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이는 아파서 수술까지 해야 된다고 하는데 괜찮다는 남편의 말도 믿지 않았고 엄마인 나는 아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스트레스와 신혼생활 1년 만에 한참 다툴 일 많아 보이는 이때, 하필 우즈베크에서의 시댁생활은 내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큰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한 가족이라는 마음보다 나만 한국사람이고 나만 외톨이네 라는 생각을 했던 때여서 나의 신경은 늘 뾰족해 있었고 밤마다 매일같이 동네가 떠나가라 남편과 싸워댔다.
그리고 며느리인 내 눈치를 보느라 시댁의 온 식구들은 전전긍긍하다가도 나를 이해 못 하는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캐리어를 꺼내 짐을 싸면서 한국으로 몇 번이고 돌아가겠다 다짐했지만 아기를 두고 갈 수도, 그렇다고 말도안 통하는 시골구석에서 아이를 데리고 공항까지 가는 것도 문제였기에 집을 나갈 수도 없었고 만약 그렇게 했다면 우리의 결혼생활이 거기서 끝났을 것이란 생각에 끝내 3개월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우즈베크에 있는 동안 무기력하고 자존감까지 바닥으로 떨어진 나는 더 이상 우즈베크에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다짐을 해왔건만.
며칠 전 나는, 우즈베크에서 아직 비자도 안 나왔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남편에게 우즈베크 가자는 말 한마디 통화를 마친 후 곧바로 우즈베크로 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그리고 이제는 한 명도 아닌 두 딸을 데리고 우리는 다음 달 우즈베크로 간다.
병원시설이나 환경만 봐도 아이들이 한국에서 지내는 게 당연히 맞다고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의 어렸을 적을 떠올리기도 했고 부모가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한국의 좋은 환경보다 불편하긴 해도 식구들 많은 곳, 뛰어놀 수 있는 넓은 마당, 동물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그런 곳을 아이들은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문화와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 가르쳐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처음엔 불만이 많았지만 이제는 남편의 나라인 우즈베크이라는 나라의 문화도, 종교도 그 어떤 것도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는 것이 아이들이 컸을 때 덜 혼란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고 또한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그 어떤 경험도 쓸모없는 경험은 없으니까.
우리는 우즈베크 이민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국의 집을 사고파는 문제들이 있어 당장에 가진 못하고 올해 한번 우즈베크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갑자기 가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처음엔 우즈베크에 가는 것이 엄마로서 나의 희생이자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우즈베크에 가겠다고 마음먹고 표를 끊을 수 있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였다.
한번 데었다면 데었던 그때의 힘들었던 경험, 그리고 시댁에서 생활하는 것, 가족도 친구도 없는 우즈베크의 시댁에, 나는 왜 다시 가고 싶어 진 걸까?
아이를 둘이나 낳고 보니 돈이며 나의 꿈이며 성공하고 싶은 욕구들이 생겼지만 매일 쳇바퀴 굴러가는 일상에서 불만만을 이야기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이런 일상이 너무 싫어지는 요즘이었고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잘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불안한 마음들도 커져만 갔다.
4년 전 우즈베크에서 생활이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되었고, 돈이 되는 일,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 하나씩 해보기도 했었던걸 보면 역시나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든 고난 앞에서 정체성 생기는듯하여
그래서 나는 다시 우즈베크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의 나는 만약 그때처럼 힘든 상황이 와도 성장하는 계기가 될 테니 땡큐라고 말할 수 있는 조금의 용기도 생겼고, 편안하지만 답답한 지금 상황보다는 그 편이 훨씬 더 괜찮을 거라 믿었다. 무엇보다 힘든 순간을 겪게 된다 해도 이젠 내겐 독서라는 무기가 생겼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때는 어디에도 내편이 없다는 생각에 내 마음 갈 곳이 없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우즈베크가 아니라 그 어떤 나라에 가든 책이라는 나의 정신적 지주가 생긴 듯 돌파구를 마련한듯하여 불안한 마음도 없어진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엔 아이 물건과 음식, 가족들을 위한 짐 위주였지만 이번엔 나를 위한 짐들로 가득채워보려 한다.
