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마케터 스스로에게 중요한 관점
금융회사에서 마케팅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작년 마케팅 비용이 많이 늘었던데요.”
“이번 분기 광고 예산 좀 줄일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 마케팅은 대개 ‘비용을 쓰는 부서’로 인식됩니다.
신상품 홍보, 광고, 제휴 마케팅, 프로모션... 눈에 보이는 지출이 많기 때문이죠.
실제로 대부분의 금융화사에서 마케팅팀은 P&L(손익계산서)에 P(Profit)은 없고, L(Loss)만 있는 부서로 구분됩니다.
그래서 보통 영업팀을 Profit Center, 마케팅팀을 Cost Center라고 지칭하죠.
그래서 타 부서들에서는 물론, 마케팅팀 내부에서도 '우리는 비용을 쓰는 부서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마케터라는 말은요,
결국 간단하게 말하면 '시장(market)'에서 장사하는 '사람(er)', 즉 돈을 벌어오는 역할이라는 거잖아요?
언젠가, 혼란스러운 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돈을 쓰는 사람일까, 아니면 돈을 벌어오는 사람일까?
금융회사는 상품의 특성상 수익 주기가 길기 때문에, 타 업종에 비해 광고비를 늘려 신규 고객을 유치한다고 해도 매출은 즉시 늘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 비용도 회계상 대부분 판관비로, 즉 ‘비용’으로 기록되구요.
그래서 마케팅은 조직 안에서 더더욱 ‘비용’으로 보이기 쉽습니다.
하지만 마케터 스스로의 인지는 달라야 합니다.
마케팅은 단순히 돈을 쓰는 활동이 아니라, 고객을 확보하고 관계를 시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금융 마케팅에서 이 활동은 장기적인 수익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판 예금’을 출시해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고금리 특판 예금이라면 당장의 마진은 거의 남지 않을 수도 있어요.
마케팅비까지 감안하면 단기 손익은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더 높죠.
예금 판매만 놓고 보면 ROI는 낮아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고객이 남았죠.
그리고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의 예금 고객이 내일의 대출 고객이 되고, 카드 고객이 되고, 투자상품 고객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이제, 그 캠페인은 ‘예금 판매를 위한 비용’이 아니라 ‘교차 판매를 위한 선제적 투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마케팅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바라보는 첫 번째 관점은 단기 ROI(Return on Investment)를 넘어 LTV(Lifetime Value, 고객 생애가치)로 시선을 옮기는 일입니다.
이 고객이 3년 뒤
신용대출을 받고,
카드를 발급받고,
펀드에 가입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수익이 시간에 걸쳐 누적됩니다.
갑자기 대출이나 카드가 필요해지는 순간, 이미 거래하고 있던 금융회사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특판 예금 마케팅은 단기 ROI로는 적자처럼 보일지라도 LTV 관점에서는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일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마케팅은 현재의 비용을 넘어 미래의 수익을 설계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면 마케터는 단순한 '비용 집행자'로 남게 됩니다.
스스로의 인식도 그렇다면, 회사 역시 마케팅을 '전략적 투자'로 볼 리가 없겠죠.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정말 경계해야 합니다.
회사의 손익 체력이 약한데 무리하게 마케팅 예산을 확대하는 경우도 꽤 있는데요,
이후 예산이 대폭 삭감되거나 심하게는 마케팅팀이 공중분해되는 결과도 주변에서 많이 봤거든요.
마케팅을 투자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투자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계좌 개설 수, 거래액 같은 정량 지표뿐 아니라 브랜드 인지도, 고객 만족도 같은 정성 지표까지 어떻게든 구조화하고, 가능한 한 숫자로 환산해 경영진과 같은 관점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당장은 번거롭고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빌드업'이 있어야만 마케팅의 가치를 스스로 지킬 수 있습니다.
결국 금융 마케터에게 중요한 관점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돈을 쓰는 활동이 돈을 버는 결과로 이어지도록 순환 구조를 설계하는 것.
금융 마케팅의 핵심은 단순히 “얼마나 팔았는가”를 묻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수익이 어디서, 어떤 구조로 발생하는가”를 이해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신규 예금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금리를 높이면 단기적으로 고객은 늘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자비용이 증가해 순이익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습니다.
매출 확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구조.
바로 이 지점이 금융 마케팅이 다른 산업보다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금융회사에서의 마케팅은 광고를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손익 구조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느 순간부터 마케팅 계획서를 쓰기 전에 회사의 손익계산서를 먼저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회사가 어디에서 돈을 벌고, 어디에서 비용이 발생하는지를 모른 채, 꽤 많은 예산을 ‘여기에 투자합시다’라는 말을 하는 건 어쩌면 위험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금융회사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을까요.
공장을 돌려 물건을 만드는 산업은 아닌데, 금융업의 원재료는 또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