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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Feb 01. 2021

자궁경부암 환자를 보는 시선

슬픕니다. 그 시선이.

안녕하세요. 하나입니다.


저는 자궁경부암 환자입니다. 저와 같은 자궁경부암 환자들은 은근하게 어두운 시선을 받게 되지요. 저는 이런 시선을 받으며 불편했던 점을, 그리고 슬펐던 점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쓰게 될 내용은 어쩌면 불쾌하거나, 또는 비웃음 짓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쓰겠습니다.




자궁경부암.

인터넷에 자궁경부암이라는 단어를 치다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결국엔 같은 말이 나오죠..

자궁경부암 원인은 인유두종 바이러스라는 것이 밝혀져 있지만 자궁경부암에 걸릴 위험이 높은 여성 중에는 성 파트너가 많은 여성이나 성 파트너가 많은 남자 배우자를 가진 여성도 포함이 된다. 따라서 문란한 성생활은 자궁경부암 원인이 될 수 있다. 자궁경부암 원인인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주로 성관계로 감염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터넷]

"다수의 상대, 문란한 성생활"



저는 처음 암세포를 발견했을 때 자궁내막암인 줄 알았습니다. 병원에서도 처음 내린 진단명은 자궁내막암이었죠. 때문에 시댁에 병명을 알려야 했을 때 사실은 안도했습니다. 자궁경부암이라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자궁경부암으로 병명이 바뀐 후, 깨달았습니다. 저 또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요.



암 카페에는 종종 이런 글이 올라옵니다.


"저는 남편이 첫 남자친구였습니다. 성관계도 남편과만 했고요. 그런데 이번에 자궁경부암에 걸렸습니다. 제 남편이 문란했던 걸까요? 배신감에 손이 벌벌 떨리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가시 돋친 댓글들이 달리더군요.


"남편이 문제네요.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와이프를 암환자로 만들었네요."

"자궁경부암은 성병입니다. 본인이 떳떳하다 한들 남편분은 아니었나 봅니다."


...

이런 질문이 올라온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와중에 댓글들을 보다 보니 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혀를 차고 있는 동안 다행히도 밑에는 다른 댓글들이 달렸죠.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성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걸립니다. 하지만 누구는 건강하기에 암이 되지 않은 것이고 누구는 면역이 안 좋아서 암이 된 것뿐이에요. 남편분을 의심하지 마세요. 너무 슬픈 일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경부암은 바이러스를 통해서만 걸리는 게 아니에요. 저는 위암에 나타나는 종류가 자궁에 생긴 케이스입니다. 자궁경부암 종류에 따라 원인이 다르고 정확하지도 않은데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세요."


이렇듯 의견이 분분한 댓글들이 달리고 그 사이 몇몇은 상처를 받습니다. 다 같이 암을 겪고 있는 곳에서조차 현실은 그렇습니다.




제가 한창 암을 앓고 있을 때 어떤 산부인과 여의사는 유튜브에서 자궁경부암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그때 그 의사는 자궁경부암을 성병이라고 했죠. 다수의 성 파트너, 문란한 성생활 등의 단어를 써가며 자궁경부암의 원인을 자극적으로 말했습니다. 그 후 자궁경부암 환자들 몇몇은 의사에게 항의했지만 끝내 그분은 어떠한 말도, 어떠한 대응도 하지 않은 채 모른 척 넘어갔습니다. 그녀는 생각했겠죠. 자신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해서 말한것 뿐이라고... 저들은 괜한 자격지심에 그러는거라고...

때문에 참 많은 자궁경부암 환자들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전 저는 어떤 작가의 글을 읽었습니다. 책을 낸 분이었는데 자궁질환을 앓고 있더군요. 그분은 자궁경부암의 원인으로 '문란한 성생활로 인한'이라는 문구를 가져다 썼고 자신의 질환과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엄연히 다르다고 썼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같은 자궁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밖에 쓸 수 없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서운하고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제가 자궁경부암 환자이기 때문에 그런거겠지요.


하여, 자궁경부암 환자로서 얘기를 하자면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누구나 걸립니다. 성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요. 문제는 건강하냐 건강하지 못하냐의 차이겠죠. 그 바이러스를 물리치느냐, 아니면 당하느냐의 차이일 겁니다. 하지만 건강해서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말하겠죠.

"자궁경부암은 성병이래. 그러니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저는 그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본인이, 그리고 본인의 어머니나 본인의 와이프가 자궁경부암에 걸렸다 해도 그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내가 문란하긴 했지." 또는 "내 와이프(엄마)가 좀 그렇긴 했어."

이것도 아니라면...

"우리 아빠가 바람 좀 꽤나 피웠지." "내가 여자를 많이 만나긴 했어. 그래서 와이프가 걸린 거야."

라고 말할 수 있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내 가족들은 그런 병 걸리지도 않아!"라고 말할 건가요.


이쯤 되어 이 말을 풀어봅니다.

