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말자.
호주 간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는 사실 상 그렇게 어렵지 만은 않았다.
무슨 근자감인지, 영어 말하기는 자신이 있었고, 그래서 대화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무기였던 거 같았다.
그러나 그건 그저 내가 생각하는 그저 말하기 수준의 영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자신감이 날 호주 간호사롤 만들었다는 데에 내 자신이 크게 동의 하는 바이다.
오해 마시라, 영어는 어렵고 힘들다. 모든 사람, 영어권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다 그렇다.
하지만 그렇지만, 우린 영어를 말하는 나라에서 간호사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호주 간호사 과정은 유학생으로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1. 한국 대학 졸업장이 있다면 그레쥬에잇 엔트리라고, 약간 편입 같은 느낌으로 2 년만 하는 코스
2. 아님, 다른 나라 간호 자격증이 있다면, 1년 브릿징을 하고 간호사가 되기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바로 시험 보고 등록 가능-한국 간호가 4년 과정이 되었기 때문.)
나는 한국에서 생판, 다른 과목인 화학 전공을 하고 간호대를 겁 없이 들어왔던 터라,
한국 간호사 면허증을 가진 많은 한국인 중에서는 지식 하위 아니, 저 밑 핵에 위치에 있었다.
그럼에도 더 공부를 많이 안 한 듯 하긴 한데….
여하튼, 시험과, 실습, 그리고, 여러 가지, 과제에 참으로 취약했다.
첫 실습에서는 항생제 하나 제대로 못 섞어서, 약을 제대로 꽂아 넣지 못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배웠는데, 배운 게 ppt로 사진으로 배운 터라,
실습에서는 손이 덜덜 떨렸는데, 그게 또 날 얼마나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던지..
실습을 할 땐, 실습을 관리 감독하는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쫓아다닌다.
이 사람들의 의무는 우리를 도와주는 게 목적이나, 사실상 외국인 학생들을 페일 시키려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아군을 가장한 적군이었다.
질문들은 알려주기 위함 보단, 타박이나, 테스트 용도였기에, 바짝 긴장하지 않음 안되었다.
철저한 공부와 예습이 필수였다.
그런데, 처음, 나의 생애 처음 병원 실습에서, 영국에서 경력이 엄청난 필리핀계 퍼실리테이터를 만났다.
필리핀 사람들은 우리와 성향이 비슷해 정에 약하고, 착하기도 하지만,
사실 엄청 까다롭고, 잘못 만나면 엄청 데일 정도로,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말투를 경험 할 수 있다.
그리고, 필리핀 간호사 시험도 한국 못지 않게 많이 공부해야 하고, 간호고시가 있어, 지식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 높다.
그래서 또 결론은, 아는 게 많다는 말.
아는 거 많은 퍼실이,
성격이 온순하고 착할지.
괴팍하고 잡아 먹으려 들지..
그래서 제발 성격이 전자여라, 전자이길 바란다 하고 바랬지만…
우리 학생들을 꼼작 못하게, 말 한마디 못하게 하는 아주, 무서운 빌런이었다. 당첨! 하아.
지금 생각해봐도, 첫 실습에 그렇게 까지 잡을 일일까? 싶은데, 쥐 잡듯 잡으니,
아니 이게 실습인지? 테스트 장? 인지? 아니, 전쟁터 인지? 헷갈렸다.
실습 첫날은 오리엔 테이션이라 그냥 지나갔지만, 이튼 날부터,
정맥 주사 실습을 시키는데,
난 정말 병원도 처음이고, 약을 잡는 것도 그날이 처음이라, 너무 난감해,
좀 보여달라고 했더니,
아이코 요놈 봐라 그러면서, 나를 잡기 시작했다.
난 먹이가 된 거였다.
와우.
“ 이건 지금 왜 주는 거야?’
“ 이 약 지금 어떻게 줄 거야?’
“ 환자한테 왜 그렇게 설명했어?’
“ 환자한테 어떻게 교육할 거야?’
“ 환자 가족한테는 어떻게 말할 거야?’
‘ 환자가 혈압이 지금 이러면 어디 어디 어디 노티 할 거야?’
…..
….
…
질문 포격에, 나만 졸졸 쫓아다니기를 반복하기에 4일 째, 아예 포기하고,
이실직고를 했다.
“ 나 병원 실습이 내 생애 처음이고, 난 간호사도 아니었고,
엔지니어 하다 이제 처음 공부하는 거라, 힘들다.
나 처음 항생제 잡아 봤고, 처음 섞어 봤고, 첨으로 라인 연결해 봤다.
나 배우려고 왔는데, 지금 너무 힘들다.”
말하면서, 나도 좀 욱해서, 이 판 사판,
말 안 하고 페일 하나, 하고 페일 하나, 속 시원하게 말이나 하고 페일 하자 싶어,
말도 좀 다다다 하고,
눈물도 좀 찔끔 나와 살짝 울먹였다. 억울해서. 내가 배우러 왔지, 간호사냐 내가?
그러면서. 그날 따라 말이 잘 나와서 다다다 했더니..
그랬더니..
“간호사가 아니었어???”
라고 너무 놀라면서, 난 한국애들은 거의 다 간호사인 줄 알았다.
미안하다.
그러면서 이젠, 정말 졸졸 쫓아다니며 더 알려주려고 했다.
사실 너무 날 쫓아다녀 귀찮기도 했지만, 우호적으로 변한 모습이 너무 다행이었고,
그렇게 내가 용기 내어 말했다는 내 자신감은 두고두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내 용기가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밑천이 되었다.
이 경험은 정말 고귀한 거였다.
싸울 수 있을 땐 싸우자.
할 말은 하자.
나를 지킬 건 나 밖에 없다.
적군이 아군이 될 수도 있다.
지금도 다행인 건, 그 실습이 첫 실습이었고( 두 번째였다면,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것은 변명이 안될 테니..ㅎㅎ)
그 빌런-지금은 은인- 덕택에 나는 실습을 위해 더 공부할 수 있었고,
그 은인 덕택에, 할 말은 하는 다다다 외국인이 되었다.
그 은인은 왠지 아직도 그 병원에 있을 거 같은데,
담에 만난다면 좋은 동료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첫 우여곡절은 그렇게 끝났다.
쫄지 말자.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패스를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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