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나의 생각마저 ‘내가 되고자 하는 이상향‘을 통해 한단계 거쳐 말한 것일뿐, 진짜 내 마음이 어떤지 모를 때가 너무너무 많았다. 심리상담사는 내 무의식이 느끼는 진짜 감정과 사회적인 필터가 씌인 내 자아가 느끼는 감정 그 사이에 미묘한 불일치를 읽어내는 역할을 했다. 성인으로서 유년시절 내게 상처준 엄마를 이해한다는 자아와, 미워죽겠다고 소리치는 내 무의식의 자아가 충돌하는 것을 읽어내는 것처럼.


두번째는 안내자 역할이다. 심리상담사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상담사는 내담자가 홀로 감정의 늪에서 헤매지 않게 적당한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사는 절대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잘 듣고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관찰을 할 뿐이지, 결국 문제를 찾아내는 건 내 자신이다.

가령 ‘직장상사가 이렇게 하는데 너무한거 아닌가요?’라는 질문에 ‘너무 한거 같네요 /아니네요’라는 단순한 동의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상담사는 되묻는 경우가 많다. ‘그 사람의 말이 왜 그렇게 거슬렸나요?’ ‘당신의 가까운 친구 중 다른 누군가가 똑같이 말했어도 이렇게까지 화가났을까요?’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내가 분노에 휩싸여 이성적인 사고를 못할때, 신호등처럼 잠시 멈춰서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는지 충분히 지켜볼 기회를 준다.

이 연습이 충분히 되면 내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에 쉽사리 휩쓸리지 않고 내 자신을 좀 더 건강하게 지킬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세번째는 대나무숲의 역할이다. 때때로 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지인들에게 내 처지를 하소연하면 잠깐 기분이 나아지지만 오히려 해결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보며 다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허무도 느꼈다.

하지만 상담 시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때, 인간이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효과 그 이상이라고 한다. 심리학자 카를 로저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할 때 심리적 카타스시스를 경험하며 이런 자기표현은 정서적 갈등 해결과 연결된다고 했다. 즉, 불합리하고 억울하다고 느끼는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어느정도의 내적갈등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몇년간 상담사가 내 얘기를 듣고 공감해주는 시간은 유년시절 받지 못한 부모의 관심을 받고 이해와 공감을 얻으며 나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심리상담사의 역할은 관계에 대한 실용적인 도움이다. 나는 개인 상담으로 시작해 남편과 사이가 많이 안 좋을 땐 몇달에 거쳐 부부상담을 받으면서 서로의 대화 방법을 고쳐나갔다. 부부상담은 대화 그 이상의 대안을 제시하며, 평소에 실질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긍정적인 대화방법, 싸웠을때 진심으로 사과하는 방법, 서로 부딪히는 상황에서 최악을 상황을 막기위해 협의점을 찾는 방법들을 제시했다. 경제적인 상황이 안좋아지고 서로에 대한 섭섭함이 극에 달해 매일을 싸우고 울고 하던 우리 부부는 약 10회 정도의 부부상담 이후 반년 이상 싸우지 않고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아쉽게도 이 기록은 며칠전 싸우면서 깨졌지만 그래도 금방 풀었으니 아주 비약적인 발전이다.)


지금 나는 지인들에게 심리상담 앰버서더(ambassodor)냐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심리상담을 권하고 있다. 개인상담도 좋고 부부상담도 좋다. 문제가 있으면 있는대로 도움이 되고 없으면 예방차원에서 한번쯤 경험해보는게 좋다.


몇년 전 거금써서 큰 맘 먹고 PT를 받을 때 ‘내가 지금 배운 운동 진짜 평생 써먹어서 뽕을 뽑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심리상담도 그렇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상담시간에 배운 것들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에 남아 앞으로도 끊임없이 생길 갈등을 풀어내는데 귀한 자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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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심리 상담 경험자에게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다음 이야기를 통해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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