성 파트너가 다수인 여성들만이 HPV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

HPV는 감기 바이러스처럼 흔해서 성생활이 시작된 여성은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 성생활을 하는 여성의 약 80%는 일생 동안 HPV감염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통계도 있다. 단, 우리 몸의 면역체계 덕분에 HPV에 감염됐다 하더라도 건강한 사람은 수개월 후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하지만 감염이 지속성을 띠게 되면 암으로 발전되기 전 암단계인 고도 이형성증이나 자궁경부암이 생길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궁경부암에 대한 오해와 진실 (암 알아야 이긴다)


'감염이 지속되면'의 지속은, 다수의 성 상대방이 있어서 감염이 지속된다는 뜻도 있겠지만 동일인물에게서 계속 감염될 수 있다는 것 뜻합니다. 남편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수도 있고 부인이 가지고 있던 바이러스가 몸상태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졌다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건 면역에 의한 거고요.


이곳저곳 자세히 찾다보면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여러가지로 나옵니다. 물론 성관계로 인한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가장 큽니다만 이것 또한 100%는 아닙니다. 해외 논문에는 간혹 피부를 통한 감염이 있다고 나오고 인유두종에 의한 암은 자궁경부암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옵니다. 게다가 드물지만 성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도 발병되는 것이 자궁경부암입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연구는 계속 되고 있는겁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자궁경부암이 성병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묻겠습니다.


"두번째, 세번째 성생활을 한 사람들을 문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문란한 사람입니까? 그럼에도 당신은 왜 암에 걸리지 않았나요?"




저는 변명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자궁경부암의 원인이 다 헛소리라고 우기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과학이 대단히 발달했는데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나온 말이겠지요. 하지만 암의 원인은 굉장히 많다는 것을 말하고도 싶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연구중인 그 원인 말입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말에만 치우쳐서 그것을 옮겨 적고 또 옮겨 적어 결론은 자궁경부암 환자를 단지 '문란한 성관계로 인한 암환자'라고 치부해 버리는 일부의 현실이 슬퍼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

예전에 동네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우울증을 조심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일하나님께서 하신 광범위 자궁적출은 산부인과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수술에 속해요. 갱년기도 올 거고... 우울증도 올 텐데 우울증을 제일 조심하셔야 해요. 꾸준히 관리하시고 운동하셔야 하고요."


그 진솔한 선생님께 저는 물었습니다. 자궁경부암은 정말 성병이 맞냐고. 그럼 재발을 어떻게 막아야 하냐고요.


그 의사선생님은 감사하게도 제 질문에 헛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도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자궁경부암에 대한 원인은 백프로 밝혀지지 않았고 지금도 연구 중이에요. 그리고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누구나 걸려요. 건강한 사람은 넘어가지만 면역력 떨어지면 그게 암이 되는 거예요. 예방할 수가 없어요. 자궁경부암 주사도 3차까지 다 맞으셨는데 더 이상 어떻게 예방을 해요. 면역을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좋은 생각 많이 하시고~~ 운동하세요~ 운동."






저는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제가 쓸 글의 목차를 대부분 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이 글 또한 목차 안에 있었고요. 하지만 어느 날부터 이 글에 대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자궁경부암에 대해 쓰게 되면 악플이 참 많이 달리겠지... 내가 그런걸 겪으면서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이런거 신경 안쓰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괜히 들쑤시는건가...뭔가 갑자기 허무해진다... 그래도 쓰고 싶다...'


그때 제 고민을 들은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오픈하면 그렇겠지. 자궁경부암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왜그렇게 많은지원... 그래도 이왕 쓸 거면 그런 오해 잘 풀리게 썼으면 좋겠다. 과학적 근거도 같이 넣으면 좋겠고."


제가 친구의 바람대로 잘 풀리게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과학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경부암환자의 입장으로 썼으니까요.


과학적 근거.. 저는 언젠가 어떤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대학에서 자궁경부암의 유전성에 대해 연구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내용을 읽으면서 생각했죠. 우리 엄마도 자궁경부암이었다는데 나도 유전성이 있는 걸까.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하면 딱 잘라 말하죠. '유전은 아니다.' 라고요.


암의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암의 무한한 원인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도 "이 암의 원인은 이것"이라고 정확히 말하지 못해요.

그런데 자궁경부암이라고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아직 경부암 치료제도 완전치 않은데 말이죠.

지금도 '자궁경부암의 원인은 100% 인유두종 바이러스 때문이다.'라고 나오지 않습니다. '~로 알려졌다' 또는 '~가 밝혀지고 있다.' 정도로만 나옵니다.

10년 후 20년 후, 또는 100년 후라도 자궁경부암의 새로운 원인이 나온다면 그땐 어떻게 될까요. 

그때는... 자궁경부암에 대한 아픈 말들이 조금은 사라질까요.




저는 암확진 초기 자꾸만 움츠려 들던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지금 누군가의 뾰족한 말에 움츠려 들고 있는 분'에게도 말하고 싶습니다.


"그대 탓이 아닙니다. 그저 어쩌다 당신이 약해졌을 뿐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으니까요... 그러니 어떠한 사람도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어깨 펴세요. 자신을 원망하는 것도 안됩니다. 암환자인 것도 억울한데 손가락질까지 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러니 당당해지세요. 남의 말 따위 신경 쓰지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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