4년 전엔 샤로프든이 나를 두고 누구를 만나러 가거나 시엄마와 알 수 없는 우즈베크를 할 때면 질투 투성이었던 모난 아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나 싶다.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살림하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도 그리운 요즘이라 우즈베크 생활이 그때처럼 혼자인듯한 외로움으로 슬퍼할 나는 아닌듯하다. (어머님과 한국에서 이전에 함께한 3년이라는 시간 덕에 어머님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고 아내인 나를 끔찍이나 사랑하는 걸 알았기에 여러모로 남편이 나를 챙겨주지 않아도 정말 괜찮을 아니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도 함께 가져가기로 했다.)
그리고 5년이라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또 아이를 둘이나 낳고 키우면서 처음보단 많이 성숙해진 우리 부부이고, 나도 남편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진 듯하여 요즘은 부부 사이에 편안함을 느끼는 중이기에 그때보다 나의 마음도 조금더 여유로워 진것 같다.
어쨌든
이렇게 희망찬 우즈베크 생활을 꿈꾸며
하루하루 바쁘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3개월간의 우즈베크에서 해야 하는 목록들을 적어보았다.
-우즈베크 3개월 플랜-
첫 번째, 타슈켄트 부동산 투어
우즈베크는 매매 가격에 비해 월세가 한국과 비교가 안될 만큼 높아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되면 어차피 수도인 타슈켄트에 집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 한 채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임장한 번 가보지 않고 살 수는 없기에 일단은 한국에서 사진과 영상으로만 눈팅하며 봐왔었는데 이번 기회에 대저택도 구경해보고, 새로 지은 아파트와 집들도 열심히 돌아다녀볼 예정이다.
두 번째는. 사업 아이템 찾기
시엄마의 제빵사업에 이어 카페를 차려 커피 사업을 하고 싶다는 남편과 함께 여러 커피숍도 돌아다녀보고 커피 외에 한국에서 가져오면 좋을만한 것 반대로 우즈베크에서 가져가서 한국에서 팔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다방면으로 찾아보고 돌아다녀볼 생각이다.
세 번째, 우즈베크 그리고 터키 여행
지난번엔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 만 갔었지만 이번엔 계획에 약하고 우즈베크에 대해 잘 모르는 남편을 뒤로하고 방방곡곡 직접 여행플랜을 짜서 맛집도 가보고 유명 관광지도 찾아다녀볼 예정이다.
그리고 우즈베크에 간 김에 이웃나라 터키까지 가서 아주 뽕을 뽑아야지!
네 번째, 어머님 사업장 확대?!
브런치에 예전에 어머님이 집에서 빵을 만들어 파는 것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커져버린 빵가게다. 가게도 생겼고 배달하는 트럭도 샀고 학교나 결혼식 시장 등 납품하고 거래하는 업체들도 생겼고 sns까지 하면서 마케팅까지, 마치 사업이란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듯 작은 것 하나하나 부딪쳐가며 이게 되겠어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동네에서 인기 빵집으로 우뚝 솟았다.
우리는 일손 부족한 가게일도 도와드리고 빵도 먹고, 무엇보다 어머님이 앉아서 먹을 수 있는 빵가게를 만들고 싶어 하시는데 외진 곳이어도 땅을 사서 가게를 짓고 싶어 하셔서 그런 부분에 대해 알아보고 어머님의 가게가 더 잘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한국에서 가져가면 좋을 게 있는지 등을 함께 고민해보고 살펴보기로 했다
다섯 번째, 아이들 교육
둘째는 몰라도 첫째 아이는 학원에 보내볼 예정이다. 그리고 이곳저곳 많이 데리고 다니면서 집에만 있던 아이들에게 세상 구경 실컷 시켜줘야지!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나를 위한 자기 계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 우즈베크에는 방이 많으니 그토록 원하던 나만의 공간 하나를 찾아 나의 서재로 만들 생각이다.
(이런저런 계획을 적은걸 보고 있자니, 4년 전과는 다르게 지금은 무척이나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는 나인듯하다.)
항상 후회로 남았던 4년 전의 우즈베크 생활.
그렇기에 나는 무엇보다 이번 우즈베크 생활에서
나를 좀 내려놓고 이번만큼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불편하거나 힘들어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우즈베크 가족들 사이로 스며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