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
다사다난한 1년이었다. 첫 입학 때 온갖 긴장과 설레는 마음으로 등교했고 새로 나타날 인연들과 순간들이 기대되었다. 그렇게 소중한 추억들을 쌓아가던 와중 내 인생에서 마주해보지 못한 일이 생겼다. 예상치 못한 것에 한동안 방황했고 그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다.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고,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중학교 때의 나는 공부를 그리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학생이었다. 남들과 같이 학원에 다니고, 매일 같이 놀러 다녔다. 그래도 공부를 안 한 건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그 지역 사람이라면 조금은 알아주는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성적을 우수하게 받았다면 대학 입시에 더 유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때부터였을까, 모든 게 하나씩 엇갈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좋았다. 새 학기에 친구들도 사귀게 되고, 선생님들도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 속에 '성적'이라는 주제가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나는 물에 흠뻑 젖은 쥐처럼 입을 꾹 다문채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지켜만 보았다. 나는 계속 주눅 들어갔고, 공부를 포기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나는 대사처럼 말하던 문구가 있었다. "공부 안 한 거 치고는 잘 나왔어."라고 말이다. 그건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말이었다. 어쩌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점차 나를 잃어갔고, 나 자신마저 포기해 버리는 순간이 오게 되었다.
"왜 살아야 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재생되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다. 내가 왜 이 고등학교에 왔는지, 왜 자습실에 앉아서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포기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늘 부정적인 생각들에 가득 차 있던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공부는 내 시선에 남지도 않았다. 그저 이런 삶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계속했다.
인간관계도 조금씩 삐걱이기 시작했다. 기숙사에서 한 시간 동안 녹음된 내 뒷담을 듣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모두가 잠든 새벽에 3시간 동안 소리를 참으며 끊이지 않고 울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게 무너져 내렸다.
남은 게 없었다. 죽는 게 편할 것 같았다. 방충망을 열고 창문에 섰다. 그러곤 멍하게 바라봤다. 뛰어내리기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그랬다. 그런데 무언가가 나를 멈추게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바라는 죽음은 이런 죽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남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어릴 때부터 나는 미소 짓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그런 내가 행복해 보였나 보다. 그래서 나조차도 내가 밝은 사람인줄만 알았다. 감정을 드러내면 약해 보일까 웃음 뒤에 숨어 살았다. 그게 어쩌면 사람들이 나를 더 얕보게 된 계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남들에게 무시당하기 싫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남들이 원하는 성적, 대학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의 맞춰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를 잃어갔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열일곱의 일 년 동안 많은 것들을 버렸다. 하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았다. 인생의 주체는 '나'라는 것, 그리고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도 내 삶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혹은 당신이 정체되어 있다면, 너무 스스로를 내몰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쉬지 않고 뛰는 것보단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 것이 가끔은 더 큰 성장을 주기도 하니깐 말이다. 모든 청춘들이 본인만의 굳건한 뿌리를 내세우며 세상을 버텨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