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삶아진 따끈한 당면에 짭짤한 양념장 한 스푼
현재 사는 곳은 다른 지역이지만 내가 태어난 고향은 부산이다. 워낙 어릴 때 이사를 간 탓에 부산에서 살았었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이미 지나온 과거에 대한 것은 잘 기억하지 않는다. 그나마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가족들과 함께 물놀이 갔던 해운대정도랄까?
그런 나에게 강렬했던 부산의 첫 기억은 남포동 깡통시장 근처에 파는 비빔당면이다.
10여 년 전 친구와 부산여행을 갔었다. 남포동 쪽에 먹거리가 많다 하여 들렀는데 웬 길거리에 국수 같은 걸 파는 게 아닌가? 호기심이 생겨 원래 가려던 맛집을 포기하고 친구를 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포장마차인 듯 노포인 듯 가게들이 쫙 있었고 낮은 테이블 위 작은 그릇들엔 당면과 소소한 야채들이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충무김밥도 함께 팔고 있었다. 일단 익숙한 충무김밥 1인분을 먼저 시키고 반갑게 맞이해 준 사장님에게 질문을 했다.
“사장님 여기 그릇에 담긴 당면은 무슨 음식이에요? “
“이건 비빔당면인데 간단해 보여도 참 별미야! 하나 드려? “
비빔당면이라고? 당면은 잡채나 찜닭에 넣어먹는 줄만 알았지 양념에 비벼 먹는단 건 상상하지 못했다. 맛이 궁금해 얼른 두 그릇 주문하고 기다렸다. 주문함과 동시에 나온 비빔당면, 그도 그럴게 준비해 놓은 당면과 야채 위에 어묵국물 같은 육수를 조금 붓고 양념장을 얹어주면 그게 끝이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먹어본 비빔당면의 맛은 나에겐 아주 좋았다! 따뜻한 듯 미지근한듯한 온도의 당면과 조금의 야채들 그리고 잘게 썬 단무지, 빨간 양념장이 어우러져 정말 별미였다. 특히 안에 들어간 단무지가 비빔당면의 킥이라고 생각한다. 오독오독해서 씹는 맛이 있고 새콤한 게 매콤한 비빔당면과 잘 어울린다.
이런 간단한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찾아보니 한국전쟁 때 시장상인들이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만들어 먹던 음식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나름 부산의 향토음식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아무튼 이 비빔당면을 한 번 경험하고 나니 자꾸만 그 맛이 생각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역시 그때의 그 맛이 아니다. 그 장소의 맛과 아주머니의 손맛이 있나 보다.
그리하여 부산에 갈 때마다 비빔당면은 나의 맛 코스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음식점에서 제대로 나오는 비빔당면도 사 먹어봤지만 역시 최고는 처음 먹었던 그 포장마차에서 파는 비빔당면이다. 별거 없고 어떻게 보면 성의 없어 보이긴 하지만 무심히 툭 만들어 주는 그 맛이 나는 좋더라.
부산에 가신다면 세명약국을 지나 아리랑거리와 광복동 먹자골목 중간에 파는 비빔당면을 꼭 먹어봐 주시길!
생각보다 간단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거라 기대한다.
글을 쓰다 보니 그때 그 맛이 또 생각난다. 아무래도 조만간 부산을 가야겠다!